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렴 100일째 냉동고 모셔진 아버지보다 추울까요?"

2014. 3. 6.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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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송전탑 반대' 사망 유한숙씨 아들

매운 꽃샘추위속 서울서 1인 시위

한전·경찰이 '거리의 상주'로 내몰아

"경찰 왜곡된 수사발표는 인권유린

어떤 국책사업도 강압적이면 안돼"

매서운 꽃샘추위에 유동환(45)씨의 코 끝이 금세 빨개졌다. 서울의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6일 아침, 유씨는 강남구 한국전력공사 앞에서 출근 시간에 맞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자 유씨는 석달 전 숨진 아버지 유한숙(당시 71살)씨를 떠올렸다. "아무렴 아버지보다 추울까요."

아버지의 주검은 아직 경남 밀양병원 장례식장 냉동고에 모셔져 있다. 지난해 12월2일 아버지는 목숨을 끊으려 했고 나흘 뒤 숨졌다. 집안의 돼지농장 근처에 765㎸ 초고압 송전탑이 들어서는데도 보상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에 마음앓이가 심했다.

가족들은 아버지의 죽음 앞에 넋놓을 여유도 없었다. 경찰은 사망 원인을 음주·가정불화·빚 등으로 발표했다. 경찰은 사건 당일 저녁 병원에서 아버지에게 "송전탑 때문에 살기 싫었다"는 말을 듣고도, '송전탑'이란 단어는 전혀 입에 올리지 않았다. "아버지뿐 아니라 농촌 어르신들 대부분 고된 농사일 시름을 잊고자 약주를 하시죠. 사건 한달 전엔 제가 비용을 대고 여동생 가족이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다녀올 만큼 화목하기도 했고요. 경찰의 왜곡된 수사결과 발표는 가족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였습니다."

아버지의 극단적 선택은 여전히 원망스럽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는 아버지의 책임감 강한 성품에 비춰 이해해보려 노력했지만 소용없다. 대신 아버지의 죽음 이후 정부·밀양시·한전·경찰이 보여준 모습은 그를 '거리의 상주'로 만들었다.

송전탑 공사는 멈춰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죽음은 2012년 목숨을 끊은 이치우(당시 74살)씨에 이어 송전탑이 앗아간 2번째 목숨이었지만 공사는 계속됐다. 환경영향평가법 위반 등 공사의 불법성도 드러났지만 한국전력공사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시청 앞 분향소 설치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여겨온 공권력은 영정을 부수고 빼앗아갔다. "앞으로는 송전탑 공사를 포함해 어떤 국책사업이든 이렇게 강압적이고 반인권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런 기대를 갖고 버팁니다."

돼지 이야기가 나오자, 유씨의 얼굴이 처음으로 환해졌다. "돼지들이 얼마나 귀여운 줄 모르시죠?" 유씨는 아버지와 함께 10여년간 돼지들을 돌봐왔다. 맏아들이 상주로 거리에 나서면서 막내동생(39)에게 농장을 부탁했다. 간간히 가서 직접 주사도 놓고 농장을 살핀다. 농장에는 아버지의 흔적이 빼곡하다. '평생을 바친 농장에 피해가 가면 어쩌나' 염려했을 아버지 심정도 떠올릴 수 있다. "돼지들이 엄청 예민해요. 예전에 농장 앞에 가스관 묻는 공사를 할 때도 줄줄이 유산했었고요. 주인도 기척 없이 들어갔다 한 마리라도 놀래키면 모두 영향을 받거든요."

15일이면 유한숙씨가 숨을 거둔 지 100일째다. 유동환씨는 14일까지 한전·청와대·경찰청 등을 돌며 1인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송전탑 공사를 막느라 바쁜 밀양 주민들은 유씨를 멀리서 응원할 수밖에 없다. 단장면 동화동 마을 주민 손진학(40)씨가 5일 밀양에서 올라와 유씨 곁을 지켰다. "유족 혼자 보내기가 미안해서…. 마음은 다들 올라오고 싶은데 엊그제도 121번 공사현장에서는 주민들이 공사 막다가 다치고 몇몇은 끌려가 구속영장 청구되고 그러니까, 힘들지."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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