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배우' 강신일 "연기, 알면 알수록 두려워진다" [인터뷰]

박진영 기자 2014. 1. 15.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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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박진영 기자] 날카로운 눈빛과 따뜻함이나 친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 어둡고 좁기만 한 작업실에서 늘 레드와 블랙 사이에서 고투를 벌이는 마크 로스코.

그는 1950년대 추상표현의 대표적인 화가로 구상화에서 추상화까지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 1970년대 스튜디오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20년간 그린 색면추상화로 미술사에 각인되고 있다. 연극 '레드'는 마크 로스코라는 실존 인물과 가상 인물인 조수 켄의 치열한 논쟁을 통해 인생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연극 '레드'는 2009년 런던에서 초연된 후 2010년 브로드웨이로 건너가 제 64회 토니어워즈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연출상 등 주요 6개 부문을 휩쓰는 등 토니상 최다 수상이라는 영예를 얻은 수작이다. 2011년 국내 초연에서는 강신일이 마크 로스코 역을, 강필석이 조수 켄 역을 맡아 평단과 관객들을 사로잡으며 평균 객석점유율 84%를 기록, 그 해를 대표하는 화제작으로 명성을 이었다.

그리고 '레드'는 초연 멤버인 강신일, 강필석과 함께 한지상이 합류한 캐스팅으로 2년 만에 관객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현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순항 중인 '레드', 특히 로스코 역의 강신일이 보여주는 연기에 대한 관객들의 평은 한결같이 찬사 일색이다.

하지만 강신일은 오히려 "아직 나는 연기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초연이 아닌 재연을 하면서부터 두려움이 생겼다고 고백한 그는 "모르면 용기가 생긴다. 모르면 두려운 것도 없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두려워지게 된다"고 전했다.

"햇수로 3년 전, 초연 때는 지금에 비해 젊었고 그만큼 호기도 있었고 자신감도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의 접근법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막연하지만 그 때는 더 막연하게 로스코를 생각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그 나이까지 열정을 쏟아냈던 양반이 어떻게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까'에 집중한다. 그 분의 절망이나 고민에 근접할 수 없겠지만 그 때는 막연하게 '그랬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더 깊이 있게 그 뜻을 헤아리고 있다."

초연 당시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는 그 또한 극의 흐름을 잘 파악하기 힘들었다고. 그래서 관객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많이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영문을 한글로 번역을 하다 보니 평소 사용하는 자연스러운 어법이 나오지 않았고, 이 때문에 토론을 하고 고민을 하는 시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고. 그는 "그런 시간이 많다 보니 정작 액팅은 만족스럽지 못하게 나왔고 그래서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다. 하지만 2년이라는 세월 동안 연출을 하는 친구도, 또 나도 더 숙성이 되고 컸을 거라 생각한다. 조금 더 우리말로 전달을 하는데 어색하지 않게 보완을 했고, 작품에 대한 이해도도 더 깊어졌을 거다"라고 초연보다 훨씬 더 작품에 푹 빠져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공연이 반 이상 진행된 지금까지도 이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로스코를 하면서 가장 염려하고 힘들었던 것은 '내가 지금 한국말처럼 하고 있는가'였다. 번역극이기 때문에 아무리 우리말로 순화를 시켰다고 하더라도 그게 정말 우리말처럼 전달이 될까 하는 고민이 있다. 부끄럽게도 반 정도 밖에 안 된 것 같다. 그 부분을 계속 생각하고 있고, 간단한 말들은 최대한 자연스러운 말투로 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레드'는 대사가 워낙 많은 작품이기 때문에 배우들이 갖는 부담이 상당했다. 강신일은 대본 외우는 얘기가 나오자마자 "잘 못 외운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어 그는 "내가 그런 면에서는 둔한 편이다. 대본을 미리 다 외워서 하시는 분도 있는데 나 같은 경우엔 공연 임박할 때 쯤 거의 숙지가 되는 편이다"라고 전했다.

