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월세 소득공제 '고시원의 비애'

2014. 3. 12.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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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준주택 주거시설은 적용에서 제외… 가장 영세한 주거환경 거주자엔 불공평

"좁아터지고 열악한 방에서 지내는데도 고시원 사는 사람만 공제를 못 받고 있으니 정책이 거꾸로 된 게 아닌가 싶어요."(직장인 김민형씨)

"월세 세액공제 해준다고 시끄러워도 '공제받을 돈도 못벌면 우리한텐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지." (70대 다가구주택 세입자 조모씨)

지난 2월 말 김민형씨(32)는 2013년 1년치의 연말정산 환급액이 계좌로 들어온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연간 600만원에 이르는 고시원 월세액은 소득공제를 받지 못했다. 일반 주택에 세들어 사는 세입자는 납부한 월세 금액을 연말정산 때 공제받을 수 있지만, 고시원은 '준주택'으로 분류돼 이러한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공제 뿐 아니라 임대차 보호도 못 받아

김씨의 직장은 서울 강남구에 있는 작은 디자인업체다. 업무 특성상 예정에 없는 야근이 수시로 있기 때문에 대중교통 막차 시간을 지나 퇴근하면 한 달 택시비만 해도 수십만원에 이른다. 김씨가 그저 '잠만 자는 방'으로 회사에서 가까운 고시원에 입주한 것은 그 때문이다.

서울 신촌에 있는 한 고시원의 복도 양편으로 방들이 늘어서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 달에 50만원씩 나가는 방이지만 평수로 따지면 2평(약 6.6㎡)이 채 될까말까다. 평당 월 임대료가 25만원인 셈으로, 대표적인 고급 아파트인 타워팰리스의 경우 평당 월 임대료가 약 12만원이다.

"강남의 고시원 입주자들은 대부분 직장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비싼 월세 내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봐도 돈이 많아서 고시원에 사는 게 아닌데 세금 공제도 못받는 건 불공평하다." 김씨는 전국 최고 수준 주택보다 두 배 이상 비싼 곳에 살면서도 흔히들 받는 소득공제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셈이다. 정부가 발표한 월세 세액공제 대상에서도 제외되는 것은 물론이다.

정부가 지난 2월 26일 발표한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은 영세한 월세 소득자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물린다는 이유로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하지만 10일 만에 정부가 내놓은 '보완조치'에서도 세입자들, 특히 가장 영세한 주거환경에 놓여 있는 '준주택' 주거시설 거주·세입자를 위한 조치는 원안 그대로 빠진 채 발표됐다.

게다가 월세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의 결과로 임대료 상승이 예상되지만 이에 대한 뚜렷한 대책도 마련하지 못했다.

고시원이나 여관, 오피스텔 등 준주택 주거시설에 거주하는 세입자들도 월세 납부액에 대한 소득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이전부터 제기돼 왔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정부가 내놓은 전·월세 대책에서는 주거용 오피스텔에 대한 월세 소득공제는 가능하게 한 데 비해, 고시원 등 기타 주거시설에 대한 소득공제는 제외된 채 유지됐다.

특히 서울지역의 비주택 거주인구 중 90% 이상을 차지하는 고시원 거주자들은 소득공제 외에도 임대차보호법상의 보호도 제대로 받기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한 개선방안 역시 이번 정부 대책에서는 빠져 있다.

고시원의 경우 건축법상 주택이 아닌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된 건물에 들어서 있기 때문에 주택에 적용되는 임대차보호법을 동일하게 적용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일반주택과 달리 세입자가 임대주와 임대차 계약을 맺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유사시 임대보증금을 보호받지 못할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게다가 2년간 최초 계약한 월세 임대료 수준을 보장받고 임대료 인상이 제한되는 일반주택과는 달리, 고시원에서는 임대주가 계약기간과 임대료 조정을 요구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이에 대항할 방법이 전무할 정도로 세입자가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

형평성 부족한 반쪽짜리 대책

한편 소득이 없거나 미미한 영세 세입자들 역시 현실적으로 이번 정부 대책의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애초에 세금을 납부할 만큼의 소득이 없기 때문에 소득공제를 받는 세입자에 비해 돌아올 이득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영세 세입자들은 단순히 공제혜택을 보지 못하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세금을 납부하게 된 임대주들이 오른 세금만큼을 향후 월세 임대료에 반영할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월세가 오르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다가구주택에 세들어 살고 있는 조모씨(77)는 당장은 아니지만 월세가 오를 수 있다는 사실에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이 동네에 20년 넘게 살았어. 안 그래도 재개발을 하니 마니 하는 얘기 때문에 여기서 나가면 어디로 옮겨야 하나 고민인데, 집 옮길 때 월세까지 오르면 어떡하란 말인지…."

조씨가 살고 있는 만리재 일대는 몇년 전부터 재개발 소식이 잇따라 들려오고 있어 집주인들이 월세를 거의 올리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집주인들은 세입자들의 집 수리·보수 요구에도 꿈쩍하지 않는 상황이다.

"보면 알겠지만 이 동네가 길도 험하고 집도 낡았지. 그래도 그만큼 방값이 싸서 여기서 버틸 수 있었는데 월세 올려버리면 (쫓겨나는 건) 온통 갈 데 없는 영감, 할머니들일 거야."

역시 재개발계획 때문에 낙후한 주택들을 보수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용산구 보광동 일대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 동네의 부동산 중개업자 한재업씨(62)는 "요즘 보면 다른 동네는 집값이 싸면 중국인들이 많이 세들어 살러 온다는데, 이 일대는 근처에서 노인들이 집을 옮겨오는 경우가 비교적 많다"면서 "사실 이런 동네에선 집주인들이야 세금 몇 푼 더 내도 별 지장 없지만 세입자들은 그 몇만원 때문에 동네를 떠나야 하는 일이 생긴다"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보완조치까지 나온 정부의 주택임대차 방안이 형평성 문제라는 걸림돌을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고 입을 모았다.

세액공제를 신청할 수 있는 기준이 7000만원 이하인데, 이 기준이 세대주 개인의 소득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가구 전체 소득이 억대 이상이더라도 공제혜택을 동일하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즉 세대주의 소득이 연간 7000만원 이하이기만 하면 배우자나 자녀 등 세대원의 소득과 관계없이 월세 임대료를 낸 데 대한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원칙적으로는 임대수입에 대해서도 과세해야 하지만 미봉책 수준의 보완방안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정부가 임대차시장에 직접 개입해 임대소득자를 임대사업자로 등록하게 하는 것이 원칙적으로도 맞고 향후 다시 요동칠 여지가 있는 전셋값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임대인·임차인 모두의 소득수준에 맞게 형평성 있는 정책이 되기 위해선 전·월세 상한제와 같은 추가적인 대책이 함께 도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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