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민심이 어쩌고 어째? 다 '뽀빠이 시금치'야

데일리안 2014. 2. 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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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 이상휘 선임기자]

◇ 미국 ABC 사가 방영하여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애니메이션 '뽀빠이' 인터넷 화면 캡처.

설이 지났다. 나흘간의 연휴도 끝났다. 연휴가 끝나는 날 저녁, 밥상에 시금치가 올라와 있다. 맛깔나다. 조물조물, 양념도 잘 무쳐져 있다.

장모님이 주신 시금치다.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인사를 드릴 때였다. 직접 캐신 거라며 맛있게 한끼 반찬으로 먹으라며 던지듯 넣어주신 거였다. 한참을 보고 있었다. 집사람은 그런 나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아이들도 시금치를 먹다 멈췄다.

무슨 말을 할까? "뭐라고 한마디는 해야 하는데...." 싶었다. 뜬금없이 뽀빠이가 생각났다.1927년에 태어났으니, 아흔살이 다 되어간다. "살려줘요 뽀빠이~!!"라고 외치는 올리브를 구하는 뱃사람이 뽀빠이다. 시금치만 먹으면 힘이나는 뽀빠이 말이다.

그래서 였을까, 나는 가장으로서 시금치를 두고 이렇게 말을 했다.

첫째, 왜 뽀빠이는 시금치를 항상 위기에만 먹을까.

평상시에도 먹고 있으면 되는데 말이다. 악당에게 쫓기고 위기에 몰릴 때만 시금치를 찾는다. 사랑하는 연인 올리브를 구하기 위해서다. 끝장이 날 때쯤 시금치를 먹는 것은 극적인 효과다. 뽀빠이는 원래 힘이 무진장 세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스스로 꺼집어 내지 못한다.

위기와 극적인 순간에만 발휘되는 것이다. 시금치라는 매개를 통해서다. 그것이 보는 이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최대 가치의 임펙트를 만들기 위한 수단이 시금치인 것이다. 플라시보 효과를 염두에 둔 것일 수도 있다.

둘째, 뽀빠이는 마초적 본성의 단순함만이 있는가.

악당 블루터스로부터 올리브를 구하는게 뽀빠이의 역할이다. 시금치를 먹고 힘을 극적으로 만든다. 그 힘이 없으면 뽀빠이도 없다. 거친 바다사람으로 앵커 문신을 한 강한 팔뚝을 가졌다.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항상 파이프를 물고 근육을 자랑한다.

어떤 경우든 자신의 힘이 최고라는 과신이 넘친다. 블루터스와 싸울 때는 올리브를 위한 것인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것이 마초적이다. 그래서 뽀빠이는 마초적 본성의 표본으로 본다.

셋째, 올리브는 여권신장에 도움이 될까.

뽀빠이에 등장하는 올리브는 아름답다. 그리고 연약하다. 도무지 독립성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항상 블루터스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과도한 애정공세에 어쩔 줄 몰라한다. 그리고는 위기를 만든다.

상황을 어렵게 하는 역할이다. 무조건 '살려줘요 뽀빠이'라고 외친다. 스스로 상황을 풀어가는 그 무엇은 없다. 지나친 남성의존성을 드러내는 캐릭터다. 페미니스트들에게는 과히 반가운 존재가 아니다. 저녁밥을 먹다 말고 그렇게 말을 한 것이다.

"너희가 뽀빠이를 아느냐?"라는 듯이 말이다. 이 집 가장의 지식정도가 이만치나 된다는 듯이 그랬다. 나는 신이 났다. 말을 이어가려는 데 집사람이 끊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했다.

"장모님이 주신 시금치는 뽀빠이 시금치가 아닙니다. 마초니 페미니스트니 그게 무슨 대수입니까. 장모님이 주신 시금치는 그냥 시금치입니다. 손주사랑과 사위사랑이고, 좋은 거, 맛난 거를 먹이고 싶은 그 마음이 전부입니다"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식사는 침묵으로 끝이났다. 사실 난 후회가 됐다. 왜 그랬나 싶어서다.

그랬다. 장모님이 주신 시금치는 시금치일 뿐이다. 뽀빠이를 개입시킨 것은 나의 우월적 교만때문이었다. 쓸데없는 가치적 분석이 키운 오만이다. 세상은 그것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때로는 있는 그대로의 가치가 더 중요한 법이다. 잠시 그것을 망각한 때문이다. 지식의 가치가 감성의 가치를 넘어설 수는 없다.

설날 민심을 두고 정치권은 제각각의 해석을 내놓았다. 편리한데로 일 것이다. 각자의 진영논리로 풀어낸 민심이다. '아전인수'격이요 '제논에 물대기'격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그렇고 정치문제가 그렇다.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나는 장모님의 시금치를 뽀빠이 시금치로 봤다. 유식하게 분석을 했다. 과도한 설명을 했다. 곰곰 생각해봐야 한다. 정확한 민심이 중요하다. 그저 편리한데로 유리한 데로 민심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장모님의 시금치를 뽀빠이 시금치로 호도하는 것은 아닌지를 말이다. 설 민심을 전하는 정치권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뽀빠이 시금치'다. 뽀빠이 시금치에 대한 교만적 논리는 가족의 사랑과 화목에는 전혀 도움이 안된다. 아무 소용도 없는, 그저 경박한 해석이며 논리일 뿐이다.

민족의 명절인 설날이 지났다. 국민들은 많은 아픔을 말했다. 정치보다, 안보보다, 외교보다 더 절실한 민생을 말했다. 가감없이 아프고, 진실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 전에 함부로 민심을 들먹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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