"나는 집에서 대본을 읽기만 하고 외우지는 않는다. 계속 흐름이나 상황, 관계에 대해서만 생각을 하고, 대략 어떤 말이 오고 간다는 것만 머리와 가슴 속에 담아놓고 공연 임박해지면 외우는 편이다. 대본을 들고 있으면서 상대방 대사, 앞 대사까지 다 연관 지어 흐름을 파악하는데, 그래서 나와 함께 연기를 하는 사람은 답답해 할 수도 있다. 그 사람은 이미 다 외웠는데 나는 대본을 들고 하니까 말이다.(웃음)"

그러면서 그는 연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대본이라고 고백했다. 주변 환경을 연관 짓기보다는 대본 속에 그려지고 있는 인물은 어떤 모습이고, 또 어떤 고뇌를 가지고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집중을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렇게 작품과 그 캐릭터에 푹 빠져 있다 보니 실제 생활에서도 마치 로스코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는 "배우로서 모자라서 그런 건지 작품을 하는 동안에는 평소의 나와는 다른 모습이 보인다"라고 말했다.

"30살 때 '늙은 도둑 이야기'를 했었는데, 내가 연기를 해야 하는 캐릭터의 나이가 72세였다. 할아버지 역이다 보니 그 분들의 행동이나 말투를 파악하고자 매일 파고다 공원에 들러 2시간 정도 관찰한 뒤 연습실에 가곤 했다. 그렇게 몇 달을 살았다. 어느 날 극단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혜화동 로터리를 가는데 뒤따라오던 후배가 '형, 등 좀 펴고 걸어요'라고 하더라. 나도 모르게 등이 구부정했던 모양이다. 또 악역을 많이 해보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이토 히로부미 역을 했었다. 의도적으로 좀 악한 인물로 표현을 했고, 또 독하게 연기를 했었다. 그랬더니 아내가 무섭다고 하더라. 그런 식으로 작품과 인물에 푹 빠져 평소의 내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이 나오는 것 같다. 이번에는 내가 그걸 느낀다. 굉장히 급해졌고 거침없이 말하고 좀 거칠어진 듯하다."

이런 로스코의 급한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중국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매일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연기를 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을까 싶어 질문을 떠내니 강신일은 "얌전히 먹을 수가 없다. 이 사람이 말이 빠르지가 않으면 괜찮은데 조수 켄의 말을 잘라가면서 자기 얘기를 하니까 초반에는 말하는 것이 불편했다. 입에 너무 많이 넣어서 대사가 뭉그러지기도 하고. 마음 같아서는 뱉어가면서 말하고 싶은데 그러면 너무 지저분해지니까 초반에 비해 먹는 양을 줄이고 있다"라고 대답하고는 웃음 지었다.

그는 좋아하는 장면이나 대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모든 장면이 좋고 재미있을 정도로 애정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잠시 고민을 하던 강신일은 "로스코가 상업예술에 대해 분노를 하고, 2년 동안 로스코 옆에 있으면서 배우고 점점 커간 켄이 그동안 가지고 있던 의문을 한꺼번에 논리적으로 내뱉는 장면이 이 공연의 백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로스코가 결국은 자기가 추구하려고 했던 이상이 그림을 걸려는 식당과 맞지 않다고 한다. 그걸 그냥 한마디만 하면 될 걸 식당에 들어갔는데 소리가 들리고 하면서 주절거린다. 나는 그게 코미디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장면도 재미있다. 이 4장과 5장이 하이라이트다"라고 전하고는 "그런데 관객들은 레드 칠을 하는 장면에서 감동을 받는다고 하더라. 우리는 힘든데"라고 말하고는 웃음 지었다.

