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 터지는 셔터 소리 떨렸지만 즐기는 척했죠"

2014. 2. 1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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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거진 esc] 스타일

방송계의 감초에서 패셔니스타로 거듭난 김나영의 솔직하고 담백한 고백 <마음에 들어>

지난해 파리 컬렉션에서 '스트리트 패션 퀸'으로 눈길을 끈 방송인 김나영씨가 이달 초 첫 책을 펴냈다. <마음에 들어>(포북)는 솔직한 감성으로 충만한 에세이다. 패션에 대한 이야기와 가족, 연인, 친구들에 대한 '개인사'를 담백하게 풀어놓으면서 자기연민에 빠진다거나 과장하지 않는다. 그가 단단해지는 과정과 패션 센스, 미래를 준비하는 비법을 다룬 글을 보면, 경력자의 '내공'이 느껴진다.

"고등학교 때부터 끄적거리는 것을 좋아해 일기를 써왔어요. 내 이야기 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낯설어해요. 방송 하면서도 늘 있었던 일이에요. 말하는 데 시간을 많이 둬야 해서 듣는 사람이 지루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글을 쓸 때는 흩어진 생각을 불러모을 시간도 있으니까 그동안의 갈증을 풀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난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나영씨는 자그마한 얼굴에 약간 긴장된 표정으로 질문 하나하나에 진심이 느껴지는 답을 했다. 소설가 김영하씨의 얘기처럼 글로써 자기 내면을 밝힌다는 건,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 또한 많이 망설이고 수줍어했지만 사람들에게 솔직한 이해를 구하고도 싶었던 모양이다. 원래 김나영이 구상한 책 제목은 <거지꼴을 못 면해도 좋아!>였다. 하지만 진짜 '거지꼴'이 되면 어쩌나 하는 그의 정직한 걱정에 모두 웃으며 제목을 바꿨다.

편집자는 "김나영씨 본인이 직접 쓴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정도 손수 여러번 봤다. 유명인들의 책이 보통 대필 작가의 손을 빌려 나온다는 것에 견주면, 일종의 모험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삶에 대한 생각 말고도 발품 없이는 결코 얻지 못했을 패션 노하우며 경험담이 웬만한 실용서 못잖다. 한끗 차이를 만드는 양말 사는 법, 부산 깡통시장에서 빈티지 건지기, 아웃렛 이용법, 남자 옷을 멋있게 입는 방법 등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많다.

패션 공부를 하면서'소울'까지 바뀌었어요처음엔 예쁘게 보이고만 싶었는데지금은 멋진 여자이고 싶죠다른 사람의 눈길 의식하는 것보다내면을 채워가는 데 관심이 생겼어요

벌써 방송 경력이 올해로 딱 11년째. 2012년 말, 어느 날 갑자기 세수를 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 얼굴에 찬물을 끼얹듯 "지금 무슨 생각으로 살고 있는 거야?" 하는 자각이 온 것이다. 책에서 그는 "진짜 내 모습은 보여드린 적도 없어요. … 답답해요. 앞으로 10년, 20년, 아니 더 많은 날들을 가짜로 살아야 하나… 싶었죠"라고 썼다.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었던 셈이다.

비슷한 시기에 거짓말처럼 삶의 전환점이 찾아들었다. 한 패션 채널에서 외국 유명 컬렉션에 가 '스트리트 패션 퀸'이 되는 과정을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해온 것이다. "기획을 듣자마자 내가 그동안 꿈꿔온 기획이라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동안 꿈꾸던 '인생 2막'이었을 뿐만 아니라 단순히 '푼수', '여자 노홍철'로 일컬어지던 그 안에서 '멋진 여자 김나영'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한번도 제대로 사랑해주지 못했던 나 자신에게 더 이상 미안해지지 않기로" 한 것이다.

