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천진한 아이 장난같은 분방하고 난해한 연주
#104 Wayne Shorter Quartet 'Orbits'(2013년)
[동아일보]
"동굴 음악이냐?"
이건 마일스 데이비스(1926∼1991)의 명반 '비치스 브루'(1970)에 대한, 10년 전쯤 나온 믿을 만한 리뷰다. 평자는 헤비메탈 밴드 판테라에 대해 "말세는 말세여"라는 정교한 평가를 남겼던 사람, 바로 우리 어머니다. 일렉트릭 피아노와 전기기타, 드럼과 베이스기타가 조성하는, 조성(調性)이 뭉개진 뿌연 긴장감의 안개를 꿰뚫고 성난 코끼리처럼 쏘아대는 관악기들의 울음. 그중 하나는 웨인 쇼터(81·사진)의 소프라노 색소폰이었다.
12일 오후 서울 LG아트센터. 쇼터가 묵직한 금빛 테너 색소폰을 한 손에 연장처럼 든 채 불 꺼진 무대 위로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막노동판에 출근하는 촌로처럼.
쇼터는 1964년부터 70년까지 마일스 데이비스의 '2기 황금 퀸텟' 일원으로 활약했다. '네페르티티' '이에스피' '생추어리' 같은 이 시기에 나온 데이비스의 명곡 상당수는 쇼터의 작품이었다. 쇼터가 데이비스와 쌍두를, 아니 '쌍뇌'를 이룬 것이 이미 반세기 전의 일이다.
이번 쿼텟의 다른 멤버들인 다닐로 페레스(피아노), 존 패티투치(베이스기타), 브라이언 블레이드(드럼)의 나이는 40∼50대. 재즈계에서 이름값 높은 이들이다.
고령 탓인지 쇼터는 때로 힘에 부쳐 보였다. 피아노 옆에 놓인 의자에서 20번쯤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연주를 이어갔다. 음표가 빠진 자리를 그는 쉼표로 메웠다. 105분의 시간 동안 그의 색소폰은 40분이나 연주됐을까. 어쩌면 난 그 공백을 들으러 간 건지도 몰랐다. 우주공간처럼 텅 비었지만, 보이지 않는 힘으로 가득 찬. 첫 곡 제목도 '제로 그래비티 투 더 텐스 파워'였으니…. '스마일린 스루' '오비츠' '쉬 무브드 스루 더 페어' '플라잉 다운 투 리오' 등의 테마는 혜성처럼 스쳐갔다.
편집증적인 오스티나토(동기로서 반복되는 연주 패턴), 분방한 즉흥연주, 발작적 폭발…. 힘으로 밀고 당기던 넷은 연주 중에 서로를 바라보며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쉴 새 없이 웃어댔다. 자기들만 아는 긴 농담을 하는 것처럼. 난해한 연주는 천진한 아이들의 장난 같기도 했다.
우주로 나아가느냐, 동굴로 다시 들어가느냐. 그런 숨바꼭질.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오늘의 동아일보][☞동아닷컴 Top기사] |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野, 민주유공자법·가맹사업자법 본회의 직회부…與 불참
- 대통령실·민주당 영수회담 1차 준비회동…“일정 추후 다시 논의”
- [단독]이재명, 김은경 등 혁신위·선관위 만나 오찬…“민심 참 무섭다”
- 대통령실 “‘5+4 의정협의체’ 제안했지만 의료계 거부…‘원점 재검토’ 고수 유감”
- 조정훈 與총선백서 위원장 “맡자마자 ‘윤석열 책임’ ‘한동훈 책임’ 엄청난 문자 압박”[티
- 배추 36%·김 19.8% 올랐다… 생산자물가 넉달째 상승
- 새벽 찬 공기에서 운동할 때면 숨이 가쁘다.
- 한달 남은 21대 국회… 김남국 등 징계안 52건 그대로 폐기 수순
- 하이브 CEO “회사 탈취 기도 명확…아일릿 데뷔 전 기획”
- 사전투표소 40곳에 불법 카메라 설치한 40대 유튜버 구속 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