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구 세모녀 자살사건, '이거'면 막을 수 있었다

2014. 3. 2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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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정원 기자]

일자리는 많을수록 좋은 것인가?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물어온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반은 맞고 반은 그르다"고.

우선 맞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자리가 노동 소득을 발생시키고 이를 매개로 해서 좀 더 폭넓은 사회 생활을 가능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질 나쁜 일자리들이 많이 양산된다면,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생활의 개선을 도모하기 어렵다. 이제는 익숙한 표현인 '근로빈곤층'이라는 용어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도출된 개념이다. 그러니 일자리는 많을수록 좋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좋은 일자리가 많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모든 일자리를 질 좋은 일자리로 구성하지 않는다. 일을 해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빈곤층, 취업 능력과 의지는 있으나 구직을 단념하는 실망실업자,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불완전 고용층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송파구 세모녀 자살사건, 부실한 '사회안전망' 그대로 드러내

지난 달에 있었던 송파구 세모녀 자살사건이 가져온 사회적 파장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간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비극, 즉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절망을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그 원인을 규명하고, 대안을 제시해왔으나 눈에 띌만한 제도의 개선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역시나 대통령과 정부 당국의 진단이나 처방은 이런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하거나 굳이 외면하는 듯이 보인다.

송파구 세모녀 자살사건은 한국의 '부실한 사회안전망'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미 이와 관련해서는 여러 전문가들이 여러 경로로 의견을 표명했으므로 여기서는 그간 환기되지 않았던 '일자리'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것은 이들이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지정되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유 중 하나로 근로능력 판정 기준이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정부의 제도 상으로는 어떤 형식으로 든 '유급 노동'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할 이들이었으며, 역설적으로 '유급 노동'을 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자 생활은 수렁에 빠졌고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이다.

왜 이들은 '유급 노동'을 선택하기 어려웠을까? 유급 노동을 한다는 것은 자영 창업을 하거나 고용이 되어야 함을 말한다. 이들의 형편상 자영 창업은 언감생심이었을 것이고 결국 어디엔가 취업이 되어야만 생계 유지가 가능했던 상황이었다. 현재 국내에서 빈곤층을 지원하는 취업지원제도로는 크게 고용노동부의 취업성공패키지사업과 보건복지부의 희망리본사업이 있다.

둘은 대상자 및 경로에서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동소이한 제도이다. 아마 두 딸이 적극적으로 대처했다면 이 제도를 이용해 취업에 대한 희망을 가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취업을 한다는 것은 취업처의 요건에 부합하는 자격을 갖춰야 하고, 취업 후에는 취업처의 요구에 순응해야만이 취업이 유지될 수 있다. 따라서 취업은 연령이 많거나 건강에 문제가 있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풀타임 노동을 하기 힘든 이들에게는 선택의 폭이 매우 좁을 수 있다.

그럼, 다른 선택은 없었을까? 전혀 없지는 않다. 자활근로나 공공근로와 같은 정부재정일자리사업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정부재정일자리는 실업부조가 없는 국내 상황에서 실업부조로서의 역할을 일부 담당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공공근로는 규모가 크지도 않고 단기 보호 노동이라는 의미가 크다. 반면에 자활근로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참여할 수 있고, 다양한 업종에서 형성될 뿐 아니라 사회서비스 공급 등 사회적으로 유용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도 하다.

