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은 잠깐 빌린 것 잘 쓰고 돌려줘야죠"

이지영 2014. 4. 24. 00:2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모노드라마 연극 '오스카 .. ' 서울 앙코르 공연 앞둔 김혜자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꼭 1주일이 지난 23일 배우 김혜자(73)를 서울 합정동 연습실에서 만났다. 6개월째 해오는 모노드라마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이하 오스카)' 연습을 하고 있었지만, 세월호의 충격을 비켜가기는 힘들었다.

세월호 참사 충격, 연습하다 눈물 뚝뚝

 "사람들은 삶을 처음에는 과대 평가해요. 영원한 삶을 선물받았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다가 또 과소평가해요. 지긋지긋하다느니, 너무 짧다느니 하면서 내동댕이 치려 해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요. 결국 선물받은 게 아니라 잠시 빌린 거라는 사실을 알게 돼요. 빌린 거니까 잘 써야죠…."(오스카의 대사 중에서)

 대사 연습을 하는 배우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실제 연극에서 우는 장면은 아니다. 하지만 '삶'이란 단어를 눈물 없이 입에 담기 힘든 날이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CGV신한카드아트홀을 시작으로 청주·제주·울산·천안·군산 등 13개 도시에서 '오스카' 공연을 했다.

 '오스카' 속엔 백혈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열 살 소년 오스카와 소아병동의 최고령 간호사 '장미 할머니'가 주고받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는 110분 동안 오스카와 장미 할머니뿐 아니라 오스카의 부모, 오스카의 여자친구 등 11개 역을 혼자 오가며 관객들을 울리고 웃긴다. 다음달 2일부터 6월 15일까지는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에서 서울 앙코르 공연을 한다.

 그는 지난 1년을 '오스카'에 매달려 살았다. 2012년 JTBC 시트콤 '청담동 살아요'를 끝으로 브라운관에도 스크린에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는 "내가 단세포 동물인가보다"라며 "하나를 하면 다른 데 신경을 쓸 수 없어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작품을 보자마자 '이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20년 넘게 구호단체 월드비전의 친선대사로 아프리카 봉사를 하면서 끊임없이 신에게 가졌던 질문 '왜'를 '오스카'의 주인공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스카가 물어요. 왜 신은 자기처럼 아픈 사람을 만들어내는 거냐고요. 그러면서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거라고 말하죠. 타고난 심술쟁이거나 아니면 병을 고칠 능력이 없거나…."

 그 역시 배고픔과 전쟁에 희생되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직접 만나며 신에게 비슷한 질문을 하고 투정을 했다.

 "삶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 때마다 신에게 '왜'냐고 물었어요. 하지만 신은 아무 대답이 없었죠. 그러다 어느 날 정해진 답은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답을 찾는 대신 이 작품을 통해 세상 보는 법을 배웠어요. 매일 처음 본 느낌 그대로 삶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순간순간이 새롭고 기쁨으로 채워질 수 있다는 걸요."

 극중에서 오스카는 생의 마지막 12일을 하루가 10년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가상의 '90'살이 됐을 때, 햇빛과 색깔과 나무와 새와 동물을 '처음 본 느낌 그대로' 바라보고 순수한 기쁨과 놀라움, 행복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렇게 세상 보는 법을 엄마아빠한테도 가르쳐달라"는 말을 장미 할머니한테 남긴다.

 그 대사를 반년 넘게 매일매일 되새기는 그는 '오스카' 덕에 자신의 삶도 달라졌다고 고백했다.

첫 마음으로 돌아가면 삶 새롭게 보여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날 때마다 예전에 얼마나 좋아한 일이고 사람이었는지 생각해요. 첫 마음으로 돌아가면 삶은 다른 색깔이 되죠."

 연극은 오스카의 죽음으로 끝난다. 하지만 장미 할머니의 따뜻하고 위트 있는 위로는 오스카가 두려움 없이 편안하게 삶과 이별할 수 있게 했다. 만약 장미 할머니가 오늘 우리 사회로 와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만난다면, 뭐라고 했을까. 6개월을 장미 할머니로 산 그에게 물었다.

 "아무 말 없이 옆에 가만히 앉아있었을 것 같아요. 갈기갈기 찢어진 마음에 누구의 어떤 말이 위로가 되겠어요. 내 자식이 그 배 속에 있는 게 아니라면 아무 말 말아야 해요. 나불대지 말고요."

 대답을 하며 그는 또 눈물을 흘렸다.

글=이지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눈썹 아래 점은요?" 물음에 검시관 행동이 충격

분향소 찾은 이정희, 안경 벗고 얼굴 가리더니

'청해진' 오너 유병언 전 회장 자택 찾아가 보니

대자보 쓰던 두 여성, 이를 본 실종자 가족이…

'최강 미모' 英 왕세손빈, 호주 원주민 보고 '깜짝'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