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두 개의 음표처럼 동글동글 예쁘게 살게

2014. 1. 1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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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12일 일요일 눈/맑음. 안녕, 싱글.
#91 R. Kelly 'Feelin' Single' (2012년)

[동아일보]

R 켈리

H가 더이상 싱글이 아니라니. 에드바르 뭉크의 압도적 화풍으로도 내 절망감을 그려내지는 못하리.

어제 서울 서교동 클럽 V에서 열린 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신랑신부 입장은 결혼행진곡이 아니라 록 기타 연주로 대체됐다. H가 어설프게 전기기타를 메고 다니던 학창시절부터 좋아했던 기타리스트 S가 전투기 조종사들의 우정과 경쟁, 사랑을 다룬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탑건' 사운드 트랙에 수록된 전기기타 연주곡 '탑건 앤섬'을 연주했다. 신랑신부는 클럽 2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여객기 안)에서 처음 만나 사랑하게 된 둘의 인연에 썩 어울렸던 서곡.

주례가 없는 대신 소리꾼의 판소리와 래퍼의 랩으로 된 축사가 이어졌다. 빠르게 지나가는 가사를 알아듣기는 어려웠지만 리듬을 타며 귀를 기울이니 적어도 지루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신랑과 신부의 언약이 아동용 로봇 만화의 클라이맥스 같았던 것도 나쁘지 않았다. 서약서 낭독 말미에 무대 위 두 사람이 "합체!"를 함께 외치며 팔을 엇갈려 겹친 것 말이다. 신랑이 형의 LP 레코드를 들으며 성장했다는 가수 S의 목소리가 실시간으로 울려 퍼진 것도. 축하 연주, 축사, 축가를 맡은 이들은 각자의 영역이 확실하니 만나기 힘든 조합이기도 했다.

아쉬운 점은 있다. 좌석이 몇 개 안 돼 하객 대다수가 '스탠딩'으로 예식을 지켜봐야 했다. 진지한 언약의 자리였지만 세상을 다 가진 듯 '오버 액션'한 신랑의 경거망동도 있었다. 그래도 이 유별났던 결혼식이 내게 사랑스러운 건 H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이기 때문이다. 첫날밤을 서울시내 호텔에서 보내고 노트를 쓰는 내게 어제 일은 꼭 3인칭 시점의 꿈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조용히 눈을 감는다. '노트, 네 얼굴에 써 붙여둔 이름을 바꿀 때가 온 거니?' 매일 이렇게 눈 감고 너의 새 이름에 대해 고민해봤지만. 내가 더이상 싱글이 아니라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새 노트를 꺼낼 때는 아닌 것 같아. 어차피 '싱글노트'라는 것, '싱글이 쓰는 노트', '싱글(노래 하나)을 소개하는 노트', 음악용어로 화음의 반대말인 '단음'까지 세 가지 의미를 겹친 거였잖아. 2 대 1. 다수결로 하자.

이봐, 노트. 우리, 잘 어울리는 두 개의 음표처럼 동글동글 예쁘게 살게. 이 R 켈리 노래, 정말 신나지 않아? 춤을 추자. 내 사랑하는 싱글, 싱글노트.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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