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생존자 "9살 아이에 물고문..지옥이었다"

2014. 3. 24.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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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김현정의 뉴스쇼]

-굶주림에 지네,생쥐까지 잡아먹어-성폭행 비일비재,반죽음정도로 구타-박원장 2년형? 피가 거꾸로 솟아-특별법으로 진상규명, 처벌해야

■ 방송 : CBS 라디오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대표, 조영선 형제복지원 대책위 집행위원장 (변호사)

1987년 부산의 '형제복지원 사건', 워낙 엄청난 규모의 인권유린 사건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많은 분들이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을 하실 겁니다. 사건의 요지는 이랬습니다. 1975년 만들어진 이 '형제복지원'은 3000여 명을 수용하는 국내 최대의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는데요, 우연히 한 검사가 산중턱을 지나다가 감금된 수용자들을 목격하면서 수사가 시작이 됐고요. 수사결과 수용자들에 대한 폭력은 물론이고 성폭행, 심지어 사망자도 513명이나 됐다는 사실이 드러난 겁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철저한 진상규명이 되지 않은 채 관계자들에 대한 가벼운 처벌만으로 마무리가 됐고요. 출소 후에 이 원장은 다시 복지기관을 만들어서 지금 복지재벌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얘기가 들립니다. 피해 생존자들이 지난 12월 말에 국가를 상대로 진상조사,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나섰는데요. 지난 주말에 특히 TV 다큐멘터리에 방영이 되면서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형제복지원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오늘 이 시간 짚어보죠. 먼저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대표세요. 한종선 씨 연결이 돼 있습니다. 한 대표님, 안녕하세요?

◆ 한종선 > 안녕하세요.

◇ 김현정 > 한종선 씨께서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이 '형제복지원'에 계셨던 겁니까?

◆ 한종선 > 1984년부터 1987년, 9살에 들어가서 12살까지 있었죠.

◇ 김현정 > 어쩌다가 그 9살 어린 아이가 부랑자수용소에 수용이 됐습니까?

◆ 한종선 > 그 당시에 저 같은 경우에는 한부모 가정이었죠. 어머니가 안 계셔서 아버지가 파출소에 저희를 작은누나와 인계를 한 건데 그 당시에 저쪽 시설에 가면 좋은 것 입고, 그리고 국가가 지원해 주는 그런 시설이 있다. 혼자서 그렇게 키우는 것보다 애들 그렇게 맡기는 게 낫지 않느냐 (설득을 해서 가게 된 것이다).

◇ 김현정 > 가보니 한종선 씨처럼 나이 어린 사람들이 많았습니까?

◆ 한종선 > 대략 한 100명 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 김현정 > 9살, 10살 이런 어린 아이들이?

◆ 한종선 > 그렇죠.

◇ 김현정 > 도대체 형제복지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이것이 궁금한 건데. 한종선 씨가 기억하는 그곳의 모습, 가장 기억이 나는 장면들이 있다면요?

◆ 한종선 > 그곳에서 (기억나는) 장면이라면 그 안에서 일단 먹을 게 너무 없어요. 지네나 솔방울, 솔잎...그냥 꽃처럼 열리는 것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 대부분 다 따먹습니다.

◇ 김현정 > 먹을 게 없어서?

◆ 한종선 > 먹을 게 꽁보리밥하고 된장국인데 하여튼 된장색만 나는 된장국이 있어요. 그냥 똥국이라고 불리는데.

◇ 김현정 > 그래서 그렇게 밥이 모자라서 지네까지 잡아드셨다고요?

◆ 한종선 > 지네까지 먹어봤습니다, 저는. 다른 형들 같은 경우에는 제가 그때 대청소를 하다가 매트리스 쌓인 데 보면 축축하지 않습니까. 그걸 싹 끄집어냈는데 그 안에 털도 안 난 생쥐들이 있었어요. 그때 있던 형이 이건 보약이라면서 먹는 거예요.

◇ 김현정 > 생쥐를 잡아서 먹기까지 했어요?

◆ 한종선 > 네.

◇ 김현정 > 그렇게 배고팠던 기억이 있고, 배고팠던 것보다 더 심한 것은 어떤 폭력이 있었다는 건데 어떤 것들을 듣고 보셨습니까?

