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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정의 공연 돋보기] 낭독공연, 작품의 주제·깊이 느끼게 하는 장르

입력 : 2014-03-20 21:13:42 수정 : 2014-03-20 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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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 공연은 텍스트를 충실히 전달하는 형식의 공연으로, 대사뿐 아니라 인물들의 동선이나 감정까지 해설해주곤 한다. 이는 신작 희곡을 선보일 때 활용되곤 하는데, 관객의 피드백을 얻은 다음 수정·보완하여 공연을 완성해나가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소극장 판, 명동예술극장, 두산아트센터, 남산예술센터 등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낭독 공연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낭독공연은 예전과 달리 시청각적인 요소를 통해 공연성을 좀 더 추구하며 자칫 지루할 수도 있을 무대에 새로운 재미를 불어놓곤 한다. 오히려 대사를 차분히 읊는 가운데 요란스럽지 않은 무대장치와 절제된 시청각적 요소가 조화를 이루며 관객에게 새로운 묘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얼마 전 강동아트센터에서 관람한 ‘영영이별 영이별’의 경우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예민하게 호흡을 조절하며 한 편의 긴 시를 읊듯 독백하는 배우 박정자의 목소리가 해금 소리며 영상과 어우러지면서 결이 고운 김별아의 문체를 입체적으로 살렸다. 이 극은 단종의 비 정순왕후가 짧지 않은 생을 마감하고 자신의 49재를 지켜보며 독백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처연한 뒷모습으로 멈춘 듯 걸어가며 스크린 밖으로 조용히 사라지는 그녀의 퇴장은 긴 여운을 남기는 연출이었다.

남산예술센터 ‘남산희곡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선돌극장에서 공연된 ‘지금도 가슴 설렌다’ 역시 연출의 묘미를 적절히 살린 경우다. ‘입체 낭독공연’이라는 콘셉트로 이루어진 이 공연은 특히 가수와의 ‘컬래버레이션’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장면이 바뀔 때면 중간 중간 독특한 구음으로 정서를 전달하며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특히 노환으로 소리도 잘못 듣고 발음도 안 좋아 소통이 불가한 할아버지의 언어를 해설자가 통역해주는 과정에서 낭독공연이기에 가능한 유머를 느낄 수도 있다. 이 작품은 삼대가 함께 살고 있는 서민 집안의 녹록지 않은 가족사를 손녀의 덤덤하고 관조적인 시선으로 담고 있는 만큼 절제된 말투로 낭독된다.

‘남산희곡페스티벌’의 일환으로 공연된 ‘지금도 가슴 설렌다’는 ‘입체 낭독공연’이라는 콘셉트로 공연되며 가수와의 컬래버레이션을 강조했다.
뮤지컬에서도 개발 중인 텍스트와 음악을 선보일 때 낭독 공연 형식을 취하곤 한다. 지난해에 서울뮤지컬페스티벌의 일환으로 개최된 ‘예그린 프린지’도 낭독 공연 형식을 기본으로 하되, 참가 팀에 따라서 무대장치와 라이브 연주 등에 자율성을 열어 주었다. ‘깨지마라 안티고네’는 동선은 최소화하되 라이브 밴드의 연주를 통해 음악의 의도를 섬세히 전달했고, ‘좋은 개를 고르는 방법’은 진솔한 정서가 중요한 공연인 만큼 ‘빨래’와 ‘식구를 찾아서’에서 할머니 역할로 관객을 울고 웃겼던 배우 김현정이 출연하여 대사의 맛을 살렸다.

그런가 하면 대표적인 뮤지컬 작품 개발 프로그램 중 하나인 CJ문화재단의 ‘크리에이티브 마인즈’에서는 지난해 겨울 ‘빨래’의 창작진인 추민주 작가 겸 연출가·민찬홍 작곡가의 신작인 ‘어차피 혼자’가 낭독 형식으로 공연되었다. 이때 뮤지컬 관계자들이 모두 모여 ‘제2의 빨래’를 기다리는 응원의 마음으로 관람 후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공연이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창작진이 ‘무엇’을 이야기하는가가 잘 드러나야 한다는 점에서, 낭독 공연은 기교에 앞서 필요한 공연예술의 깊이와 주제의식에 대해 일깨워주는 자리이기도 하다. 나아가 두산문지 낭독극장처럼 시나 소설 등의 문학 장르를 무대 위에 올려놓는 작업은 소통과 교감을 강화시킬 수 있는 무대의 아날로그적인 특성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현수정 공연평론가·중앙대 연극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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