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선술집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2014. 3. 6.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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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허름하고 소박한 술집을 좋아한다. 옆 탁자 손님과 등을 맞대는 것도 흥겹다. 술에 취한 일행 때문에 싸움이 붙기도 하지만, 서로 유쾌해져서 안주 접시가 넘어오는 그런 집 말이다. 그런 집들을 흔히 목로주점이나 선술집이라고 부른다. 고단한 일상을 한 잔 술로 위로하는 민중의 술집이다. 이젠 목로의 분위기 자체를 일종의 '설정'으로 만들어 흉내만 내는 집들도 청담동과 한남동 같은 곳에 있다. 대리주차요원은 물론이고 샴페인과 '사케'를 '오뎅'에 얹어 파는 희한한 영업을 한다. 장사가 꽤 잘된다. 부자들도 이런 집들의 소박함을 즐기고 싶은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한때 피맛골 언저리에 딱 좋은 목로주점들이 많았다. 알려진 대로 그 동네는 어이없는 재개발로 무너졌다. 이제는 그 위쪽도 거대한 개발의 불도저가 밀어닥칠 기세다. 벌써 종로구청에서 공평동 가는 길은 상가가 빠져나가 을씨년스럽다. '철거'라는 글자가 붉은 페인트로 휘갈겨져 있다. 서울을 살아냈던 우리 추억도 함께 철거되고 있다. 맛있는 대폿집도 모두 짐을 싸고 있으니, 이제 우리는 어디 가서 술을 마실까.

허름하고 소박한 술집을 흔히 선술집이라고 한다.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에 걸쳐 번성했다. 동전을 내고 딱 한두 잔 마시고 갈 수 있는 집이다. 글자 그대로 서서 마시는 술집이다. 김치 짠지를 기본으로 내고, 몇 가지 어포 같은 마른안주, 너비아니와 부침개 같은 '진 안주'도 있었다고 한다. 이경재 선생의 < 서울정도육백년 > 이라는 책에는 이런 집 말고도 '내외술집'이라는 간이주점도 소개하고 있어 흥미롭다. 아녀자가 술은 팔되, '내외'하느라 발 뒤에서 손목만 내밀어 안주와 술을 건넸다는 전설의 업종(業種)이다.

일본은 지금도 '다치노미야(立飮屋)'라고 하는 선술집이 곳곳에 있다. 여전히 에도시대의 유행을 흉내내어 선 채로 초밥을 먹는 일본인들답다. 다치노미야는 우리 식의 제법 묵직한 안주는 거의 팔지 않는다. 일종의 술 간이판매장 같은 분위기다. 물론 지방도시에는 운치가 있어서 나 같은 외국 나그네에게 술을 권하기도 했다.

안주와 술을 놓은 목로가 있다고 해서 목로주점이라고 불리는 집들이 지난 세대에는 참 많았다. 술청도 목로와 비슷한 말이다. 널빤지로 만든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서 허름한 안주에 술을 마셨다. 이런 집들은 1960, 1970년대의 개발시대에는 포장마차로 바뀌었다. 민중의 기억에 각인되어 있는 목로주점의 정서는 포장마차로 이어졌다. 단속이 심해져서 실내 포장마차라는 희한한 이름의 가게도 생겨났다(요즘 유행하는 아웃도어식당과 비슷한 셈이다. 가게 안에 텐트 치고 고기를 구워 먹으니). 요즘은 '실내포차'라고 줄여 부르면서 여전히 성행한다. 비록 실내에서 술을 마시지만, 언제든 단속반이 들이닥쳐 트럭에 리어카를 실어버리던 포장마차의 아찔한 추억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코스프레'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에밀 졸라가 소설 < 목로주점 > 을 썼을 때, 희망 없는 노동계급의 파멸을 너무도 적나라한 언어로 묘사했다고 하여 큰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그 소설을 다시 읽노라니, 마음이 무너진다. 주인공 세탁부 제르베즈가 불쌍해서, 그리고 찾아갈 목로도 없어지는 내가 불쌍해서.

<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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