◆ 한종선 > 그 폭력은 일단 기본적으로 성폭행 같은 경우에는 진짜 너무 비일비재해서,

◇ 김현정 > 성폭행이 비일비재했다고요?

◆ 한종선 > 그렇죠.

◇ 김현정 > 누가 누구를 성폭행 합니까?

↑ (sbs 화면캡쳐)

◆ 한종선 > 힘센 형들이나 경비들이나 조장들, 이런 사람들이 있죠. 소대장들하고. 그런 사람들이 나이 어린 아이들 상대로 많이 했었죠.

◇ 김현정 > 그러니까 소대장이라고 불리는 관리자들이 나이 어린아이들을 성폭행 했어요?

◆ 한종선 > 9살 기준의 아동들, 힘 못쓰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런데 얼굴은 예쁘장하고 귀엽게 생긴 애들이 있고.

◇ 김현정 > 그런 아이들을 성폭행했어요?

◆ 한종선 > 그렇죠. 그런데 그 당시에는 제가 성폭행이 뭔지도 몰랐어요.

◇ 김현정 > 모르죠. 그 나이에 뭘 압니까.

◆ 한종선 > 반쯤 죽는 다는 걸 아니까, 반항을 하면. 그냥 어쩔 수 없이 당할 수 밖에 없는 거죠.

◇ 김현정 > 그것이 이제 와서 보니 성폭행이었구나?

◆ 한종선 > 그렇죠.

◇ 김현정 > 구타는 어느 정도나 당한 겁니까, 사람들이?

◆ 한종선 > 구타는 일단 반쯤은 다 죽어봤을 거예요.

◇ 김현정 > 3000여 명이 다?

◆ 한종선 > 한 번쯤은 그렇게 겪어봤기 때문에 너무 공포스럽기 때문에, 함부로 대항하거나 덤비지를 못하는 거죠.

◇ 김현정 > 일부러 대항하지 못하게 잘못이 있든 없든 그렇게 반쯤 죽일 듯이 구타를 해 놓는군요?

◆ 한종선 > 네.

◇ 김현정 > 그러다 실제로 죽기도 하고요?

◆ 한종선 > 사람이 엄청나게 많이 맞아서 반쯤 죽었다 일어났다 하더라도, 병원에 실려갔다 온다 하더라도 '병원 1'이라고 체크가 돼요. 그럼 치료받고 소대로 무조건 복귀가 됩니다.

그런데 안 돌아오고 '병원 1'로 며칠 동안 적혀 있다가 어느 순간 '병원 1'이 지워집니다. 그리고 총인원도 한 명이 줄어들어요. 돌아오지 않고 그냥 지워지는 거죠.

◇ 김현정 > 그 관리자들에게 혹시 그 사람 어디 갔냐고 물어본 적은 없으세요?

◆ 한종선 > 그 관리자들이 대놓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그놈 죽었다', 이렇게 얘기해요. '너희들도 말 안 들으면 그 꼴 난다. 말 잘 들어라', 이렇게 되는 거죠.

◇ 김현정 > 그렇게 해서 87년에 조사를 해 보니까 75년 문 열었을 때부터 87년까지 죽은 사람이 513명, 그리고 최근에 38명이 더 추가로 발견이 되죠. 그러니까 당시 수용자들은 그 사람들이 끌려가는 것까지 봤지만 묻히는 건 못 봤던 거예요?

◆ 한종선 > 그렇죠. 대부분 수용자들이 다 그럴 거예요.

◇ 김현정 > 검찰이 당시 수사를 했는데도 500여 명에 대해서 진상규명이 제대로 안 된 건가요?

◆ 한종선 > 전혀 안 됐죠. 그래서 저희는 처음에는 그 당시에 박인근은 구속됐던 걸로 알고 있었으니까.

◇ 김현정 > 박인근 원장이 처벌을 받기는 받았습니다. 그런데 징역 2년 6개월형이었어요. 이 이야기를 듣고 피해 생존자로서 어떠셨어요?

◆ 한종선 > 피가 거꾸로 솟는 거죠. 저뿐만이 아니고 지금 저한테 연락을 해 오시는 모든 피해자분들이 박인근 원장 사형당한 줄 알았다고, 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십니다.

