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내란음모사건, 인권은 안중에 없나

2014. 2. 1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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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아무도 그들의 목소리 듣지 않는 동안 수사과정서 법적절차와 기본권 무시당해

지난 1월 인권활동가 김희진씨는 '이석기 의원 통합진보당 내란음모사건'의 당사자들을 만났다. 국정원의 수사과정에서 이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있었는지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조사는 순조롭지 못했다. 미리 취지를 설명하고 조사에 동의를 받았음에도 조사 직전 당사자들은 마음을 바꿨다. 혹여나 자신의 말이 불이익으로 돌아올까봐 하는 두려움에서였다. 조사에 응해 만남이 성사되더라도 김씨에게 좀처럼 자신의 말을 털어놓지 않았다. 경계와 의심이 앞섰다.

김씨는 "한 사건 당사자를 인터뷰하러 갔는데 함께 간 남자 활동가가 양복을 입고 갔다. 그 활동가가 집안사정 때문에 회사일을 병행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사건 당사자 분은 계속 남자 활동가 눈치를 보면서 이야기를 못하더라. 인터뷰는 구체적인 이야기 없이 굉장히 피상적으로 흘렀다"고 말했다.

사건 당사자의 경계가 자신의 양복차림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챈 남자 활동가는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회사의 직함이 찍힌 명함을 건넸다. 그제야 그는 조금씩 마음을 열고 이들에게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김씨는 몇몇 사건 당사자와 가족들을 만나면서 이들 대부분이 심리적으로 상당히 위축되어 있는 상태임을 느꼈다.

지난해 8월28일 국정원 직원들이 이석기 의원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2013년 8월 28일, 내란음모사건은 국정원이 이석기 의원실을 기습적으로 압수수색하면서 시작됐다. 지난 반년 동안 사건의 한복판에 서 있던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 2월 12일 다산인권센터, 유엔인권정책센터,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 인권운동사랑방 등 5개 인권단체가 모여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인권침해 보고회'를 열었다. 보고회에서는 국정원이 내란음모사건을 수사하는 전 과정에서 사건 당사자와 가족에게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이루어졌다는 증언이 쏟아져나왔다.

인권침해는 압수수색부터 조사과정까지 전방위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이어졌다. 압수수색 과정에서는 헌법과 형사소송법 상 권리가 보장되지 않았고, 기본권에 대한 존중도 찾을 수 없었다. 당시 사건 당사자의 증언이다.

사건 당사자와 가족들 증언 쏟아져

"이석기 의원실에 있었을 때였어요. 국정원 수사관은 처음 봤는데, 이건 경찰과는 달랐어요. 인권수사는 상상도 못하겠더라고요. 오자마자 이건 범죄인이 아니라 적을 대하는 것처럼 욕도 나오고, 얘들은 뭔가 싶더라고요. 경찰에서는 아무리 다급해도, 제압을 하더라도 말을 그렇게 안 하거든요. …여긴 그게 아니더라고요. 눈으로 아린다고 해야 하나요.

말도 반말은 기본이고 어쨌든 우왕좌왕하고 여럿이 뭉쳐 있으니까, '이 새끼' 이러더라고요.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하는데 밑으로 발이 날아오고 아주 황당했죠.

일반 피의자가 아니라 무슨 간첩을 대하는 거 같은, 걔네들 입장에서는 간첩이 주적이잖아요. 거의 그런 걸 대하는 거 같은… 살기랄까, 사람 대하는 것 자체도 그렇더라고요. 반말은 기본이고 다른 고지도 없고, 변호사 없으면 당하겠더라고요."

조사과정에서도 인권침해는 마찬가지였다. 법적 절차는 지켜지지 않았고 국정원은 '아니면 말고' 식으로 수사를 진행했다.

