[천자칼럼] 슬랙티비즘
2년 전 동영상 하나가 미국을 발칵 뒤집었다. 우간다에서 민간인 수천명을 학살한 반군 리더 코니의 만행을 고발한 것이었다. 이 영상물은 6일 만에 1억건의 조회를 기록했다. 냉혈한을 죽여야 한다는 여론이 불같이 일었다. 할리우드 명사들까지 가세해 전 세계 SNS를 달궜다.

그러나 주최 측이 제안한 거리 캠페인에 실제로 참여한 시민들은 거의 없었다. SNS에서만 호응하고 실제 행동에는 무관심한 ‘슬랙티비즘(slacktivism·게으른 행동주의)’의 전형이었다. 슬랙티비즘은 태만하다는 뜻의 슬랙(slack)과 행동주의(activism)의 합성어다. 자신의 노력이나 부담은 들이지 않고 손가락만 놀리는 현상을 비꼬는 말로도 쓰인다.

코니 사건은 ‘조작 영상’으로도 문제가 됐다. 우간다 내전은 이미 끝난 뒤였고 반군도 수백명으로 줄었으며 코니마저 몇 년 전 타국으로 망명했다는 게 뒤늦게 밝혀졌다. 아프리카연합과 미국의 코니 체포 작전도 당연히 허탕을 쳤다.

이 같은 ‘반짝 흥분’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예전부터 있었다. 사회에 의미있는 영향을 주지 않았는데도 마치 스스로 좋은 활동을 했다고 생각하는 자기만족적 행위를 지적하는 것이었다. 진실과 투명성, 책임이 따르지 않는 선동은 조롱만 불러온다는 자각도 뒤따랐다.

지난달 나이지리아 여학생 납치 사건 이후 뜨겁게 일어난 SNS 운동은 어떤가. 트위터에서 ‘우리 딸들을 돌려달라(Bring back our girls)’를 공유하거나 ‘좋아요’를 누른 사람들이 벌써 수천만명을 넘었다. 미셸 오바마와 여배우들, 영국 총리 등이 팻말을 들고 줄줄이 인증 사진을 찍으며 국제사회의 연대를 촉구했다. 각국이 군사지원을 자청했다.

그러나 아프리카 전문가들은 “나이지리아 군부세력만 이롭게 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고 지적했다. 서방이 더 많은 군사작전을 하도록 떠미는 바람에 수천명을 학살해온 나이지리아 군부가 이참에 면죄부를 받고, 국민의 심판 기회조차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복잡한 ‘큰 그림’을 모르고 순진하게 인증샷만 퍼나른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슬랙티비즘은 자칫 공감피로증을 낳기도 한다. 국가적 재난을 당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확인도 되지 않은 소식들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증오를 퍼뜨리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슬랙티비즘이 ‘무지→위키피디아 참조→분노→연대의 해시태그→고집스러운 자기 집착’의 5단계를 거친다는 미국 작가 네스린 말리크의 지적에 공감이 간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