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워스트' 이준행 "침묵하여 후회하느니.."

입력 2014. 2. 1. 09:31 수정 2014. 2. 2.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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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뉴스24 >

[정미하기자]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개설자일 뿐인데 화제의 중심에 선 인물이 있다. 개설된 지 이제 갓 한달이 넘었을 뿐인데도 이슈의 한복판에 선 '일간워스트(이하 '일워', www.ilwar.com)' 운영자 이준행(30)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일워'는 보수 성향의 커뮤니티 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 www.libe.com)에 대항하기 위해 개설된 커뮤니티로, 탄생하는 순간부터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일워'가 개설된 것은 지난해 12월28일 밤 11시경으로, 12월29일 하루 종일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는 '일워'가 순위권에 오르내렸다.

올해 30살. 후드 점퍼에 배낭을 메고 나타난 이준행씨는 언뜻보면 대학생 같았다. 진정 저 사람이 화제의 커뮤니티 사이트 '일워'를 만든 사람일까 싶을 정도의 앳된 외모. 그러나 시니컬하지만 단호한 말투, 논리정연한 말들은 그가 만든 사이트가 잇따라 사회적 관심을 받는 이유를 짐작케 했다.

29일 서울 시내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이 씨에게 조심스레 그의 개인사가 궁금하다고 물었다. 최근 들어 '일베' 회원들은 이 씨에 대한 신상털기에 나서고 있다. 그에 대한 기사가 나가면 오히려 그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이 씨는 "'일베'가 신상을 터는 게 이상한거지, 제가 몸을 사릴 이유는 없다"고 쿨하게 말했다. 그는 "신상이 털릴 수 있으니 침묵해야 된다는게 싫다. '나중에 후회하느니 차라리 맞서자'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대나무위키' 사이트 닫고 아파…"침묵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이 씨가 만든 인터넷 사이트가 화제를 모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온라인 뉴스 제목에 등장하는 선정적인 단어를 통계로 보여주는 '충격고로케'(hot.corokr.com)라는 사이트를 만들었던 인물이다. 온라인 뉴스 제목에 등장하는 '충격', '경악', '헉', '알고보니' 등의 선정적 제목을 사용하는 언론사를 순위로 매겨 언론에 경종을 울린 바 있다.

그는 "카페에서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다가 한 연예인이 난소암을 겪고 자연임신이 안된다는 내용의 기사 제목을 '자연임신 안 된다. 충격'이라고 쓴걸 보고 열이 받았다"며 "도대체 몇 개의 기사에 '충격', '경악'이 붙는지 세보고는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하나의 페이지로 만들어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화제가 됐다"고 말했다.

이후 이 씨는 몇몇 기자들의 전화를 받았다. 선정적인 제목을 다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말할 곳이 없다는 하소연이 다수였다고 한다. 이에 그는 해당 내용을 글로 남길 수 있는 '대나무숲위키'를 만들었다. 그런데 한 달여뒤, '장자연 사건'에 대한 내용을 담은 글이 올라왔다.

한 지인이 '글을 방치해뒀다가 형사입건되면 비자가 안 나올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이 씨는 해당 사이트를 닫았다.

이 씨는 "그런데 사이트를 닫고 나서 1~2주일간 배가 아프고 우울했다"며 "몸 사리고 스스로 포기했다는데 대한 자괴감 때문인지 괴로웠다. 그래서 나중에 후회할 거 같으면 차라리 맞서라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일워'를 만든 것은 이 사건의 연장선이다. 우연이었지만 주눅들거나 몸을 사리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일워'를 만들었다고 한다.

한 트위터리안이 민주노총 총파업 전날인 지난해 12월27일, "빨갱이 커뮤니티 일간워스트를 만들어서 '비추천' 버튼 이름을 민영화라고 하자'는 글을 올렸다. 이를 본 이 씨가 '일베처럼 들어올 분 열명, 멘션 주시면 만들어드리겠다'라고 글을 남기면서 일이 시작됐다.

그 전에는 '일베'에 큰 관심이 없었다는 이 씨다. 다만 작년 6월 경 '일베'가 한창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을 때, 이 씨는 '일베' 게시판 글 전체를 형태소 단위로 분석한 '일베리포트'를 만들었다. 당시 1위가 욕(5천417건), 2위가 여자, 김치년(4천312건), 3위가 노무현(2천339건)이었다.

그는 "원래 인터넷에 이런사람 저런사람이 있는데 언론이 '일베'만 문제삼는 걸로 여겼는데 통계를 보니 그게 아니었다"며 "압도적으로 욕설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욕, 여성에 대한 희롱만 쏟아져나오는 커뮤니티였다"고 했다. 다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일베'에 대해 '원래 그런 사람들이겠지'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는 "'귀찮은데 뭐하려고…'라는 생각도 했지만, 힘든 것보다 궁금한게 더 커서 '일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도메인 사는데 2~3분, 무료 호스팅을 찾는데 1시간, 설치하는데 10분 걸렸다"며 또 한 번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그렇게 트위터 한 줄이 남겨진 뒤 한 시간여만에 탄생한 것이 '일워'다.

하지만 이른바 '일베'의 저격수로 지칭되는 '일워'를 운영하면서 이 씨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일베'유저들이 신상털기를 시도하거나, 협박전화 등이 오기도 한다. 지방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하루 수백만명이 들어오는 사이트라 트래픽은 항상 높고, 디도스 테러가 들어오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고는 있지만, 개인이 감당하기엔 벅찬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시킨 일도 아닌데 말이다.

이 씨는 "신상이 털릴 수 있으니 나는 그냥 침묵해야 된다고 하는 게 싫다"며 "내가 왜 눈치를 보며 몸을 사려야 하나, 그러면 스스로 졌다는 것에 대해 많이 후회할 것 같다"고 말했다.

