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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서울을 기억·반영하는 법, 연극 '환도열차' & '남산 도큐멘타'

등록 2014.03.25 12:43:56수정 2016.12.28 12: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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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연극 '환도열차'

【서울=뉴시스】연극 '환도열차'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서울의 기억을 환기하고 현재를 톺아보게 만드는 연극 두 편이 나란히 무대에 오르고 있다. 지난해 연극 '여기가 집이다'로 호평 받은 장우재 연출(극단 이와삼 대표)의 신작 '환도열차'와 크리에이브 바키 대표인 이경성 연출의 신작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 편'이다.

 '환도열차'는 정통 연극의 묵직함,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 편'은 기존 연극의 형식을 깬 실험성이 눈에 들어온다.

 '환도열차'는 정통 연극이지만, 소재는 신식이다. 두 시공간이나 동일 시공간의 두 곳을 잇는 시공간의 좁은 통로를 일컫는 '웜홀'을 다룬다. 6·25 동란 때 환도(還都) 열차가 2014년 현재의 서울에 갑자기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환도열차는 실제로 역사에 등장한다. 휴전협정이 체결된 후 1953년 부산을 출발, 피란민들을 싣고 서울로 향한 열차다.

 환도열차의 유일한 생존자인 '지순'(김정민)은 아흔이 된 남편 '한상해'(윤상화)와 서울의 현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60년이 흐른만큼 너무나 변했기 때문이다. "전쟁 때 사람들은 다 죽었는데 전쟁이 아직도 안 끝났느냐"고 묻는 그녀에게 현재의 서울은 불편한 시공간이다. 결국 지순은 이 모든 것이 이야기라면서 울부 짖는다.

 판타지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환도열차'는 결국 우리의 이야기다. 부푼 꿈과 희망을 안고 60년 전 환도열차에 올랐던 이들에게 지금의 서울은 과거의 상상과 같은 곳인가.  

 장 연출은 한국에서 살 때 인간 관계의 아픔을 겪은 뒤 미국 국적을 딴 '제이슨 양'(이주원)의 대사를 빌어 한국의 현실에 모진 비판을 가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근무하다 환도열차의 기이한 현상을 조사하기 위해 한국으로 파견되는 그의 눈에 서울의 모습은 막막하고 무기력하기만 하다.

【서울=뉴시스】연극 '환도열차'

【서울=뉴시스】연극 '환도열차'

 제이슨양은 그럼에도 한국에 남기로 한다.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나라이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게 장 연출은 절망 속에도 희망을 찾고자 하는 의지를 버리지 않는다. 다만 제이슨양이 한국에 대해 절망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못해, 그의 분노가 무조건 반사적으로 느껴지는 건 아쉽다.

 그럼에도 작가정신을 밀고나가는 뚝심이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서울, 더 나아가 지금 이 땅에 대한 애정과 관심 없이는 불가능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는 말이 떠오르는 이유다.  

 배우들은 모두 호연한다. 특히 '전례가 없는 '서울 사투리'를 구사하는 지순 역의 김정민이 주목할 만하다. 그녀는 부끄럼과 수줍음이 많지만, 내면은 강인한 지순의 옷을 제대로 입었다.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 편'은 1962년 남산 드라마센타가 개관한 이래 이 극장에서 만들어진 연극과 사건들, 사람들의 자취를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보인다.

 데이트 장소·산책 코스로 주로 연상되는 남산의 1960~70년대에는 어둠과 침묵의 이미지가 강했다. 드라마센터에서 불과 몇십 미터 떨어진 지금의 서울유스호스텔 건물은 당시 안기부의 남산 본관, 서울종합방재센터는 유치장, 대한적십자사 건물은 안기부의 행정과 감청이 이뤄진 곳이다. TBS 교통방송청사는 감찰, 수사, 행정이 종합적으로 행해진 건물이었다.

 극작가 유치진이 주축이 돼 세운 드라마센터는 1962년 4월12일 개관공연 '햄릿'을 시작으로 '밤으로의 긴 여로', '포기와 베스' 등을 공연했으나 1963년 재정난으로 1년여 만에 막을 내렸다. 이후 결혼식장, 미8군 공연단의 재즈 공연장, 영화 상영관 등으로 사용되며 극장 본연의 목표를 잃어버린 듯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 유덕형의 '초분', 오태석의 '태', 안민수의 '하멸태자', 이상우의 민족 마당극 '장산곶매' 등 한국 현대연극사에 방점을 찍은 작품들을 공연했다. 로마 원형극장을 연상케 하는 극장 내부가 인상적인데 1세대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했다.  

