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연구중심병원, 어디로 가나?

2014. 4. 2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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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년도 평가 완료했지만 아직 뚜렷한 지원은 전무

[쿠키 건강] 병원들의 생존 보루로 여겨졌던 연구중심병원 제도가 표류하고 있다. 가야할 방향이 분명하다는 데 정부도, 병원도 동의했지만, 지원계획이 불투명하면서 선정된 10곳 병원들조차 우왕좌왕하고 있다. 선정된지 벌써 1년이 된 연구중심병원, 대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에 대해 알아본다.

◇기대했던 예산 고작 100억 할당…3~4곳 다시 나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3월 전국 10개 병원을 국가 미래 의료산업을 선도할 연구중심병원으로 선정했다. 주인공은 △가천의대 길병원 △경북대병원 △고려대 구로병원 △고려대 안암병원 △분당차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아주대병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등이다.

연구중심병원은 '보건의료기술진흥법'에 따라 내부적으로 지속가능 연구지원 시스템과 연구역량을 갖추고 산·학·연과 개방형 융합연구 인프라를 구축, 글로벌 수준의 보건의료 산업화 성과를 창출해내는 선도적 역할을 담당할 병원으로 규정했다.

연구중심병원은 병원 회계 상 연구비를 공식적인 비용으로 지출하도록 인정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보건의료 R&D 연구비를 내부인건비(총 연구비의 40%)에 사용할 수 있다. 또 진료 중심의 고유목적 사업준비금으로 적립한 자금을 병원의 자체 연구비로 투자할 수 있게 허용한다.

이밖에 채용 전문연구요원의 병역 대체 복무 인정(병무청), 연구인력개발비 세액공제 또는 법인세, 지방세 감면(기재부) 등 추가 지원도 추진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연구역량을 보유한 의료기관으로 공인한 효과를 통해 국내외 R&D 공동연구 유치, 기술제휴, 연구역량 및 기획역량 집중으로 국가 R&D 과제 등 다양한 수혜가 뒤따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럼에도 지원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수백억원, 수천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기대했던 병원들에게 전달된 올해 예산 소식은 고작 100억원이다. 이 마저도 다시 3~4개 병원을 선정해 몰아준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아산생명공학연구원 김청수 원장은 "물론 지원이 아쉽지만, 예산 자체가 할당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연구중심병원이 앞으로 가야할 방향이라는 것을 정부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며 "수년 간 추가적인 예산과 육성 정책이 나올 것"을 기대했다.

연구중심병원을 추진해온 전 보건산업 R&D본부장 고려의대 흉부외과 선경 교수는 "병원이 연구를 통해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연구 수입, 지출 회계를 별도 분리하도록 한 것이 큰 특징"라며 "아직 기대할만큼은 아니지만 이제부터 시작이고 장기적인 전략으로 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1차년도 평가 진행…1위는 '자체 투자의지' 길병원

아직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도 평가는 냉정했다. 복지부는 최근 연구중심병원 1차년도 연차평가를 실시했다. 10개 병원에게 3년간(2013. 4.1~2016.3.31) 연구중심병원 효력을 부여하고 운영계획서의 이행실적을 매년 평가, 재지정시에 반영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정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지정이 취소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연구중심병원을 추가 지정하거나 지정기준을 단계적으로 상향조정해 연구 및 산업화 역량을 제고시킬 방침"이라며 "연구중심병원이 연구에 그치지 않고 신약, 의료기기 등의 의료산업화와 국부창출에 기여할 것을 기대하며, 철저한 사후관리로 역량 미달 병원은 지정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기본역량 및 운영계획 이행여부 등의 평가결과, 가천대 길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이 각각 상위 30%안에 드는 평가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천의대 길병원 노인성뇌질환(치매, 뇌졸중, 파킨슨병), 대사성질환(비만, 당뇨, 고지혈증), 줄기세포 등을 맡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맞춤항암치료기술, 의료용로봇시스템 및 의료기기, 만성질환 U-health관리, 분자영상기술개발, 감염질환 치료법개발, 성체줄기세포 기반 세포치료기술 등을 담당한다. 삼성서울병원 암, 뇌신경질환, 심장질환, 대사질환, 면역/감염질환, 호흡기질환 등을 특화하기로 정한 상태다.

