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한 대한민국.. 국민들 '심리적 재난'

김지은기자 입력 2014. 4. 20. 21:13 수정 2014. 4. 2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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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해이·엉터리 국가시스템 그대로 노출 '슬픔 넘어 분노로'

침몰한 건 '대한민국호'였다. 세월호 침몰 참사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마치 대한민국이 붕괴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하고 있다. 희생자ㆍ실종자 가족들과 고통, 슬픔을 함께하는 한편으로 답답하고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분노와 불신, 무력감에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

대기업 상무이사인 권모(60)씨는 20일 "한국전쟁 이후 경제적으로 큰 성장을 이룬 내 나라를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는데 이번 참사로 도덕적 해이, 국가 시스템의 초라한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봤다"며 "화려한 겉모습 뒤에 이런 후진성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 너무 충격적이고 부끄럽다"고 탄식했다. 경기 안양시 초등학교 교사 박모(57)씨는 "생때 같은 아이들이 탄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 정부는 제대로 구조도 못하고 책임 총괄 부처가 어디인지 발표 하나 정확하게 못하며 혼선만 거듭했다"며 "천안함 사고 이후 세금 1,590억원이나 들여 만들었다는 구조함(통영함)은 아직도 시험 중이라 투입을 못한다니 이것이 국민 생명을 보호한다는 대한민국 정부의 수준이냐"고 되물었다.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로 국민들은 '국가가 과연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을 것"이라며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 무력감이 뒤엉킨 악몽 같은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선실에서 대기하라"고 한 뒤 자신들만 탈출한 무책임한 어른들의 행태가 청소년들에게 미친 충격과 혼란도 엄청나다. 충남 천안고 권모(18)군은 "어른들 말을 듣는 게 항상 옳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부산 중앙여고 류모(18)양도 "참사 다음 날 희망은 사라지고 절망감에 눈물이 났는데, 셋째 날부터는 선장과 정부의 대처에 화가 났다"고 말했다. "비행기 승무원이 꿈"이라는 류양은 "나라면 승객을 먼저 대피시켰을 것 같은데 그 선장은 왜 그랬을까, 자기 직업에 대한 책임의식이 그렇게 없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고 말했다. 진중권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는 "승객 대다수가 아이들이었다는 점, 그 아이들이 탄 배가 가라앉는 걸 우리가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것, 알고 보니 끝까지 남아 그들을 구했어야 할 어른들이 다 도망갔다는 게 이번 사건이 주는 가장 큰 충격"이라고 말했다. 부모 세대의 마음도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하다. 경북 안동시에 사는 박모(73)씨는 "그 또래 손주들이 있는 주위 할배, 할매들이 여행이고 약속이고 다 취소하고 집에 들어앉아 TV만 지켜보며 하도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 있다"며 "아이들이 배 안에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죽어가게 만드는 나라가 나라냐"고 가슴을 쳤다.

전문가들은 이번 참사로 겪고 있는 국민들의 심리적 고통을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심리기획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이명수씨는 "사람의 정신은 쉽게 붕괴되지 않지만 이 정도면 그야말로 집단 '멘붕'상황"이라며 "100년 정도 지나야 사회가 회복될 정도"라고 우려했다. 심영섭 교수도 "현재 국민들 상태는 심리적 재난 수준"이라며 "과거와 달리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대한민국이 붕괴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기에 감정의 전염이나 증폭이 엄청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심 교수는 "정부가 이번 사고를 엄중하게 직시하고 진심 어린 사죄와 철저한 문책, 시스템과 소통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수씨는 "희생자 가족에게는 몸을 덮을 담요 뿐만 아니라 심리적 담요가 필요하다"며 "정부가 시간이 걸려도 그들의 심리적 상처 회복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하겠다고 약속하고 이행해야 지켜보는 국민도 위안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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