국정원은 한 구속자의 컴퓨터 안에 사제폭탄 제조법이 있다며 폭발실험을 한 뒤 한 언론사에 실험 결과 사진을 제공해 위험성을 공개했다. 그러나 구속자의 컴퓨터를 분석한 전문가는 법정 증언에서 국정원이 구속자가 폭탄 제조법 텍스트 파일을 열람한 적이 있는지조차 확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건 당사자의 증언이다.

"저도 수술을 한 경험이 있고 남편도 건강이 안 좋아서 통째로 (건강도서) 다운을 받아놓은 것인데요. 카페에서 알집으로 된 것 다운받아 놓은 건데 그게 의학책으로 치면 200~300건 되는 자료로 요만큼쯤(책 반쪽 정도) 되는 거예요. '니트로글리세린에 대한 재료안내, 면봉으로 찍어서 쓰고' 이런 치료용으로 된 내용인 거예요.

폭발 위험에 대한 안내도 나와 있지만, 그건 건강용으로 면봉에 묻혀 쓰는 것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중략) 황당했던 건 그 후에 국회 정보위에서 남재준 국정원장이 와서 이걸 폭파실험했던 동영상을 보여줬대요. 자기들이 특수부대원 모아서 실험을 했는데요. 근데 언론에는 뭐라고 나왔냐 하면 '통합진보당 RO 폭파 동영상' 이렇게 나오잖아요."

수사과정에서 법적 절차와 기본권을 무시하고 허위수사를 진행하는 등 국정원의 노골적인 인권침해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인권활동가 박진씨는 이들이 사회로부터 격리됐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 정도의 인권침해는 사회와 완전히 격리된 사람들을 다룰 때 일어난다. 얼마 전 무죄로 드러난 남매간첩단 사건도 있지 않은가. 국정원이 수사과정에서 이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허위자백을 강요해 문제가 됐었는데 그게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한국 사회와 격리된 탈북자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형선고 받을 수도" 두려움에 떨어

통합진보당 측이 사회적으로 격리된 배경에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혐오가 있다. 혐오는 넓고 깊었다. 보수뿐만이 아니라 진보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보고회에서 조사를 한 한 활동가는 이 보고회가 진보운동 내에서 별다른 호응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밀양 주민이나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인권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인 활동가들이나 단체도 내란음모사건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인색한 태도를 보였다. 이 활동가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임에도 기본적 가치에 대해 동일한 잣대가 작동하지 않았던 셈"이라고 말했다.

정치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삶에서도 이들은 배척됐다.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된 당사자 중 한 명은 이 일을 겪고 정신적인 충격과 우울증으로 정신과를 찾았다. 그러나 담당 의사가 당신 같은 사람과 얽히기 싫다며 진료를 거부했다. 공포스러운 고립감이었다.

'아무도 우리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는 이번 보고회의 제목이다. 아무도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동안 국정원의 인권침해적 수사는 이어졌고, 허점 많은 수사 결과는 합리적 의심이 제기되지 않은 채 언론에서 그대로 보도됐다.

인권활동가 김희진씨는 사건 당사자들을 만난 지난 1월을 회고하며 그들을 지배하고 있던 주요한 감정은 무엇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고 전했다. 김씨가 이들을 만났던 때는 아직 검찰 구형이 내려지기 전이었다.

한 사건 당사자는 자신이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죽게 되더라도 그 죽음은 '모두가 이해하는 죽음일 것'이라며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무죄임을 확신했다.

하지만 동시에 재판에서 유죄가 선고될 것이라는 것 또한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일로 사형선고를 받을 수도 있겠구나. 사실이 아님에도 국정원에서 나를 죽일 수 있겠구나' 하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보고회를 개최한 인권단체들은 지난 2월 13일 내란음모사건의 인권침해와 관련해 인권위에 진정을 접수했다. 박진씨는 "2월 17일 1심 결과가 유죄로 나온다 해도 국정원의 인권침해 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이번 사건에서 우리 모두의 공포와 혐오가 동원됐다는 점에서 피해자는 우리 모두이며, 이는 전체 사회의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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