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에 난 작은 혹 의사가 자꾸 수술하라네요"
작은 갑상선암(5㎜ 미만)을 두고 의사들 사이에 수술해야 한다는 쪽과 당장 수술할 필요 없다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애꿎은 환자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수술할지 말지를 환자가 선택하라는 웃지 못할 촌극이 이 시각 병원에서 벌어지고 있다.
주부 김상미씨(51)는 지난 1월 초 서울의 한 병원에서 유방암 검사를 받으면서 무료로 검사해주겠다는 말에 갑상선암 검사도 '서비스'로 받았다. 초음파검사에서 2㎜짜리 혹이 발견됐고, 의사에게서 조직검사를 한 후 암으로 판정되면 수술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김씨는 "대학병원에서 다시 진단을 받았는데 크기가 너무 작으니 나중에 커지면 그때 암인지 아닌지 확인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며 수술을 일단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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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립병원의 수술실. 사진은 특정 기사 내용과 무관함. ⓒ 시사저널 최준필 |
갑상선암은 '거북이 암'이라고 불릴 정도로 진행이 더딘 데다 증상이 나타난 후에 수술해도 생명에 큰 지장이 없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980년대에 갑상선에 1cm 이하의 혹이 있더라도 암인지 검사할 필요조차 없다고 했을 정도다.
1999~2011년 국내 갑상선암은 연평균 23.7% 증가했다. 이는 전체 암 연평균 증가율 3.6%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현재 국내 암 환자 10명 중 2명은 갑상선암 환자다. 여성에게 생기는 모든 암 가운데 갑상선암이 30%나 차지한다. 세계 최고 기록이다. WHO에 따르면 10만명당 갑상선암 환자는 일본 3명, 중국 1명, 북한 2.6명인 데 반해 한국은 35.4명이다. 방사능에 노출되면 갑상선암이 증가하는데, 체르노빌 원전 사고 지역에서 발생한 수(12명)보다도 3배가량 많은 수치다. 암은 연간 1~2%만 증가해도 심각하게 보는데, 매년 20% 이상씩 10년 동안 증가한 것은 세계 의학계의 미스터리다.
10여 년 전만 해도 드물었던 갑상선암이 급증한 배경은 초음파 진단기가 2000년대 들어 급속도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조기에 암을 발견하게 된 것까지는 바람직하지만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나타났다. 증상이 없는 암을 굳이 찾아내고 수술을 권하다 보니 환자의 삶이 예전만 못하게 돼버린 것이다. 한 환자는 시사저널에 제보 편지를 보내왔다.
수술 환자 7% 부작용 시달려
주부 강 아무개씨(54)는 2010년 12월 경기도 성남에 있는 한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다가 갑상선에 생긴 혹을 발견했다. 2011년 1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조직검사를 받았는데 6㎜짜리 암으로 확인됐다. 강씨는 수술을 권유받았고 그해 7월 갑상선을 통째로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수술 후 그는 불면증, 부정맥, 두통, 가슴 답답함, 피로감, 의욕 상실 등 부작용으로 일상생활이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갑상선은 신진대사, 체온 조절 등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적절하게 호르몬을 분비해야 하는데 갑상선이 없으니 평생 호르몬제를 먹어야 하는 고통도 생겼다. 강씨는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 8명도 작은 암인데 수술을 권유받았고 모두 수술 후 삶의 질이 떨어졌다"며 "돈을 벌기 위해 의사가 의학적 지식이 없는 환자한테 수술을 강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보건연구원에 따르면 갑상선암 환자 10명 중 9명은 수술을 받는다. 이 가운데 7.3%는 부갑상선기능저하증이나 성대 마비 등 수술로 인한 부작용에 시달린다. 호르몬제 부작용은 6%다. 1년에 4만명이 수술받고 약을 먹는다면 그 가운데 2400명은 부작용으로 고통받는 셈이다.