【서울=뉴시스】'남산 도큐멘타 : 연극의 연습 - 극장 편'

【서울=뉴시스】'남산 도큐멘타 : 연극의 연습 - 극장 편'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 편'은 남산예술센터의 전신인 이 드라마센터의 입을 빌린다. 극장 스스로가 자신의 역사와 의미를 되새기는 일종의 메타 연극이다. 기존 텍스트를 재현하는 전통적인 서사적 구조 연극을 벗어난다. 아카이빙과 인터뷰, 다큐멘터리와 토론 양식이 결합됐다. 특히 실제 인물들의 인터뷰와 뉴스기사, 문헌 자료 등을 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이 흔적들은 1960년 이후 남산 일대에서 일어난 사회적 사건·장소들의 기능과 자취와 만나면서 한국, 구체적으로 서울의 현대사를 환기시킨다.

 "우리의 연극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의 연극은 누군가의 기억이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는 관객의 숫자만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같은 장소와 시간에서도 모든 사람이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건 아니다. 자신의 경험과 해석이 기억에 묻어날 수밖에 없다. 연극은 이를 포착하며 극장 안의 이야기를 극장 밖으로 확장하는 묘를 발휘한다.  

 '도큐멘타'라는 제목은 독일의 카셀에서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미술행사 '카셀 도큐멘타'에서 차용했다. 독일 나치 정권하에서 자행된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반성, 자각에서 출발한 행사다. 이 연출은 역사와 극장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로 이를 사용한 것이다.

 두 작품 모두 지금 공연하는 장소가 아니면 공연하기 힘든 양식이다. '환도열차'는 관객 출입구를 비롯해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의 곳곳을 동선으로 활용한다. 객석과 무대의 구분이 없으면 힘든 구성이다. 공사장에서 주로 볼 수 있는 H빔을 무대 곳곳에 세워 열차와 현재의 서울에서 느낄 수 있는 차가움과 삭막함을 은유했다. 기존 작품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무대 뒤편의 포켓까지 활용, 깊이감을 느낄 수 있는 터널로 활용한다.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 편'은 남산예술센터라는 극장을 탐구하는 작품인만큼 이곳 외에서는 공연을 할 수 없다. 프로시니엄과 아레나 무대를 혼합한 독특한 구조를 지닌 이 극장의 빈 무대를 완전히 노출,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어 '환도열차'처럼 공연장 곳곳을 사용한다. 공연 전 남산 일대를 투어하는 사전프로그램 '유령산책'을 진행, 남산예술센터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묘미도 선사한다.  

【서울=뉴시스】'남산 도큐멘타 : 연극의 연습 - 극장 편'

【서울=뉴시스】'남산 도큐멘타 : 연극의 연습 - 극장 편'

 두 작품 모두 연극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임을 깨닫게 한다. 정통연극과 실험연극이라는 다른 태도를 취하지만, 어제의 서울과 오늘의 서울을 만나게 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것은 공통점이다.

 '환도열차'는 무대 디자이너 박상봉, 작곡가 조선형 조명 김성구, 의상 오수연 등이 힘을 보탠다. 예술의전당이 올해 기획공연으로 선보이는 'SAC 큐브'의 시작이다. 4월6일까지 볼 수 있다. 2만5000~4만원. 예술의전당 쌕티켓. 02-580-1300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 편'은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가 올해 시즌 첫 프로그램으로 크리에이티브 바키와 공동제작한 작품이다. 크리에이티브 바키의 이 연출과 스태프, 배우들이 공동 창작하는 '연극의 연습 -인물 편'(제15회 변방연극제), '서울 연습-모델, 하우스'(두산아트센터·2013)에 이은 시리즈 세 번째다. 나경민, 성수연, 신선우, 김다흰, 장수진, 최요한 등이 출연한다. 30일까지 공연한다. 1만8000~2만5000원. 남산예술센터. 02-758-2150

 '환도열차', 진정성 있는 뚝심 ★★★★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 - 극장 편', 모든 사람의 기억을 활용하는 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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