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이론] 스쳐도 부상? 유리 몸 '다이슬러-하그리브스'

박찬동 2014. 2. 20.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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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부상으로 인해 자신의 축구재능을 꽃 피우지 못한 선수를 많이 봐왔다. 선천적으로 부상을 달고 산 선수들도 있으며 뜻하지 않은 부상 이후 재활에 실패하거나 후유증으로 인해 고생하는 선수들도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이른 나이에 은퇴까지 가게 된다. 독일이 배출한 천재 미드필더 제바스티안 다이슬러(34)가 이런 경우다. 심각한 무릎 부상을 가지고 있던 다이슬러는 27세라는 이른 나이에 그라운드를 떠났다.

은퇴는 아니지만 선수생활 내내 고생하는 경우도 많다. 잉글랜드의 오언 하그리브스(34)는 뜻하지 않은 무릎 부상을 당한 이후 경기를 뛴 시간보다 재활을 하는 시간이 많았을 정도로 고생을 겪었다.

▲ '독일의 축구 천재' 제바스티안 다이슬러

6살 때 축구를 시작한 다이슬러는 어렸을 때부터 뛰어난 실력을 보이며 독일의 명문팀인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 유스팀으로 스카우트됐다. 15살부터 18살까지 묀헨글라드바흐 유스팀에서 활약한 다이슬러는 당시 독일축구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의 선수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18살의 어린 나이에 분데스리가에 데뷔한 다이슬러는 1998-99시즌 17경기에 출전해 1골을 넣으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1998-99시즌 팀이 2부 리그로 강등되자 다이슬러는 헤르타 베를린으로의 이적을 선택했다. 이때부터 다이슬러는 부상의 악령에 시달렸다. 크고 작은 무릎 부상을 가지고 있었던 다이슬러는 2001년 오른쪽 다리의 활액막이 파열되는 부상으로 시즌을 접어야 했다. 다이슬러의 재능을 알아본 바이에른 뮌헨은1999-2000시즌부터 2001-02시즌까지 세 시즌동안 58경기 출전에 그친 다이슬러를 950만유로(약 100억)라는 거액의 이적료를 주고 영입했다.

뮌헨의 큰 기대를 받았던 다이슬러였지만 부상이 문제였다. 2002년 뮌헨에 입단 다이슬러는 그해 5월 오른쪽 무릎수술을 받으면서 출장 기회를 잡지 못했다.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을 괴롭힌 부상과 주변의 큰 기대에 부담감을 가진 다이슬러는 우을증까지 찾아오면서 선수생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2004-05시즌에 다시 팀에 합류한 다이슬러는 이 시즌에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며 기대를 모았지만 2006년 3월, 오른쪽 다리의 활액막이 파열되면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큰 실망감을 느낀 다이슬러는 2007년 1월 16일, 27세의 어린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

▲'오른발의 달인에서 부상의 달인으로' 오언 하그리브스

캐나다 태생의 잉글랜드인 하그리브스는 캐나다의 캘거리 풋힐스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세계최고의 리그인 프리미어리그를 제쳐두고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의 유스팀에 입단한 하그리브스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갖춰야 할 조건을 두루 갖추며 팀의 미래로 평가받았다. 뮌헨의 유스팀에서 한 시즌을 거친 2000-01시즌 분데스리가에 데뷔해 2007년까지 145경기 출장 5골을 넣으며 활약했다.

잉글랜드 대표팀 소속으로 나선 2006 독일월드컵에서 맹활약한 하그리브스는 2007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며 프리미어리그로 진출했다. 2007-08시즌 하그리브스는 무릎부상 탓에 많은 경기를 소화하진 못했지만 풀럼 전에서 오른발 프리킥으로 프리미어리그 데뷔골과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첼시를 상대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주목받았다.

하그리브스도 부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008-09시즌을 앞두고 양쪽 무릎 수술로 인해 단 3경기만을 뛴 하그리브스는 2010-11시즌 11라운드 울버햄튼 전에서 복귀했지만 출전 5분 만에 부상으로 쓰러지며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하그리브스의 잦은 부상에 지친 맨유는 결국 2011년에 하그리브스를 방출했다. 방출당한 하그리브스는 맨유의 지역 라이벌팀인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했지만 2011-12시즌 단 한경기만을 뛰며 다시 방출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무릎부상, 뮌헨, 잘생긴 외모, 난세의 영웅

다이슬러와 하그리브스의 발목을 잡은 것은 무릎 부상 때문이다. 5차례나 무릎수술을 받은 다이슬러는 끝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많은 시간을 재활에 매진했지만 우울증까지 겹치면서 이른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 다이슬러를 끝까지 믿고 기다려줬던 뮌헨의 울리 회네스 전 단장은 다이슬러의 은퇴에 "우리는 다이슬러의 은퇴를 막기 위해 싸웠다. 그는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며 이것이 꿈이었으면 좋겠다"며 다이슬러의 은퇴를 안타까워했다.

