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아무것도 아무것도.. 나에겐 의미가 없어
#98 Elliott Smith 'Everything Means Nothing to Me' (2000년)
[동아일보]
아무리 이상한 노래라도 장점을 알아주는 이들이 있건만, 꽤 오래 방영 중인 이동통신 서비스 광고에서 지드래곤이 외치는 '8!'을 곱게 보는 시청자들을,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찾기 어렵다. 이렇다 할 스토리도 없이 게임 캐릭터 같은 지드래곤이 "팔로 팔로 미" "8!"을 몇 번 외치면 끝나는 광고에 대한 일반적 반응은 "뭐∼야"다.
뭘 모르고 하는 소리. 포인트는 '8!', 아니 '파rl!'에 있다. 88년 8월 18일생인 지드래곤은 스스로 행운의 숫자 8에 집착해 8월 8일이나 8시 8분에 앨범이나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는 걸 즐긴다. 지드래곤이 외치는 "파rl!", 나도 따라할 수 있다. 속 깊이 끌어올린 공기를 입술 사이로 일순 터뜨려 파열음 'ㅍ'을 낸 뒤 주저 없이 '진주(pearl)'를 머금은 듯 'r' 발음을 굴리고는 잽싸게 'ㄹ', 또는 'l' 받침으로 끝맺으면 된다.
지드래곤에겐 미안하지만 '8'이 내게 주는 음악적 인상은 요절한 미국 싱어송라이터 엘리엇 스미스(1969∼2003)의 마지막 정규 앨범 '피겨 에이트(Figure 8·사진)'에 먼저 연결된다. 비틀스 뺨치는 괴상하게 아름다운 화성 진행 위를 담쟁이처럼 아찔하게 타고 도는 신묘한 멜로디는 난파될 듯 여린 목소리를 만나 스미스의 음악을 완성한다. 스미스는 자기 집에서 칼로 자신의 가슴팍을 두 번이나 찔러 자살한 비극의 주인공이다.
요즘 '8!' 광고보다 여론이 안 좋은 뉴스가 미국 음악계에 있다. 마이크 도티라는 음악가가 스미스의 생전 미공개 육성에 전자음을 입혀 댄스음악을 만들어낸 것이다. '정말 엿 같다'는 반응이 많다. '엿처럼 차지다'는 뜻은 아닐 거다.
스미스는 왜 앨범 제목을 '8이란 숫자'로 지었을까.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종결점이 없으니 멈출 곳도, 도착할 곳도 없는 상태. 그런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움을 만들고 싶었다'는 생전 인터뷰는 꼭 유언장 같다. 그는 완벽한 신작을 기대하는 주변의 압박에 괴로워하다 칼로 '지금(now)'이라는 단어를 팔뚝에 새긴 뒤 피아노 앞에 앉아 피를 흘리며 '에브리싱 민스 나싱 투 미'를 지었다고 한다. 음악으로 모자라 삶 전체를 비극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던 걸까. 대답은 노래에 있을지도…. 나선계단처럼 상승을 반복하는 멜로디는 어떤 숫자를 닮았다.
'아무것도 내게 의미 없어, 아무것도….'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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