특히 1위에 의외로 '길병원'이 선정되면서 병원 내부 분위기는 한층 고무돼있다. 길병원은 지난 1년 동안 중점 연구 분 야인 뇌질환과 대사성질환을 집중 연구하고, 산학연병원이 함께 하는 공동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무엇보다 자체 연구비 지원과 연구 과제 확대 등 의료진이 적극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길병원 관계자는 "연구에 대한 투자 열망과 내부 의지가 평가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연구중심병원은 분명한 장기전략인 만큼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은 병원의 '오픈이노베이션'을 강조하고, 연구 인프라 개선을 통해 기업들을 병원 내 공동연구에 끌어들이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결론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병원들은 지원에 기댄 것이 아닌, 연구를 장기적인 비전으로 세워 자체 투자를 이어나간 곳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정취소, 추가 지정 등 정착도 전에 뒤집힐 듯

평가를 통해 분위기가 좋지 않은 병원도 있다. 평가결과가 모두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A병원은 연구중심병원 지속이 위태하다고 보고 있다.

A병원 연구부원장은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됐다는 자체에만 취해 1년을 허비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연구비 지원에 불과하다는 병원, 교수들의 잘못된 인식이 문제"라며 "특히 10곳 중 3~4곳을 다시 선정하기로 한 만큼 병원 차원에서 연구비를 투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병원으로서는 암담하다. 아직 확정된 것이 아무 것도 없고 자체 지원만 쏟는다면 '연구중심병원' 선정 의미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아직 병원의 연구수익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연구인력을 투자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많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정부 연구비 정보를 발빠르게 수집하거나 수혜 노하우를 익히는 것이 전부다. B병원은 정부 연구비 의무 할당을 독려하는 등의 조치까지 펼치고 있다.

B병원 교수는 "굳이 선정되지 않더라도 지자체와 연계한 의료클러스터 예산을 따거나 미래창조과학부 등 타부처 R&D 예산을 기대하는 것이 낫다"며 "기존에 준비했던 것이나 평가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복지부 담당공무원이 바껴 사업 연속성도 의문이 된다"고 비판했다.

이런 분위기와 반대로 추가 지정을 노리는 후보군도 나오고 있다. 서울성모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의 행보가 가장 눈에 띈다.

서울성모병원은 회계를 분리하지 않는 행정적 오류로 서류심사에서 탈락했다며 거듭 뼈아파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병원의 연구역량은 충분한 만큼, 추가 공고가 나면 반드시 통과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였다.

병원 측은 "한 해동안 23개의 암 분야 임상시험이 진행 중일 정도로 연구가 활성화돼 있다"며 "연구력을 높이기 위해 국내외 우수 연구자를 영입하겠다. 또 연구공간을 확충하기 위해 병원 별관을 연구병원으로 전환하고, 연구에 재능있는 인재를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성남시와 함께 경남 진주혁신도시로 이전할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분당 정자동 본사사옥 부지를 메디바이오 클러스터로 육성하겠다는 비전을 내놨다. LH 정자사옥은 지하 4층∼지상 7층에 대지면적 4만5천㎡, 연면적 7만9000여㎡ 규모로 감정가격은 2784억원이다. LH는 올해 12월까지 진주혁신도시에 신사옥을 준공하고 본사를 옮길 예정이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생명과학연구지원센터, 바이오헬스 컨벤션센터, 생명과학융복합 대학원 등을 갖춘 생명과학연구단지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런 시나리오라면 연구중심병원의 핵심모델로 부상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이렇듯, 연구중심병원 제도가 정착하기 전에 판도가 뒤집힐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

C병원 교수는 "복지부 예산이 아니라 범부처 보건의료 R&D 전체를 놓고 연구중심병원이라는 패러다임 자체를 만들어야 한다. 이대로 가다간 연구비 지원이라는 기존의 틀을 고수할 따름이며, 연구 강화를 위한 본질적인 체질 개선이 힘들다"라고 강변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 / 메디칼업저버 임솔 기자 slim@mo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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