하그리브스 역시 무릎이 선수 생활의 발목을 잡았다. 선천적으로 무릎이 안 좋았던 다이슬러와 달리 하그리브스는 부상으로 인해 무릎이 안 좋아진 경우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뮌헨에서 145경기를 소화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았던 하그리브스는 이후 당한 잔부상이 커지면서 무릎 부상에 시달렸다. 특히 맨유에서 고질적인 무릎부상을 겪었던 하그리브스는 "맨유 의료진의 잘못된 치료로 부상이 커졌다"며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두 선수 모두 뮌헨 소속으로 뛴 것도 공통점이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뮌헨에서 활약한 다이슬러는 많은 경기를 소화하진 못했지만 62경기에서 8골을 넣으며 활약했다. 하그리브스 역시 비슷한 시기인 2000년에 뮌헨 유스팀에 입단해 2007년까지 뮌헨 소속으로 145경기에 출전해 5골을 기록했다.

잘생긴 외모도 두 선수를 빛냈다. 다이슬러는 샤프한 외모와 함께 그라운드를 누비며 많은 독일 여성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독일 여성들의 구애애도 불구하고 다이슬러는 브라질의 모델출신 에우니시 두스 산투스 산타나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부상으로 많은 고생을 했던 다이슬러는 아내의 내조에 많은 힘을 얻은 것으로도 유명할 정도로 주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하그리브스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잉글랜드인 웨인 루니 같은 모습과는 다르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재밌는 파마머리를 한 하그리브스는 잉글랜드에서 잘생긴 외모로 인기가 많은 선수다. 그러나 하그리브스의 잘생긴 외모가 문제였다. 하그리브스는 부상으로 재활을 하던 당시 유흥에 빠지면서 재활을 게을리 했다. 많은 여성들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선수는 자국에서 난세의 영웅같은 존재였다. 다이슬러는 독일축구의 암흑기였던 1990년대 후반에 혜성같이 등장하며 많은 축구팬들의 기대를 받았다. 당시 독일은 피지컬과 힘을 위주로 한 축구로 퇴보하고 있었다. 중원에서 창의적인 선수가 없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다이슬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뛰어난 패싱능력과 번뜩이는 플레이가 돋보였던 다이슬러는 그 당시 독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선수였다.

하그리브스 역시 잉글랜드의 선굵은 축구를 보완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잉글랜드는 스티븐 제라드(33)와 프랭크 램파드(35)라는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시너지효과를 발휘하진 못했다. 두 선수의 스타일이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반면 하그리브스는 수비형 미드필더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개인기량과 세밀한 볼 컨트롤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잉글랜드 축구에 많은 옵션을 제공했다.

▲문성환 위원이 바라본 다이슬러와 하그리브스는?

전직 축구선수 출신이자 현재 K리그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문성환 위원은 예상과는 다르게 다이슬러에 대해 박한 평가를 내렸다. 문성환 위원은 "독일축구의 암흑기였던 90년대 후반 다이슬러는 개인기량이 뛰어난 테크니션이었다. 넓은 시야를 가진 다이슬러는 정확한 킥 능력으로 공격을 이끈 선수다"며 다이슬러를 평가했다.

이어 "독일 축구의 문제점은 상대의 프레싱을 뚫어줄 수 있는 선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이슬러는 개인기량으로 이러한 프레싱을 뚫고 나올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며 칭찬을 이어갔다. 그러나 문성환 위원은 "분명 다이슬러의 개인기량은 뛰어나다. 하지만 스페인 같은 나라에서 다이슬러같은 선수가 나왔다면 큰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며 다이슬러의 능력에 의문을 던졌다. 문성환 위원은 "다이슬러는 당시 중원에서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던 독일에서 뛰었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시대를 잘 타고났다"며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하그리브스에 대해 문성환 위원은 "수비형 미드필더라면 필히 갖춰야 할 많은 활동량을 가지고 있다. 플레이가 거친편이며 경기 리딩능력이 뛰어나다. 많은 수비형 미드필더들이 개인기량이 떨어지는데 반해 하그리브스는 뛰어난 개인기량과 킥 능력을 가졌다. 이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며 높은 평가를 내렸다. 문성환 위원은 하그리브스에 대해서도 "제라드와 램파드 조합은 한계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그리브스는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유독 미드필더들이 많은 부상을 당하는 이유에 대해 문성환 위원은 "아무래도 활동량이 많다보니 그런 것 같다. 공격수와 수비수는 몸싸움을 벌이는 상대가 한정적이다. 반면 미드필더는 모든 포지션의 선수들과 몸싸움을 펼쳐야 한다. 상대의 견제를 가장 많이 받는 동시에 많은 견제를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포지션에 비해 많은 부상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문성환 위원은 두 선수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 이유에 대해 문성환 위원은 "다이슬러의 은퇴는 이른 감이 없지 않다. 다이슬러는 뮌헨구단에서도 많은 시간을 주며 다이슬러의 복귀를 기다려줬다. 다이슬러의 가족 역시 많은 도움을 주며 재활을 도왔다. 본인의 의지만 있었으면 풀타임은 무리더라도 조커로서 역량을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하그리브스에 대해서도 "하그리브스는 재활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본인이 재활에 매진했다면 부상이 재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잘생긴 외모 탓에 유흥에 빠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며 안타까워했다.

한편 문성환 위원은 "2006년 뮌헨에서 팀 동료로 뛰던 당시 두 선수의 충돌로 인해 다이슬러의 부상이 하그리브스에게 전염된 것 같다는 속설도 나오고 있다"며 두 선수의 평가를 마쳤다.

[사진. 키커, 텔레프라프, 사커피스타 홈페이지 캡쳐]

박찬동 기자 / pcdboy86@onst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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