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으로 가기 위한 시나리오?

입력 2014. 1. 13. 14:40 수정 2014. 1. 1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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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이슈추적] 교학사 교과서 학교서 철저히 외면받자 마침내 국정교과서 부활 카드 꺼내든 정부'역사전쟁' 2막의 예고된 각본인가

어쩌면 예고된 각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른바 '역사전쟁'의 2막을 시작하면서 등장한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가 학교 현장에서 철저하게 외면받자, 극우·보수 세력에서 시작한 '심폐소생술'을 보면 말이다. 뉴라이트 성향의 한국현대사학회 전·현직 회장이 주요 집필자로 나서면서 친일과 유신독재 찬양 등으로 끊임없이 역사 왜곡 논란을 만든 교학사 교과서는 정치권과 교육부 등의 지원사격을 업은 채 교실을 파고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더 나아가 검인정 교과서의 탈을 쓴 채, 사실상 국정교과서를 부활시키려는 등 극우·보수 세력의 거침없는 '반격'이 이어지고 있다.

여당이 불 지피고 교육부 기름 부어

반격의 선봉에 선 이는 다름 아닌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었다. 그는 최근 일주일 사이 20여 개 고등학교에서 교학사 교과서의 채택 철회가 이어지자 '폭탄 발언'을 내놓았다. 서 장관은 지난 1월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교육과정 체계와 교과서 편성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과거에 편수실이 있어서 일차적으로 검증할 수 있었다. 편수 시스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교육부가 사실상 한국사 '국정교과서' 추진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재 검인정 교과서 체계에서 교육부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국사편찬위원회 등에 검정 과정을 맡기고 결과만 챙긴다. 그러나 편수조직이 생기면 정부 부처가 직접 교과서 내용을 일일이 챙기게 된다. 결국 1996년에 해체한 편수국 직제를 다시 부활시켜, 한국사뿐만 아니라 전체 교과서를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교육부의 '편수조직 부활' 선언은 정치권에서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만들자는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이는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다. 그는 교학사 교과서의 채택 철회가 이어지자 "교과서 1% 채택도 어려운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국정교과서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대대적인 지원사격에 동참했다. 그는 "교학사의 국사 교과서 채택 학교들이 집단적 압력에 의해 결정을 철회하는 일이 발생했다. 미래 세대를 위해 국정교과서로 다시 돌아가는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해봐야 한다"며 맞장구를 쳤다.

사실 새누리당의 '국정교과서화' 주장은 갑작스러운 건 아니다. 발언의 기원을 찾아가보면, 이 문제의 공론화를 가장 먼저 제기한 이는 정홍원 국무총리다. 그는 지난해 11월5일 국회 예산결산특위에 나와 "역사 과목 국정교과서 채택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 다음날,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한국현대사학회 소속 교수 등을 불러 진행하던 '새누리당 근현대 역사교실' 모임에서 "다른 교과서는 몰라도 국사와 국어 교과서는 국정교과서로 전환돼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논의의 불을 지폈다. 결국 총리가 던진 불씨에 여당이 한없이 불을 지피고, 교육부가 기름을 부은 모양새다.

이처럼 교육부가 강한 대응에 나선 배경은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학교 현장과 시민사회단체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검인정 과정에서 논란을 빚은 교학사 교과서가 다시 갈등의 중심에 선 건, 새 학기를 앞두고 학교마다 교과서 선정을 위한 학교운영위원회가 열리면서부터다. 서술 내용에 대해 문제가 제기돼 수정·보완을 거듭한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하는 경우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일부 사립학교장들이 교학사 교과서 선정을 강행했다. 교과서 선정 과정은 교사들이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교학사 등 8가지의 한국사 교과서 가운데 3가지를 뽑아, 교장이 확정해 학교운영위원회가 최종 결정하도록 돼 있다.

극우·보수, '역사전쟁' 전략 수정?

실제로 교학사 교과서 채택에 가장 먼저 문제를 제기한 이들은 고교생들과 교사였다.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기로 한 학교의 학생들이 '안녕하지 못하다'며 교학사 교과서 선정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학교 안에 붙이는 일이 이어졌고, 경기도 수원의 동우여고 국사 담당 교사인 공기택씨는 "교학사 교과서 선택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다"는 내용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했다. 그는 "분명히 더 큰 누군가의 외압을 받고 있는 학교장으로부터 몇 차례의 간절한 부탁이 있었다. 교사들은 사립학교가 갖고 있는 인간관계적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요구대로 교학사를 올리긴 했으나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3순위로 해서 학교운영위원회에 추천하여 올렸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추진했던 전북 전주 상산고, 경기도 파주 한민고, 수원 동우여고, 서울 창문여고 등 20여 곳은 사회적 파장이 커지자 선정을 철회했다. 그러나 파주 한민고와 서울디지텍고는 교학사 교과서를 선정하기로 했다. 전국 2370곳의 고교 가운데 0.001% 수준이다.

교육부는 편수조직 부활에 앞서 학교 현장을 압박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교육부가 1월6∼7일 이틀 동안 진행한 한국사 교과서 선정 결정을 변경하거나 변경을 검토한 20개 학교에 대한 특별조사 결과를 보면 그렇다. 교육부는 조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일부 학교에서 시민·교직 단체의 항의 방문 및 시위, 조직적 항의 전화 등이 결정 변경에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이에 대한 조치를 내놓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그 후속 조치로 등장한 것이 바로 편수조직의 부활이다.

교육부와 정치권의 국정교과서화 주장에 대해, 역사학계에서는 극우·보수 세력이 '역사전쟁'의 전략을 수정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뉴라이트 대안교과서와 교학사 교과서로 이어지는 새 교과서를 통한 접근이 쉽지 않기 때문에, 아예 극우·뉴라이트 세력의 정당성에 문제가 될 만한 역사적 내용을 배울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봉쇄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이후, 과거에는 적었던 근현대사 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반영된 '한국 근현대사' 과목에 전근대사 분량을 합쳐 '한국사'라는 과목으로 바꾼 점을 보면 그렇다. 학생들에게 근현대사를 가르치는 기회를 줄이기 위한 의도로 만든 한국사가 오히려 극우·보수 세력의 비전문가 학자가 전근대사 부분을 서술해 교과서의 기본적인 품질조차 떨어뜨리는 패착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교학사 교과서를 둘러싼 극우·보수 세력의 반응에 대해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전 한국역사연구회장)는 이렇게 반문했다. "극우·보수 세력이 지적하는 이른바 '좌파 교과서'를 10년 동안 배운 학생들의 투표율이 낮고, 20~30대의 박근혜 지지율이 낮지 않은 점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교과서 하나로 영구 집권의 기틀이 마련된다는 식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한 집착과 부당한 행동에 대해 대중이 저항하는 건 당연하다."

국정교과서 밀어붙인 박정희의 모습이

결국 극우·보수 세력의 조바심이 교육부의 '무리수'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난 1월6일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읽힌다. 그는 "우리 미래 세대가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게 하려면 사실에 근거한 균형 잡힌 교과서로 배워야 하고, 좌건 우건 어떤 편향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밝히면서 "어떤 교과서는 '불법 방북' 처벌을 탄압이라 하고, 독일 통일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편향된 인식을 갖게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교과서를 향한 그의 인식은 '국적 있는 교육'을 강조하며 10종의 한국사 교과서 대신 국정교과서 도입을 밀어붙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과 묘하게 닮아 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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