환자들의 말대로 수술이 늘어난 배경에는 일부 의사의 수익 챙기기도 숨어 있다. 수술비·입원비·검사비 등 각종 진료비는 병원의 짭짤한 수입이다. 한 대학병원 전문의는 "병원은 의사에게 수술을 많이 하라고 부추기고, 의사도 자신의 명예와 평판을 위해 수술을 많이 한다"며 "환자의 삶은 안중에도 없는 이런 행태는 결국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부담이 된다"고 밝혔다.
갑상선학회는 2010년 5㎜ 미만의 혹은 암인지 아닌지 진단하지 말자는 대안을 내놓았다. 물론 암 가족력이 있거나 과거 방사선 치료를 받았거나 전이가 있는 환자는 예외다. 김태용 서울아산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5㎜ 이상은 재발 우려가 커지므로 5㎜ 미만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라며 "5mm 미만이라도 전부 안전하다는 게 아니라 일정 기간을 두고 지켜본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 대안은 강제성이 없는 권고일 뿐이다. 일부 의사는 작은 암이라도 수술을 강행한다. 그 배경에는 책임 문제가 있다. 작은 암이라도 10%가량은 예상과 달리 빠르게 진행해서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일부 의사가 수술 여부를 환자가 결정하도록 미루는 이유다. 그렇지만 의학 지식이 없는 환자로서는 암이라는 말에 수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용식 건국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환자에게 수술을 강요하는 의사들에게 1cm 이하의 갑상선암으로 사망한 환자가 얼마나 있는지 묻고 싶다"며 "갑상선암으로 0.5%가량이 사망하는데, 그것도 암이 크거나 위험한 경우에 해당한다. 암 크기가 1cm 이상이라도 지켜보다가 급할 때 수술해도 늦지 않다. 암 크기가 커지지 않아 평생 문제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밝혔다.
신상원 고대안암병원 종양내과 교수도 "이대로 모든 사람이 갑상선 검사를 받으면 한국은 인구의 절반이 갑상선이 없는 기이한 나라가 될 것"이라며 "매년 2만명 이상의 새로운 갑상선암 환자를 양산하는 현재 상황은 황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의 일생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남용되는 갑상선암 검사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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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진단·치료 즉각 중단해야"
일부 의사는 작은 암이라도 45세 이상은 위험하기 때문에 수술로 갑상선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올해 초 일본 구마모토 대학병원에서 정반대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1993~2011년에 1cm 이하의 갑상선암 환자 1235명을 수술하지 않고 관찰했다. 나이별로 암 진행 정도를 지켜본 결과 나이가 많을수록 암 진행이 더딘 것으로 나타났고, 암이 전신으로 퍼지거나 사망한 환자는 한 명도 없었다. 연구팀은 "나이가 든 사람이 오히려 작은 암을 수술하지 않고 지켜보기에 적합하다. 암 진행이 빠른 편인 젊은 사람도 지켜보다가 필요할 때 수술해도 아무런 위험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쯤 되자 의사들 사이에서도 무의미한 진료를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안형식 고대안암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천천히 진행하는 갑상선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 증상 없는 사람을 초음파로 진단하는 것은 정상적인 의료 행위로 볼 수 없다"며 "어떤 의학 교과서에도 갑상선암의 조기 진단은 쓰여 있지 않다. 의학적으로 갑상선암 조기 검진은 허구이며, 과잉 진단과 치료가 불필요하게 많은 갑상선암 환자를 만들어내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요즘은 갑상선의 일부만 떼어내는 수술을 제안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김태용 교수는 "갑상선 일부만 제거하면 환자는 갑상선 전체를 떼어냈을 때보다 훨씬 좋은 건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며 "일부 환자(10명 중 7명)는 호르몬제를 먹지 않고도 정상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전립선암 수술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수술이 애매한 암에 대한 국가 진료 지침이 필요하고, 환자에게는 나중에 수술해도 늦지 않다는 계몽을 해야 한다"며 "최근 서양에서는 전립선암 수술도 똑같은 이유로 논란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노진섭 기자 / no@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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