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전국수석부장판사, '황제노역 방지' 금액·기간 제시
벌금 1억원 이하 10만원…이상일 땐 1000분의 1고액벌금 단계별 유치기간 하한 기준도 제시
【서울=뉴시스】신정원 장민성 기자 = 전국 수석부장 판사들은 28일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황제 노역' 논란과 관련해 1억원 이상의 고액벌금을 선고할 때 노역 일당을 원칙적으로 1000분의 1로 정하고 유치기간은 단계별로 하한선을 정하는 개선안을 제시했다.
수석부장판사들은 대법원이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 대법원청사에서 개최한 '전국 수석부장판사회의'에서 환형유치(換刑留置·벌금 또는 과료를 내지 못하는 범죄자에게 교도소에서 노역을 대신하도록 하는 제도), 즉 유치장 노역제도 개선안과 관련해 이같은 의견을 내놨다.
이 회의는 전국 수석부장판사들이 1년에 한 번씩 모여 사법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로, 이날은 고등법원급 8명및 지방법원급 22명 등 수석부장판사 30명과 법원행정처 차장 및 각 실국장 등 13명이 참석했다.
박병대 법원행정처장은 인사말에서 "법관들이 지금 상황의 엄중함을 절실하게 인식하고 있는지 함께 점검하고 냉철하게 진단할 필요가 있다"며 "과연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는 재판을 하고 있는지,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처신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어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수석부장들은 개선안과 관련해 벌금 1억원을 기준으로 그 이하일 땐 노역 일당을 10만원으로 통일하고 그 이상일 땐 벌금의 1000분의 1로 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고액벌금의 유치기간 하한 기준은 벌금 1억원~5억원 미만 300일, 5억원~50억원 미만 500일, 50억원~100억원 미만 700일, 100억원 이상 900일로 제안했다. 현행 형법은 벌금의 경우 노역장 유치 기간을 3년 이하로만 규정하고 있다.
이날 제시된 기준대로라면 벌금 254억원을 선고받은 허 전 회장의 경우 원칙적으로 900~1000일 범위 내에서 유치되고 노역 일당은 2540만원으로 정해져야 한다.
수석부장들은 다만 예외적으로 1억원 미만이 선고된 사건에서도 양형 조건을 참작해 1일 50만원 범위 내에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통상 고액벌금형이 부과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관세·뇌물·수재사범 등에 대해선 이날 제시한 유치기간의 하한선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하되, 납부·변제·경제상황 등에 비춰 현저히 부당하다고 판단되면 한 단계 낮은 구간의 기준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대법원은 이날 논의된 내용을 토대로 각급 법원 형사실무연구회 등을 통해 구체적인 세부기준을 마련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수석부장들은 지역법관제도와 관련해 국민이 갖는 우려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공감했다.
그러면서 지역법관 제도를 폐지하는 방안과 지법부장·고법부장·법원장 보임 등 단계별로 의무적으로 다른 지역을 순환근무하도록 하는 방안을 건의했다.
대법원은 향후 지역법관 제도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폐해를 개선할 수 있는 전면적이고 포괄적인 개선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아울러 수석부장들은 최근 발생한 음주 물의 사건에 대해서도 사법부 신뢰를 훼손할 수 있는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인식, 엄정한 조사와 이에 상응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데에 인식을 같이 했다. 동시에 소속 법원 법관들에게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주의를 환기시키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 외에 '바람직한 법원 운영을 위한 수석부장판사의 역할'과 '모두가 함께 하는 사법행정'을 주제로도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법원은 전국형사법관포럼과 형사법연구회 등을 통해 환형유치와 관련된 문제의식을 지속적으로 공유해 나갈 예정"이라며 "지역법관 제도에 대해선 전국 법관의 의견을 듣고 외부위원이 참석한 위원회 논의를 거쳐 개선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허 전 회장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을 확정받았다. 이후 노역 일당 5억원이 선고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국민의 공분을 샀다.
또 허 전 회장에 노역 일당 5억원을 선고한 장병우 광주지법원장은 전남 지역에서만 29년을 근무한 전형적인 지역법관이고 변호인과 가족들이 지역법관 출신인 사실이 드러나면서 지역법관 제도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이에 대법원은 노역 일당 및 유치기간의 적정성 등을 검토해 개선안을 마련키로 했고, 검찰은 허 전 회장이 형집행정지 중 '기타 중대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노역을 중단시킨 뒤 벌금을 강제집행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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