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운" 이 한마디면 백주대낮에 죽을 수도 있다

2014. 2. 2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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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박정연 기자]

베트남 정부가 주캄보디아 베트남 대사관 짠 완쭝 대변인을 통해, 최근 '민족감정으로 인해 베트남계 캄보디아 남성이 폭도들에 의해 살해당한 초유의 살인사건'과 관련하여 캄보디아 정부 측에 신속한 진상조사를 요구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를 비롯한 현지 주요언론들이 지난 18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사건이 발생한 시점은 지난 15일로 현지 영자신문 < 캄보디아 데일리 > 에 따르면, 수도 프놈펜 미엔체이 구(區), 짱앙레르 동(洞)에서 대낮에 일어났다. 베트남인으로 지목된 한 남성이 갑자기 몰려든 20여 명에 이르는 캄보디아인들로부터 10여 분 이상 집단구타를 당한 끝에 결국 살해당한 것이다.

담당구역 경찰과 현장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한 이 기사에 따르면 '웅우엔 야잉 응옥'이란 이름을 가진 28세의 이 베트남계 캄보디아 남성은 사망하기 바로 직전, 오토바이로 자동차 후미를 박는 사고를 일으킨 친구의 도움 요청을 받고, 현장으로 달려갔었다.

그러나 도착했을 당시 차량은 이미 떠난 후였고, 자신의 친구 역시 병원에 실려간 후였다. 그 틈을 타 잠시 차량이 많은 도로변에 세워둔 오토바이 때문에 길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된 어느 차량 운전사로부터 그가 항의를 받았다. 그는 이 문제로 차량 운전사 부자(父子)와 잠시 옥신각신 말다툼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 이 남성을 지목하며 베트남인을 비하는 표현인 '요운'이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캄보디아인들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집단 구타 끝에 이 남성은 숨졌다.

관할경찰서 후옷 완나 부서장은 현재 "요운(베트남인)이 캄보디아인과 싸운다"라고 큰소리를 질러 폭도들의 폭행을 자극하게 만든 '원 찬우타'라고 불리는 50세의 캄보디아 현지인 남성을 체포했으며, 곧 사법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나머지 현장에서 살인에 가담한 20여 명에 이르는 용의자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수사 진척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웃나라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민족감정

이웃나라인 베트남과 캄보디아 양국 국민들간 민족감정의 역사는 꽤 긴 편이다. 두 나라는 지난 수세기 동안 끊임없는 영토싸움을 벌이며, 분쟁과 갈등을 이어왔다. 캄보디아는 화려한 앙코르 문명을 꽃피우며, 가장 막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가장 큰 영토를 가졌던 12세기, 자야바르만 7세가 집권했던 전성기 때도 베트남과 영토전쟁을 벌였다. 지금도 앙코르유적에 있는 바이욘 사원에 가보면 베트남 남부에서 온 이슬람계 참족과 톤레삽 호수에서 전쟁을 벌이는 모습을 형상화한 부조벽화들을 볼 수 있을 정도다.

베트남 남부의 최대 도시 호치민시가 있는 메콩델타 유역도 캄보디아 영토였던 적이 있다. '캄푸치아 크롬'이라고 불리는 베트남 동남쪽에 위치한 지역 역시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에는 캄보디아인들이 살던 땅이었다. 지금도 수만여 명의 크메르인들이 캄보디아어와 문화를 지켜가며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 지역도 언젠가는 양국간 영토분쟁이 촉발될 가능성이 높다.

베트남인들이 캄보디아에 정착해 살기 시작한 것은 고대시대부터다. 하지만, 본격적인 반베트남 정서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1863년부터 시작된 프랑스 식민 시절부터로 보는 견해가 많다.

당시 프랑스 식민정부는 베트남 출신들을 캄보디아 공무원 등 관료로 채용, 캄보디아인들의 민족적 자긍심을 자극했다. 영국이 미얀마를 다스릴 당시 인도인들을 채용했던 것처럼 프랑스 역시 다분히 정치적인 계산하에 민족간의 갈등을 적절히 이용했다. 이것은 오랫동안 두 민족간 갈등의 촉매제 역할을 해왔다.

1970년대 크메르 루즈 정권시절 200만이 목숨을 잃던 당시에도 반민족적 감정 때문에 미처 도망가지 못한 수많은 베트남인들이 킬링필드의 또다른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80년대 초에는 공산 베트남을 탈출한 보트피플 중 일부가 메콩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와 캄보디아 역내로 들어와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 당시 들어온 베트남인 인구도 수만 명에 달한다. 지금도 톤레삽 호수가에서 살아가는 수상촌 인구 중 베트남계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실정이다.