작년 봄, 파리컬렉션이 첫발이었고, 준비를 단단히 했다. 그의 멘토인 박승건 디자이너의 도움을 받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체의 스타일링을 고민하며 만들었다. 패션쇼 런웨이 무대에 버금가는 패션의 각축장이 되는 쇼장 앞 거리에서 눈길을 끌어야만 했다.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고, 셔츠를 거꾸로 입어 단추를 뒤로 잠그고, 커다란 헤드피스를 쓰는 등 독특한 패션으로 '중무장'한 채 거리에 나타난 그를 보자마자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번쩍 터졌다.

"실패할 수도 있어서 정말 떨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힘도 많이 들었지만, 프로그램을 마친 뒤에 또다시 그곳에 가야 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지난해 가을 또 한번 도전했어요. 부끄러웠지만 '내 돈 주고 왔는데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싶어서 패션계 인사들과 사진을 찍고 언론 배포(릴리스)도 적극적으로 했어요.(웃음)"

숙고하고 고민하는 성격인 반면, '적극성'이란 무기가 있었던 셈이다. 두번째 컬렉션에 갔을 때 반응은 처음과 사뭇 달랐다. 호텔 방에는 클로에, 존 갈리아노, 소니아 리키엘, 빅터앤롤프 등 유명 디자이너의 초대장들이 밀려들었다. 야마모토 요지는 그의 앞으로 옷을 담은 슈트 케이스를 보냈다. 포토그래퍼들이 여기저기서 "엔와이!"(NY)라고 그의 이니셜을 불러대고, <그라치아 이탈리아>, <뉴욕매거진> 등 매체가 그의 사진을 앞다퉈 실었다. 특히 <보그 이탈리아>는 사흘 연속 그의 사진을 보도했다. 남몰래 잠을 줄여가며 그야말로 전투적으로 준비했던 덕이다.

"저는 사람들의 쏟아지는 관심에 익숙한 톱스타는 아니었으니까 그런 반응이 낯설기도 했죠. 연방 이어지는 셔터 소리에 너무 떨렸지만 늘 이래 왔던 사람인 양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죠. 돌아와선 허무감도 있더라고요. 괴리감도 아주 컸고…."

늘 스스로를 낮추고 '감초' 역할을 해온 김나영과 세계 유명 디자이너의 옷을 세련되게 연출하고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는 패셔니스타 김나영은 한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그 역할을 해내기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이를 두고 "인생의 양면"이라고 표현했다.

"둘 다 나한테 있는 측면 같아요. 패션 공부를 하면서 저 자신이 많이 달라졌고, '소울'까지 바뀌었어요. 처음엔 여성스럽고 예쁘게 보이고만 싶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멋진 여자이고 싶죠. 사랑스러운 원피스를 입더라도 지금은 믹스매치해서 쿨해 보이도록 입는 걸 좋아하게 됐고요. 다른 사람의 눈길만을 의식하는 것보다 저 자신의 내면을 채워가는 것으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고 할까요?"

블로그 '언더 앤 오버'(blog.naver.com/under andover)는 그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작업실이다. 작년 7월부터 박승건 디자이너와 주위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만든 이곳에 패션에 대한 이야기를 올린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간단한 포스팅을 하나 준비하는 데도 "용을 쓴다"고 한다. 특히 한가지 아이템으로 일주일을 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큰 인기를 얻었다. 친구들과 밤늦게 각종 착장을 시도해가며 패션지에 버금가는 기획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밖에도 그가 미래를 위해 '투자'해온 것이 있다. 발성법, 필라테스, 발레, 영어 공부다. 그중에서도 발성법은 비음이 섞인 높은 톤의 목소리에 신뢰감이 부족하다 느껴 시작한 것이다. 발성 선생님은 신체적인 훈련을 하면서 몸의 어느 부분에 신경을 쓰면 어떤 소리가 나오는지 신비로운 체험을 선사해주었고, 자신감이 부족한 심리적인 문제까지 깨닫도록 이끌었다. 이 훈련을 거치면서 그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제가 꿈꾸는 삶을 살려고 할 때 책임져야 할 것이 많더라고요. 저는 원래 방송을 하는 사람이고, 패션과 방향이 일치하지 않아 주변에서도 우려가 많았지만, 앞으로 둘 다 잘 가져갈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잘되겠죠?"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자료사진 포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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