◇ 김현정 > 사형 정도의 감이라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생존자들은.

◆ 한종선 > 그렇죠. 왜냐하면 저희들은 아무 죄도 없이 끌려간 것 아닙니까, 잡혀간 거고. 심지어 10년 넘게 산 분도 있잖아요, 죄 없이. 그런데 박인근 원장은 2년 6개월 살고 나왔다고 하니까 그거 누가 믿겠어요, 아무도 못 믿죠.

◇ 김현정 > 지금 생존자 분들이 어떻게들 살고 계세요, 거기서 나온 이후로?

◆ 한종선 > 일단 대부분이 생계가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힘들어하고, 그리고 트라우마가 있다 보니까 사람들이 감정이 욱 하는 게 있더라고요, 보니까. 그리고 어떤 분은 온몸이 고문에 의해서 몸이 만신창이 되어서 죽는 날만 기다리고 계시는 분도 있고 그렇습니다.

◇ 김현정 > 그냥 구타 정도가 아니라 고문도 있었습니까?

◆ 한종선 > 제가 그 안에서 겪었던 고문은 그냥 아무것도 안 먹입니다. 안 먹이고 무릎 꿇리고 손발 묶어놓고 그리고 잠도 안 재워요. 한 겨울 같은 경우에는 손발 묶어놓고 세면장에서 그냥 사정없이 맨몸에 찬물 계속 끼얹어죠.

◇ 김현정 > 그 어린아이들, 9살 10살짜리 애들한테도?

◆ 한종선 > 그래서 저는 지금도 한여름에 더워도 찬물로 샤워를 못해요.

↑ 한종선 씨

◇ 김현정 > 알겠습니다. 이 사건 어떻게 전개되는지 관심 가지고 지켜보겠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 한종선 > 감사합니다.

◇ 김현정 > 피해생존자 대표 한종선 씨를 먼저 만나봤습니다. 이 생존자들이 모여서 대책위 꾸리고 재진상규명해 달라, 요청을 하면서 이 문제가 이슈화가 된 건데요. 지금 들으시면서 많은 분들이 의아해하셨을 거예요. 사상 최대규모의 인권유린 사건인데 어떻게 그 가해자인 원장은 고작 2년 6개월형 받았을까. 법률전문가 얘기 듣겠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 대책위 집행위원장 맡은 조영선 변호사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조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 조영선 > 안녕하십니까? 조영선 변호사입니다.

◇ 김현정 > 2년 6개월형 선고. 어떻게 형량이 그거밖에 안 나왔죠?

◆ 조영선 > 앞서 한종선 씨도 이야기했습니다마는 여기에서는 오해가 있는 부분들이 있는데요. 지금 2년 6개월을 살았었던 부분들은 '형제복지원' 자체, 주례동에 있었던 '형제복지원' 자체에서의 감금이나 폭행, 이런 이번 부분이 조사된 게 아니고 울산에서 운전면허시험장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해서 170여 명이 그쪽으로 옮겨갔습니다.

◇ 김현정 > 본인의 운전면허시험장 차리는데 거기다가 수용자들 데려다가 일 시켰죠.

◆ 조영선 > 거기에서의 감금, 폭행, 감금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고 다시 말해서 형제복지원의 근간인 주례동의, 3천여 명이 있었던 시설에 대한 문제는 아니었던 거죠.

◇ 김현정 > 아예 그건 덮은 채 지나간 겁니까?

◆ 조영선 > '형제복지원' 자체에서의 감금, 폭행이나 치사 이런 부분은 조사되지 않았고 박인근 개인의 횡령. 그러니까 부산시에서 지원 받는 금액의 약 6억여 원 가량을 횡령했다는 문제나 일본 엔화를 허가 없이 가지고 있었다, 외환관리법 위반. 이번 이런 부분들만 조사가 되었고 일부 감금죄 부분들이 기소가 됐습니다마는 나중에는 결국 그것까지도 무죄가 된 거거든요.

◇ 김현정 > 그건 왜 그렇게 됐습니까?

◆ 조영선 > 감금죄 부분들에 대해서는 당시 훈령에 의해서 구금은 가능했었다라고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게 처음에는 대구고등법원에서는 그게 유죄다, 그랬다가 다시 대법원에 가서 이건 정당행위다.

