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 5억 노역, 헌법상 평등원칙 위배"

2014. 3. 2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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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먹튀 회장' 논란에 노역형 개선 목소리

변협 "서민의 1만배…불균형 고쳐야"

인권연대, 독일 일수벌금제 도입 제안

재산·범죄정도 따라 일당 선택 가능

일당 상한제·법관 재량 제한 제안도

대법원, 28일 '노역제' 논의키로

허재호(72) 전 대주그룹 회장에게 '일당 5억원'짜리 노역형 집행이 시작되자, 노역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지고 있다. 허 전 회장은 400억원대의 벌금·세금을 내지 않고 슬그머니 출국해 뉴질랜드에서 호화생활을 하다가 지난 22일 귀국했다.

한때 시멘트·제지 업체 등 계열사 20여곳을 거느렸던 허 전 회장은 24일 아침 광주시 북구 문흥동 광주교도소 미결수 감방에서 노역장 유치 사흘째를 보냈다. 허 전 회장은 애초 교도소 독방에서 지내다가 4명이 수용되는 '혼거실'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광주교도소 쪽은 "첫날부터 혼거실에 수용했다"고 밝혔다. 허 전 회장은 당뇨 합병증으로 발이 부은 상태여서, 비교적 쉬운 일인 종이가방에 풀을 붙이는 잡역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허 전 회장이 노역장에 유치된 뒤 하루 5억원씩 벌금을 공제받고 있는 것은 사법부의 '봐주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높다. 광주지검은 2008년 9월25일 508억원의 세금 탈세를 지시하고 10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허 전 회장을 기소한 뒤 징역 5년에 벌금 1000억원을 구형하면서, '탈루 세금을 납부했고 횡령금도 변제 공탁했다'며 이례적으로 벌금을 선고유예해 달라고 요청했다. 광주지법 형사2부는 2008년 12월30일 허 전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벌금 508억원을 선고했다. 법관의 재량으로 형을 덜어주는 '작량 감경'을 적용해 벌금을 구형량의 반으로 삭감해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인 광주고법 형사1부(재판장 장병우 현 광주지법원장)는 2010년 1월21일 허 전 회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벌금을 1심의 절반으로 깎으면서 '자수 감경'(자수한 죄인의 형벌을 줄여주는 일) 논리를 적용했다. 지역 법조계에선 "횡령 혐의로 조사를 받던 허 전 회장이 구속을 면하려고 조세포탈 혐의를 인정한 것을 자수로 볼 수 있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항소심 재판부는 또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 구치소 노역장에 유치하는 '환형유치금'을 하루 2억5000만원(1심)에서 5억원으로 상향 조정했다.(<한겨레> 3월21일치 9면)

허 전 회장이 실제로 벌급 납부 대신 일당 5억원짜리 노역형을 선택한 것을 계기로,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벌금 미납자에게 선고하는 노역장 유치 기간은 최장 3년이다. 2008년 삼성그룹 이건회 회장에게 벌금 1100억원을 선고하면서 '노역 일당'을 1억1000만원으로 정한 것은 벌금을 안 내면 최대 1000일 동안 노역장에 유치될 수 있다는 '경고'였다. 그런데 검찰과 법원은 허 전 회장에게 하루 5억원짜리 '황제 노역' 처분을 한 셈이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이날 성명을 내어 "서민들이 벌금을 내지 않으면 노역장에 유치되어 하루 5만원에서 10만원씩 공제받는 것에 비해, 1만배 또는 5천배나 차이가 나는 것은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변협은 노역장 유치제도의 개선 작업과 법관을 평생 한 지방에서 근무하게 하는 지역법관제(향판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논의도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형벌은 누구에게나 고통의 크기를 같게 해야 한다"며 "독일처럼 '일수 벌금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은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 재산 정도에 따라 하루 노역 일당으로 1유로에서 5천유로까지의 구간 중 하나를 선택하고, 범죄 정도에 따라 노역 일수를 5일~360일 범위에서 매긴다. 김상훈 변호사는 "하루 노역 일당이 일정 액수를 넘지 못하도록 상한을 정하고, 법관의 재량 범위를 제한하는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법원은 28일 전국 수석부장판사 회의에서 노역제에 대해 논의할 방침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1심에서) 검찰이 벌금형의 선고유예를 구형했는데, 법원이 벌금형을 선고했으니 엄정하게 판결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문제점이 불거진 만큼 대법원에서 열리는 전국 수석부장판사 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논의 사항이 정책 추진으로 나아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김미향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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