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황제 노역'과 '수상한' 아파트 거래

2014. 3. 3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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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에게 '황제 노역' 판결을 한 장병우 광주지법원장이 대주그룹 계열사와 아파트를 거래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며 파문이 커지자 사표를 제출했다. 장 법원장은 언론 보도 하루 만인 29일 보도자료를 내고 "최근 저를 둘러싼 여러 가지 보도와 관련, 한 법원의 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사의를 표명한다"며 "국민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 법원장은 1985년 광주지법 판사로 임용돼 29년 간 광주고법 관할에서만 근무해온 '향판'이다. 소신있는 판결로 주목받기도 했으나 결국 '5억원 황제 노역' 판결로 발목을 잡혀 법원장으로 부임한 지 44일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대법원은 금주 초 그의 사표수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아파트 거래는 7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05년 허 전 회장의 건설사가 지은 광주 소재의 아파트를 분양받은 장 법원장은 2007년 이사한 뒤 5개월 후 기존에 살던 아파트를 HH개발에 팔았다. 그런데 이 HH개발이 허 전 회장의 부인인 황모씨의 영문 이니셜을 따 만든 대주그룹 계열사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뒤늦게 '수상한' 거래라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장 법원장은 "아파트는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 정상적인 거래로 취득했으며 어떤 이익도 취한 바가 없다"며 "다만 이사 후 기존 아파트가 시세에 맞게 처분되는지에만 관심을 가져 거래 상대를 주의깊게 살피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부적절한' 거래였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장 법원장의 사퇴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보편적 상식과 크게 동떨어진 '황제 노역' 판결 과정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다시 커지는 양상이다. 허 전 회장의 죄목은 약 500억원의 법인세포탈과 100억원의 횡령이다. 통상 조세포탈 10억원 이상이면 법률상 징역 5년이상, 최고 무기징역까지 처해진다. 벌금 규모도 조세포탈액수의 2-5배에 이른다. 허 전 회장의 탈세규모이면 실형을 피하기 힘들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그에겐 이례적으로 최대한 낮은 수준의 형량이 내려져 지역 법조계와의 특별한 유착관계가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는 것이다.

우선 검찰은 지난 2008년 1심에서 징역 5년형과 벌금 1천16억원을 구형하며 전례없이 법원에 벌금형 선고유예 신청을 했다. 일반 재판에선 상상하기 힘든 파격적인 결정이다. 장 법원장의 사퇴 후 검찰에 대한 책임론이 새삼 불거지는 것도 이런 이유때문이다. 1심 재판에선 결국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08억원이 선고돼 허 전 회장이 실형을 모면했다. 2010년 장 법원장이 재판장을 맡은 항소심에선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이 선고됐다. 이때 '황제 노역' 판결이 나왔다. 1심때 2억5천만원이었던 노역일당이 5억원으로 두 배 증액된 것이다. 당시엔 이 판결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으나 허 전 회장이 해외로 도피했다 최근 귀국해 벌금형을 50일간의 노역으로 털겠다고 나서면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선 '황제 노역' 못지 않게 508억원의 벌금형이 절반 수준으로 감경된 사유도 합당치 않다는 견해다. 벌금에 대한 법률적 감경조치는 '자수'의 경우에만 국한되는데 허 전 회장의 경우 횡령혐의에 대해 수사를 받다 법인세 포탈부분을 '자백'했기 때문에 '자수'로 보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 이런 의혹이 명쾌히 설명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논란은 지역 연고에 기반한 향판, 향검의 문제점과 조세포탈범죄에 지나치게 관대했던 과거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이 어우러져 빚어낸 결과로 보인다.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재벌에 대해 유난히 관용적이었던 법의 잣대가 달라진 시대정서 앞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것이다. 허 전 회장은 검찰 기소 전 조세포탈금액을 전액 납부하고, 횡령액도 모두 토해냈다고 한다. 이런 부분이 재판과정에서 과도하게 정상참작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조세포탈은 국가 경제의 기반을 흔드는 위중한 범죄행위다. 미국은 탈세에 대해 일벌백계로 엄히 다스리고 있다. 우리 재판부도 최근 달라지는 양상이다. 법원은 이번 일을 계기로 향판제뿐 아니라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사법시스템의 부조리와 모순을 획기적으로 혁신하려는 노력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달라진 시대 흐름에 발맞춘 과감한 변화만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와 권위를 되찾는 지름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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