◇ 김현정 > 법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구금할 수 있다.

◆ 조영선 > 구금할 수 있다, 이렇게 되어 있어서 무뎌졌다. 다시 대구고등법원에서 이건 아니다. 무죄로 했다가 다시 대법원 가서 유죄. 세 번에 걸쳐서 결국은 최종적으로는 김용준 재판관이 있었을 때 결국은 여기서 무죄가 선고가 됐죠.

◇ 김현정 > 김용준 전 총리후보자가 결국 마지막에 그 부분 무죄 선고했다, 이 말씀이신데 더 희한한 건 감옥에서 나와서 또 복지시설을 운영했다고요?

◆ 조영선 > 저희가 알고 있는 건 '형제복지원'인데요. '형제복지지원재단'이라는 이름으로 현재까지 운영을 하고 있고요.

◇ 김현정 > 지금도요? 이름만 살짝 바꿨네요.

◆ 조영선 > 네, 이름만 바꿨을 뿐이고 계속 법인 자체는 존속을 하고 있고 재산도 상당 부분 부산시에 있는 지역주민들도 많이 오해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쪽이 87년도에 해산이 됩니다. 법인이 해산되는 게 아니고 원생들이 갑작스럽게 방출이 돼버리는 거죠. 다른 곳으로 이송되거나 아니면 배회하도록 그냥 내보내버린 거죠. 마치 그것이 끝난 걸로 오해가 돼버린 거고.

◇ 김현정 > '형제복지원' 해체가 됐구나 끝났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거군요.

◆ 조영선 > 그렇게 생각했던 거고 2년 6개월로 종결됐다고 그러니까 끝났는 가보다 했지만 그 뒤로도 법인은 그대로 존속을 해서 거기 주례동 가는 토지는 다 매각이 돼서 제2의 곳으로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 뿐인 거고.

◇ 김현정 > 그럼 몇 명이나 지금 새로운 시설엔 사람이 있습니까?

◆ 조영선 > 지금 현재 그것까지는 저희가 확인이 안 돼요. 요양병원 등을 운영하고 있는 걸로 저희가 알고 있습니다.

◇ 김현정 > 잘 살고 있습니까, 그래서 재산도 그대로고?

◆ 조영선 > 그거는 최근에 언론 보도 나와 있는 것처럼 부산저축은행 사태 있지 않습니까? 부산저축은행에서 가족이나 복지지원재단 이름으로 또 본인 이름으로 또 사위 이름으로 무담보로 약 400억가량을 대출 받은 걸로 해서 지금 기소가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 김현정 > 지금 이제 이 사건 그 당시 진상규명도 안 되고 그냥 어영부영 넘어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들끓고 있는데 다시 형사소송 거는 것도 가능한가요?

◆ 조영선 > 사실 그거는 과거에 전두환, 노태우 부정선거와 마찬가지 문제가 발생됐을 때인데 현재로서는 형사소송은 공소시효 때문에 불가능 할 거라고 보고요, 다만 본인이 이러한 과거사, 과거의 잘못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피해자들과 그리고 사회와 국가에 대해서 사죄를 하고 자진적으로 헌납을 한다면 그러한 형태로서의 과거사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될 수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형사적 처벌은 공소시효 문제로 인해서 어렵지 않나...

◇ 김현정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상규명을 요청하는 이유는 도대체 그 5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은 어떻게 죽었는지 이거 밝혀내야 된다는 말씀이신 거죠?

◆ 조영선 > 그렇습니다. 이것은 '형제복지원 사건'은 단순한 어떤 과거사의 문제만이 아니라 장애인이랄지 노인의 문제, 아동의 문제 우리가 얼마 전에 도가니 사건이 문제가 됐습니다마는 사실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게 바로 '형제복지원 사건'입니다.

◇ 김현정 > 알겠습니다. 그것도 사실 부산시와 합작해서 만들었던 곳이예요. 국가에서 계속 지원을 엄청나게 했던 곳이기 때문에 더 우리가 철저하게 파헤치고 가야 되는 거겠죠. 관심 가지고 지켜보겠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 조영선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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