"칠을 할 때 체력 소모가 상당하다. 그것만 하면 괜찮을 텐데, 로스코라는 인물은 워낙 자기 밖에 모른다. 성질도 급하다. 그 전에 쉼 없이 쏟아내는 대사에 이미 에너지 절반은 소진한 상태에서 그 칠을 하려고 하니 사실은 숨 가쁘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들키면 안 되니까 숨 고르기를 숨어서 억지로 한다.(웃음)"

그리고 "로스코의 말은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을 정도로 다 맞는 말이다. 예술이 상업적이면 안 된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쪽으로만 가서는 안 된다고 질타를 하는 거다"라고 로스코의 대사들을 한참 떠올려 보던 그는 "세대가 사라지고 또 등장하고, 그렇게 영원히 순환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로스코다. 상업화된 빌딩 안에 그림을 거는 것은 일종의 어깃장 같은 거다. 나는 아직 살아있고 예술은 이래야 한다고 호기를 부리는 거다. 그런데 의도는 그렇지만 어쨌든 상업적으로 결탁을 한 것이 맞지 않느냐는 조수의 말이 그의 폐부를 찔렀다. 결국엔 그것을 스스로 인정을 하고 자신을 향해 대드는 조수에게 '너는 처음으로 존재했다'라고 한다. 굉장히 멋있는 말이지만 한편으론 굉장히 쓸쓸한 말이다. 선생님으로서 멋진 말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로스코가 켄을 만났을 때 온갖 작품의 이름을 거론하는데 사실 나 또한 다 못 읽었다. 부끄럽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면서 늘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건 곧 나에게 하는 얘기다. 로스코라는 사람은 철학과 인문학, 미술 등 전분야에서 깊이 있게 성찰을 했다. 정말 대단하다. 거기에 비추면 나라는 존재는 정말 부끄럽고 모자라다."

그렇다면 함께 무대에 오르고 있는 강필석 한지상에 대한 강신일의 생각은 어떠할까. 그는 질문을 받자마자 "로스코는 상대의 호흡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상대가 어떻게 하든 로스코 마음대로 하면 되지 않나"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면서도 "두 친구 다 뮤지컬 쪽에서 이미 스타의 자리에 있다. 자기 색깔을 가지고 있다. 매 공연마다 두 배우의 팬들이 열광해주고 끊임없이 찾아와주는 것이 놀랍다. 연극에서는 그런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라고 후배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드러냈다.

"강필석은 초연보다 지금이 더 성숙해진 느낌이다. 작품에 좀 거 녹아들고 깔끔하며 부드러운 느낌이 있다. 한지상은 아무래도 처음 접하는 작품이고 아직 강필석에 비해 연배가 아래다 보니 조금 더 에너지가 있고, 거친 느낌이 있다. 이런 차이가 있지만 켄이라는 역할이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혀 불편하거나 하지 않다."

초연부터 재공연까지 한결같이 원캐스트를 고집하며 작품에 대한 열의를 보였던 강신일은 "힘이 안 든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말하면서도 "작품이 담고 있는 힘이 오히려 내 마음을 뜨겁게 달구니까 재미있어 하면서 하고 있다"라고 애정을 듬뿍 표현했다. 그리고 "다음에 이 공연이 올라온다면 다른 사람이 연기하는 로스코를 보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강신일에게 '레드'가 주는 의미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강신일은 "로스코가 자신을 최고라고 생각했듯이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높게 생각한다. 연극을 하면서도 나 스스로 그랬던 적이 있었다"라고 고백하며 '레드'의 전작인 '광부화가들'을 언급했다.

"광부화가들은 그림 속에 자기 일생과 정신을 담아냈다. 우리는 다들 나만 생각하지 않나. 내가 연극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다함께 마음과 정신을 나누고, 같이 땀을 흘리며 작품을 올렸다. 공동체 생활이었다. 지금은 달라지긴 했지만 80년대 연우는 그랬다. 그런 정신을 유지하고 살았던 광부화가들이 나를 반성하게 한다. 그들이 무지했다면, 이 로스코는 엄청나게 공부를 한 사람이다. 예술과 인생에 대해 고뇌하고 예술가가 가져야 하는 자질에 대해 연구한다. 그것이 나에게 데미지를 준다. 그렇기 때문에 '레드' 또한 나를 반성하고, 성찰하게 하는 작품이다."

연극 '레드'는 오는 26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티브이데일리 박진영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신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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