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사생활 침해" 요즘엔 "더 달아달라".. 불안이 키운 CCTV 인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사생활 침해 논란 등으로 기피 대상이었던 CCTV가 이제 각 지역마다 앞다퉈 유치하려는 귀빈 대접을 받고 있다. 21일 서울의 각 구청 등에 따르면 집이나 회사 주변에 CCTV를 설치해 달라는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성범죄 등 흉악범죄를 예방하고 불법 주차를 비롯한 얌체 행위를 잡아내는 데 CCTV가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조건 '내 집 앞'을 고집하는 황당한 민원도 적지 않아 구청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총 815대의 CCTV를 운영 중인 서울 종로구청의 경우 설치 요청 민원이 850건에 달한다. 1706대를 가동 중인 강남구청에는 935건, 810대를 운영 중인 노원구청에도 440대의 설치요청 민원이 제출돼 있다. 520대를 운영 중인 광진구청에는 민원이 무려 1294건이나 쇄도했다. 광진구청 관계자는 "최근 부쩍 CCTV 설치 민원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큰 이유는 범죄에 대한 불안 탓으로 해석된다. 최근 자택인 서울 구로구 아파트 입구에 CCTV 추가 설치 민원을 낸 김모(45)씨는 "어린 자녀를 둔 입장에서 CCTV 숫자가 부족한 것 같아 민원을 제기했다"며 "CCTV는 많으면 많을수록 안심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신청 절차가 간편해진 것도 민원 증가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각 구청이나 서울시 120 다산콜센터에 전화를 하거나 구청 홈페이지에 접속해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청이 자유롭다 보니 황당한 민원도 많다. CCTV가 자택 반경 30m 내에 설치돼 있는데도 "대문 앞에 하나 더 달아 달라"거나 자신의 사유지에 설치해 달라는 경우도 있다. 가파른 난간 등 설치가 불가능한 곳에 막무가내로 달아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
CCTV 설치 요청에는 지역 특성도 반영된다. CCTV는 통상 방범용과 주차위반 단속용·문화재 단속용·공원 단속용으로 나뉜다. 민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방범과 주차위반 단속이다. 강남구 관계자는 "종로는 꼬불꼬불한 뒷골목 등 치안이 불안한 곳이 많아 방범용 민원이, 강남은 강남대로 근처 불법 발레파킹이나 학원가 주변 무단 주차 차량을 단속해 달라는 민원이 주를 이룬다"고 말했다.
구청은 제한된 예산 탓에 한숨만 내쉬고 있다. CCTV 1대를 설치하려면 기계 구입비 100여만원 외에 땅을 파고 전선을 연결하는 비용까지 도합 1500만원 이상 소요된다. 설치 후 전기료나 보수 비용도 만만찮다. 구청별로 신규 설치되는 CCTV가 연 10∼30대 수준에 그치는 이유다. 대전대학교 이봉한(경찰학) 교수는 "넘치는 민원 탓에 CCTV가 정작 필요한 곳보다 민원이 빗발치는 곳에 설치되는 경향이 있다"며 "예산은 한정돼 있는 만큼 어느 곳에 먼저 설치해 운영할지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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