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 '남산 도큐멘타:연극의 연습-극장편'

양홍주기자 2014. 3. 17.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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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실제이고, 무엇이 연극인지..관객도 세트도 아닌 드라마센터라는 공간이 주인공으로역사성·허구성 충돌 경계 무너진 듯 혼돈

막이 오르면 관객은 안도하기 마련이다. 편안히 좌석에 등을 기대고 '무대에 집중해야겠군. 휴대폰 전원을 껐으니, 공연시간 동안 현실 세계와 연결되는 불상사는 없겠지'라며 마음을 놓는다. 맙소사, 그런데 막이 오르기가 무섭게 무대 안쪽 비상구가 열리며 현실의 빛이 스며드는가 싶더니 일군의 사람들이 우르르 무대로 오른다. 배우인가 싶어 들여다보니 영락없는 일반인이다. 이들은 극장 안내직원으로 분한 배우가 이끄는 대로 무대를 오가며 '남산예술센터' 내부를 구경한다. 무대를 가로지르는 관객들(무대에 올랐다는 점에서 배우이기도 하다)은 객석에 앉은 또 다른 관객들이 지켜보던 연극 '햄릿'과 뒤섞인 후 객석으로 자리를 옮긴다. 연극 속에 연극이 담겨 있고, 이 두 연극을 지켜보는 관객 또한 다시 관객과 무대 위 '배우들'로 나뉜다. 연극과 현실세계의 경계가 무너지는 혼돈. 무대로 몰입해버리곤 했던 관객의 관성은 순간 소멸한다. 브레히트가 말했던 '소격화'가 일어난다.

연극 '남산 도큐멘타 : 연극의 연습-극장편'(15~30일 서울 남산예술센터ㆍ연출 이경성)은 관객이 앉아서 연극을 보는 실제 드라마센터(현 남산예술센터)를 주인공으로 하기 때문에 극장이 지닌 역사성과 무대가 지니는 허구성이 끊임없이 충돌한다. 제목부터 '실제'를 상징하는 '도큐멘타'를 품고 있어서 이 연극을 지켜보는 관객은 무엇이 실제이고 무엇이 연극인지, 무대 비상구가 열리고 또 다른 관객(사실은 '유령산책'이라 명명한 공연 전 남산투어 행사 참여자들이다)들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혼란스러워진다. 관객은 계속해서 무대로 들어오는 현실세계의 시그널을 마주하며 연극을 관람하게 된다.

배우들은 방송 뉴스낭독, 혹은 신문읽기 등과 같은 방식으로 1962년 극작가 유치진에 의해 생을 시작한 드라마센터의 역사를 짚어나간다. 더불어 한국전쟁 후 중앙정보부를 비롯한 각종 권력기관이 몰려든 남산 자락에 세워진 드라마센터가 의도하지 않게 한국현대사의 주요 장면들을 목격하고 증언(극장으로서)했음을 이중무대(스크린과 실제무대) 위에서 연기로 보여준다. 김종필 초대 중앙정보부장과 유치진의 대화, 예식장이나 미8군 공연장으로 쓰였던 드라마센터의 1970년대 장면들은 '연극'을 통해 '실제'를 복수하려 했던 연극 '햄릿'의 연습 장면과 뒤엉켜 흐른다.

극의 중심 메시지는 고문과 폭력을 자행했던 드라마센터 외부(권력기관)의 실제가 드라마센터 내부에서 공연된 연극보다 연극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극의 주제는 '남산 오디션'이란 제목의 장에서 빛을 발한다. 가슴에 번호를 붙여 이름을 잃은 배우들이 공포 분위기만으로 한 시민을 고문하는 장면은 권위주의라는 허울만으로 세상을 조롱했던 군사정권을 비웃는다. 극의 결말은 드라마센터의 배우들이 햄릿의 최후를 담은 연극 '햄릿' 5막2장을 연습하는 장면이다. 연극을 통해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햄릿처럼 연극을 앞세워 극장 밖의 역사가 빚은 참변들에 맞서라는, 극장의 목소리가 또렷하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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