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공연히 허튼 꿈 꾸지 말고 땅밑으로 내려오라 하네
[동아일보]
'아무것도 기억 안 나/이게 진짠지 꿈인지도 알 수 없어/맘속 깊이서부터 소리를 지르고 싶은데/이 지독한 침묵이 날 멈춰' ('원' 중)
1만2000피트(3657.6m) 상공에서의 스카이다이브, 109m 높이 벼랑에서의 번지점프, 지상 7500피트에서의 열기구 체험…. 지난 주말 뉴질랜드 퀸스타운에 머문 이틀 동안 난 주로 땅 못잖게 하늘 비슷한 곳에 오래 있었다. 공수부대 훈련에라도 참가한 것처럼.
그게 자살이든 레저든, 높은 데서 뛰어내리는 데 딱 어울리는 음악이 뭐가 있을까. 믿거나 말거나, 퀸스타운 교외의 스카이다이빙 캠프에서 비행을 앞두고 보호 장구를 착용할 때 장내 스피커로 나오던 음악은 메탈리카의 '원'이었다. 지뢰를 밟은 뒤 사지가 절단된 병사가 신께 죽음만 간청하는 노래를 스카이다이빙 10분 전에 틀어주는 레저 회사의 친절이라니…. 만년설로 덮인 리마커블 산맥과 거대한 와카티푸 호수의 아찔한 절경을 향해 경비행기 꽁무니에서 맥없이 내쳐질 때의 기분이란….
벼랑 점프 회사 직원들의 친절은 한 단계 위였다. 점프 직전에 "뭘 듣고 싶냐"며 신청곡을 받았다. 영국 밴드 블러의 '송 투'를 청했다. 신명나는 반복 구, "우∼ 후∼!"에 딱 맞춰 떨어지리라는 다짐은 얄궂은 직원들의 카운트다운에 묻혀버렸다.
지구의 중력이 얼마나 세게 날 잡아끌고 있는지를 난 공중에 매달려서야 알았다. '그래비티'(중력)란 노래가 많지만 미국 싱어송라이터 존 메이어(사진)의 것은 특별하다. 날아오르고픈 마음마저 끌어내리는 중력에 대해 "그저 빛이 있는 곳에라도 머물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내용이다. 메이어는 샤워를 하다 문득, 뉴턴처럼, 첫 구절을 떠올렸다. '중력… 그건 내 반대로 작용하지/중력은 날 아래로 끌어당기고 싶어 해.'
순간의 불꽃은 슬로 모션처럼 기억되고 중력은 오늘도 날 아래로 잡아끈다. 허튼 꿈을 꾸지 말라며. 그저 쉬라며. 그러다 끝내 어두운 땅 밑으로 내려오라면서.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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