자활근로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의 수급자와 차상위자가 참여할 수 있기에 아마 세 모녀가 자활사업을 신청했다면 차상위자로 선정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며, 그렇다면 제도적으로는 자활근로사업에 참여를 할 수 있는 여지는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큰 딸이 건강이 좋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고 둘째 딸이 피치 못하게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을 했던 점을 고려한다면 선택의 폭이 좁은 풀타임 취업에 비해서 자활근로는 상대적으로 현실적이고 유용한 선택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은 건강이 좋지 않아 취업할 수 없고 사회 관계망에서 배제를 겪었던 이들 중에 자활근로 참여를 통해서 건강과 자신감을 회복한 이들이 많으며, 안정적으로 자활근로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직업적 전망을 새롭게 수립한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자활근로를 운영하는 지역자활센터는 다양한 사회적 자원을 연결해주거나 상담 및 사례 관리를 통해 비교적 체계적인 심리적 지원까지도 진행하고 있어 빈곤층에게 매우 유익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팔이 아픈 어머니를 제외한 두 딸 중 누군가가 자활근로를 신청했을 경우 참여가 가능했을까? 장담하기 어렵다.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하나는 정책 기조의 문제이다. 현재 정부는 취업률을 제고하기 위해 취업성공패키지를 우선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실제로 자활근로 정책 대상자는 2014년 들어 전년 대비 6천 명이 감소한 6만 명으로 설정이 되어 있으며, 2013년 9월부터 53개 시군구에서 <근로빈곤층 취업 우선 지원 시범사업>을 전개하고 있는데 이 중 자활근로로 의뢰되는 경우는 10% 미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아마도 이들이 자활사업에의 참여를 신청했다 하더라도 취업성공패키지 프로그램에 우선 배치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취업은 기업의 선호와 당사자의 상황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 현 정부 들어서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는 취업우선 사업은 실질적인 의미에서 노동 역량이 취약한 이들에게 일정하게 보호된 일자리를 통해서 노동경험을 쌓고 자활의지를 배양하며, 심리적 치유를 한 후에 경쟁이 발생하는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정책적으로 축소시키고 있는 셈이다.

또 하나는 제도의 문제인데, 정부는 차상위자의 자활근로 참여비율을 도시형의 경우 30%로 제약을 하고 있어 도시에 살았던 이들은 신청을 했어도 선정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이들의 상황과 제도의 성격상 가장 유용했으리라 생각되는 자활근로조차도 도움이 되었을지 장담하지 못하는 셈이다.

제도적인 측면에서 세 모녀는 유급 노동에의 참여가 가능한 근로능력자였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은 이들이 노동을 통해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지 못했다. 부실한 사회안전망도 문제지만 일자리 지원 정책도 부실한 탓이다.

정부재정일자리사업, '치유의 과정' 된다

물론 일자리 지원 정책에서 취업률을 제고하기 위한 정책은 중요하다. 정부재정일자리사업보다는 일반 노동시장에서의 취업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좀 더 많이 제공해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일반 노동시장에서 안정적 일자리를 가지기는 어렵다. 정부재정일자리는 이런 상황에 대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제가 집에서 30% 가지고 살아요. 폐도 한쪽도 없고 그래서 숨이 차서 아무것도 못했어요. 그래서 겨우 집안 살림만 했죠. 지금 자활사업에 참여하면서 몸이 너무 좋아졌어요."

"제 몸에 질환이 아직 있으니까. 숨쉬기부터 힘이 드니까. 걸어올라 다니는 것도 힘이 드니까. 그래도 이 자활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렇게 와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2012년에 만난 자활근로 참여자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일반 노동시장에서 유급 노동이 가능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이들임에도 근로능력자로 판정받은 이들이었다. 모든 일자리가 질 좋은 일자리가 될 수는 없다. 정부재정일자리사업 역시 질 좋은 일자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삶의 무게를 이기는 '치유의 과정'이 되기도 한다. 오랫동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 배우자 또는 본인의 사업 실패나 중증 질환, 배우자의 사망 등과 같은 충격을 경험하면서 가난의 질곡에 빠진 이들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책은 지금보다 더 많아야 하고 더 충실해져야 한다. 정부재정일자리사업, 특히 지역자활센터가 수행하는 자활근로의 참여 대상자를 지금보다 더 늘린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것이다. 그것은 기회는 희망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새로운 혁신적인 제도를 만들기 어렵다면, 지금 있는 제도라도 좀 더 보완하는 것이 정부가 발휘할 수 있는 지혜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http://blog.daum.net/wed95)에도 올렸습니다.스마트하게 오마이뉴스를 이용하는 방법!☞ 오마이뉴스 공식 SNS [ 페이스북] [ 트위터]☞ 오마이뉴스 모바일 앱 [ 아이폰] [ 안드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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