야당과 훈센정부의 갈등... 그리고 베트남계 캄보디아인

▲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열린 대규모 야당의 시가행진 모습(2013.12.28)

통합야당측은 부인하지만, 그 동안 삼 랭시 통합야당 총재의 반베트남 정서를 드러낸 정치적 행보는 여러 차례 있었다. 그는 공석식상에서조차 요운이라는 베트남인을 비하하는 단어를 자주 사용해왔으며, 지난 2009년 10월 베트남사이의 국경표시석을 6개를 제거하고, 베트남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검찰로부터 구속영장이 발부된 적도 있었다.

ⓒ 박정연

현재 캄보디아에서 태어난 베트남계 대부분은 캄보디아 국적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현재 베트남의 '정권 하수인'이라고 야당으로부터 비난받고 있는 훈센 정부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기도 하다. 베트남계 유권자들은 순수 혈통의 캄보디아인들의 표를 갉아먹는 원흉으로 지목돼 왔다.

통합야당 측은 부인하지만, 그동안 삼 랭시 통합야당 대표가 반베트남 정서를 드러낸 행보는 여러 차례 있었다. 그는 지난 2009년 10월 베트남 사이의 국경 표시석을 6개를 제거하고, 베트남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검찰로부터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선거 유세장에서도 "만약 정권을 얻게 될 경우, 베트남인들을 모두 캄보디아땅에서 몰아내겠다"고 공언한 적도 있다(물론 이 내용 중 일부는 훈센 정부가 정략적인 목적으로 삼 랭시 야당 총재의 말을 왜곡한 부분도 있을 가능성이 높아, 확인검증이 필요하다).

야당이 특히 선거 때마다 반베트남 정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이유는 또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견해도 있다. 훈센 총리의 정치적 성장배경에 베트남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79년 폴 포트 정권이 붕괴될 당시 훈센 총리가 이끄는 군대가 베트남 군대의 예하부대로 들어온 적이 있다. 이후 곧바로 베트남 꼭두각시 정권이 들어서 1989년까지 약 10년 동안 베트남 치하에 종속되었던 치욕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야당은 여전히 베트남이 훈센 총리의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러한 야당의 선동에 의해 최근에는 베트남인들의 불법이민 때문에, 일자리를 잃어 버렸다고 생각하는 캄보디아인들의 불만도 차츰 높아가는 추세다.

▲ 폴폿 정권을 물리친 날을 기념하는 전승기념일 식장에 참석중인 훈센총리

1979년 1월 7일 킬링필드의 주역 폴폿정권을 물리친 전승기념일(VICTORY DAY)은 프놈펜을 수복했다는 의미에서는 훈센이 이끄는 인민당(CPP)측에서는 축하하고 기념해야 할 일이지만, 야당은 베트남이란 외세의 침략으로 이어진 치욕의 역사가 시작된 날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 박정연

그런 가운데 지난 18일 집권여당인 인민당(CPP) 파이 시판 대변인은 사건 당시 군중들이 베트남인들을 비하하는 '요운'이란 단어를 사용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번 사건은 삼 랭시 총재와 야당이 이런 용어를 사용해온 데서 직접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이며, 야당이 이 단어를 통해 인종청소를 선동하며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있다. 이 문제 때문에 수랴 수베디(Surya Subedi) 유엔 인권 캄보디아 당당 특별보고관 역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며 통합야당을 비판했다.

결국, 이번 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삼 랭시 총재가 이끄는 통합야당은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정 거리를 두고자 하는 모습이다. 통합야당 넴 파나릿 대변인은 이 사건은 "야당의 책임과 무관하며, 국민들이 법정 시스템에 대한 국민들의 확신이 부족해서 생긴 사건"이라는 입장을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다.

현재 캄보디아에는 약 5%가 넘는 베트남 사람들이 살고 있다. 실제로는 베트남인 부모를 갖고 있을 뿐 캄보디아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캄보디아 사회에서는 베트남인으로 취급받는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자신의 출신 성분을 속이고 살아가는 베트남계 주민들도 상당하다.

이번에 시내 한복판에서 목숨을 잃은 '웅우엔 야잉 응옥' 역시 부모의 핏줄만 베트남인일 뿐 캄보디아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그의 아내 역시 캄보디아인이다. 졸지에 남편을 잃게 된 그의 아내(26)는 현재 임신 8개월째다.

남편의 장례를 치르던 날 현지 영자신문 < 캄보디아 데일리 > 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백주) 대낮에서 이 한마디로 인해 내 남편이 목숨을 잃은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요. 내 남편은 캄보디아에서 태어났어요. 그는 캄보디아에서 평생을 살았어요. 곧 (남편은) 캄보디아 아기를 가질 예정이었어요. 그가 '베트남인'이라는 이유로 죽어야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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