처세의 원칙이라 여겨지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를 택하기보다, '행동하는 양심'을 택한 이 씨다.

◆"극우세력, 무시할게 아니라 대면하고 이야기해야"

그가 운영하는 '일워'의 성격도 이 씨를 닮았다. 가만히 앉아 방관하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일베'의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씨는 이런 '일워'의 특징을 "'일워'는 '일베'의 추악성을 드러내는 거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다른 커뮤니티에서는 '일베'를 외면하거나 피하기만 했지만 '일워'에서는 '일베'가 분탕질을 하면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며 "꾸준하게 대화를 시도하고, 경청하는 것을 경험한 '일베' 유저들이 예전에 없던 반응인데하고 당황하고 한동안 침묵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처럼 침묵만 해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대면해서 직접 메시지를 전하는 시도는 예전에 없었다"며 "처음으로 '일베'에 거울을 든 존재가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일워' 유저들이 자신들에게 보이는 반응을 보고, '일베' 스스로 자신이 어떤 사람들인지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파시스트를 대하는 전세계적인 동향을 보고 느낀 점이다. 그는 '일베'에서 논의되는 약자에 대한 혐오, 지역차별, 여성희롱 코드는 파시즘이 택했던 가치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 르펜의 국민전선, 이탈리아의 그릴로, 오스트리아 극우당에 대해 '쟤네는 이상한 애들이다'라며 무심하게 내버려둔 사이 르펜은 프랑스 대선에서 결선투표에 진출하고, 오스트리아 극우정당은 20% 이상의 득표를 얻는 등 성장했다"며 "무심하게 넘길게 아니라 실제로 대면하고 이야기하고, 생각을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995년 도쿄 지하철에서 독가스 테러를 저지른 오움진리교를 사건 피해자와 가해자를 인터뷰한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이 씨는 "사건을 소비만 할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왜 이러는지 물어야 한다. 외면할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일워'의 콘셉트는 농촌이다. 가입하는 것은 '귀농', '일베'를 잡는 것은 '농약친다'라고 표현한다. '일베'로 추정되는 사람이 발견되면 농약을 상징하는 이모티콘을 넣어 퇴치하거나 댓글 창에 일베충 경고 아이콘을 사용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 외에도 이 씨는 '일워'나 '일베'나 거기서 거기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닭체'나 '재규하다'는 표현의 경우 사람의 죽음을 희화화하면 안된다는 논의를 거쳐 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문체 하나를 채택하고 버리는 과정에서도 '일베'와는 다르게 나름의 합리적인 기준, 예를 들어 사회적으로 용인이 된다, 안 된다는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중3 때 사이트 만들기 시작, 신방과 출신 개발자 특이 이력

이 씨는 지난해 12월20일까지 SK플래닛(2012~2013)에서 개발자로 일하다 퇴사했다. '일워'를 개설하기 일주일 전이다. 그 전에는 NC소프트(2007~2008)와 네이버(2011~2012)에서 각각 기획자와 개발자로 일했다.

고등학교 때는 이과였지만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그가 IT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중학교 때 경험이 크다. 이 씨가 처음 인터넷 사이트를 만든 것은 그가 중학교 3학년이던 1999년으로, 청소년 포털사이트 '아이두넷'은 당시 두발자유 등의 이슈를 논하는 장이었다.

그는 "대전에 있는 중학교를 다녔는데, 곁에 있던 카이스트에서 공과대학 교양과목을 무료로 가르켜주는 과정이 있어 친구들끼리 배우러 다녔다"며 "평준화 지역이었기에 중학교 3학년 때 마지막 시험을 마치고 심심하니까 만든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중학생 때부터 취미로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고 사이트를 만드는 실습 과정을 스스로 거친 것이다.

이 씨는 프로그래밍에 흥미를 느끼긴 했지만 대학에 가서는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전통 매체를 배우고 싶어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기획 관련 일을 하며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 NC소프트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고, 지금은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개발자 출신답게 이 씨는 '충격고로케', '일워' 이외에도 다수의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이 씨는 인디밴드와 인디뮤지션들의 공연소식과 공연장을 알려주는 '인디스트릿'(indistreet.com), 읽은 책과 읽고 싶은 책을 서재에 담는 '북키'(boooki.com), 맥북 에어를 살지 맥북 프로를 살지 등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배틀리스트'(battlelist.com), 비밀일기장 '로피피'(ropipi.com) 등 10여개의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었다.

그는 "'인디스트릿'은 친구의 요청으로, '부키'는 제 욕심에 만든거지만 다른 사이트들은 '하루면 만들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만에 못만들거 같으면 포기하는게 자신의 한계라고 말하기도 한 이 씨지만 생각한 바를 바로 실행에 옮기는 '행동력'을 지닌 인물임은 분명하다.

마지막 회사를 나오면서 자신이 개발한 서비스를 바로 선보이길 바랐다는 이 씨는, 당장은 '일워'에 쏟아져 들어오는 트래픽 관리에 힘쓸 예정이다. 현재까지 올라온 글 수는 10만건으로 하루에 올라오는 글 수만 2천600개에다, 하루 방문자수는 몇 백만명에 이른다.(커뮤니티 사이트의 정확한 트래픽은 밝히지 않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이에 또다른 운영자 '남자2호'와 서버를 추가할 지 논의 중이다.

그는 "대부분의 커뮤니티 사이트가 내부에서 논쟁을 벌이다 폐쇄적으로 변한 경향이 있다"며 "'일워' 유저들은 서로 다른 정치적 포지셔닝을 가지고 싸우더라고, 같이 지낼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보여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미하기자 lotus@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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