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길 위에 버려진 두 살배기의 분노.. 점점 '사회의 괴물'로

2014. 1. 6.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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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회를 위하여-학교 떠난 아이들을 품자] ①벼랑에 내몰린 아이들… 범죄소년 된 문재君 스토리

부모가 버리고 학교가 외면한 아이… 점점 범죄 늪으로

집에서 자는 어린이를 납치한 '나주 성폭행범' 고종석, 여중생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김길태, 대낮에 초등학생을 끌고 간 김수철. 아이들의 절규 속에서 추악한 욕구를 채운 '괴물'들이다. 모두 어린시절에 부모가 죽거나 버림받았고 학대당한 경험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학교를 그만둔 김수철, 중학교 중퇴인 고종석, 고교 때 떠난 김길태, 모두 누구의 돌봄도 받지 못한 채 학교 밖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성인이 돼 막노동판과 교도소를 떠돌다 결국 사회에 비수를 꽂았다. 청소년들이 사회 안전망을 벗어나 더 흉악해진 존재로 추락하기 전에 아이들을 감싸안아야 한다. 가정과 학교가 바로 서도록 온 사회가 나서야 한다.

◇괴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문재(가명·18)는 이들과 흡사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었다. 고교 진학 직후인 지난해 3월 퇴학당한 문재는 '분노조절 장애'에 가까워보였다. 사소한 일에 쉽게 흥분해 폭력을 휘둘렀다. 화를 참아야 하는 이유조차 몰랐다. 타인의 고통에는 무감각한 반사회적 성향도 보였다.

"심심하면 때렸다. 짜증나는 애 있으면 뒷산에 묶어놓고 후련해질 때까지 두들겨 팼다. 이유 없이 화가 나 더 때릴 때도 있었다." 어른들에게 걸리는 일은 없었다. 패거리는 집요하고 조직적으로 피해자 입단속을 했다.

갖가지 사고에 연루돼 학교를 들락거리던 문재는 친구에게 중상을 입힌 뒤 아예 학교에서 쫓겨났다. 오토바이 사고로 동승한 친구가 사망했고 문재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살인자'라고 비난한 옆반 아이의 얼굴을 교실 창문에 찧어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선배들이 산에 묻어버리자고 그랬는데 (내가) 그냥 때리고 끝낸 거다. 손가락질받으면 못 참는다." 하지만 문재는 죽은 친구에게 오토바이를 몰도록 강요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길에 버려진 아이

경북 경주에서 태어난 문재의 첫 기억은 버려지는 순간이었다. 보육원의 낯선 이들에게 맡겨지는 자신의 모습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고 했다. 실제 기억인지, 이후에 보육원 사람들 이야기를 토대로 상상한 장면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래도 당시 느낌만은 생생하다. "과자 사준다면서 두 살 때 나를 길에 버리고 갔다. …." 뼈에 사무친 것이 분노인지 복수심인지 그리움인지 호기심인지 문재는 혼란스러워했다.

초등학교는 경기도·인천의 보육원에서, 중학교는 친구 자취방에 얹혀살며 다녔다. 퇴학 후에는 인천에서 서울로, 경기도 시흥에서 충북 청주로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학교 안에서의 일탈은 퇴학 후 본격적인 범죄로 이어졌다. 막노동과 택배일도 했지만 주로 휴대전화 절도와 금품 갈취로 생계를 해결했다.

한때 축구선수를 꿈꿨다. 이제는 하고 싶은 일도, 되고 싶은 것도 없어졌다. 외로움을 못 견디는 문재는 친구를 몰고 다닌다. 하지만 관계가 오래가지는 못했다. 친구들도 느닷없이 잔인해지고 쉽게 배신하는 문재를 오래 견디지 못했다. 얼마 전에는 서울의 친구들에게 술을 훔쳐오라고 시켰다가 친구들이 줄줄이 경찰에 잡혀가자 본인은 청주로 몸을 뺐다.

국민일보 취재팀과 문재는 지난해 9월 12일 길거리 아이들을 돌보는 한 목사의 소개로 서울 관악구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났다. 이후 지난 12월쯤에는 연락이 두절됐다. 문재를 소개해준 목사도 그가 현재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다.

가정 폭력·부모 이혼 등 아픈 상처가 실타래처럼 얽혀

지난해 4월을 기준으로 초·중·고교를 떠난 아이들은 6만8188명이었다. 2만8000여명은 교실로 복귀했지만 나머지 4만여명은 돌아오지 않았다. 학교 다니는 아이들의 1%쯤에 해당하는 숫자다. 매일 200명(수업일수 200일 기준) 정도가 학교 울타리 밖으로 사라진 셈이다. 흩어진 아이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계 최고의 경쟁사회인 한국에서 탈락한 1%는 금세 잊혀졌다. 교사는 교실 안 아이들만으로도 벅찼고, 교육제도는 학생이 아닌 아이들을 돌볼 이유가 없다고 했다. '불량품'으로 버려진 아이들에게 미래를 꿈꿔볼 두 번째 기회는 허락되지 않았다. 국민일보는 지난해 9∼12월 학교를 다니지 않는 전국의 10대 40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일부 청소년에 대해서는 추가 대면·서면 질의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2∼3개월 추적 조사도 병행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이 왜 학교를 그만두는지, 그 과정에서 가정·학교·사회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21세기 아이들의 눈에 비친 학교는 어떤 곳이었는지에 대해 들었다. 어른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질문에 대한 답이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본보는 매주 월요일 1회씩 모두 10여회에 걸쳐 아이들

의 이야기를 싣는다.

상습적인 부단 결석·가출 학업 중단 전조신호

국민일보가 인터뷰한 '학교이탈 청소년' 40명 대부분은 3∼6가지 문제가 중첩돼 학교를 그만뒀다(표 참조). 이혼·구타 같은 가정문제는 학교로 이어지고, 다시 가출·일탈행동 같은 개인과 가정의 문제로 증폭되는 악순환 속에서 고통 받다가 학교를 그만두는 선택을 한 것이다. 학업을 전면 중단하기에 앞서 상습적인 무단결석과 가출로 부모나 교사에게 이상신호를 보내는 것도 특징이었다. 학교를 나간 아이들을 찾아내는 것은 힘들었다. 위기학생을 위한 위탁교육 기관인 위(Wee)스쿨과 대안학교 등을 방문하거나 야밤에 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을 붙잡고 인터뷰를 시도했다. 학교를 그만둔 가출청소년을 만날 확률은 신림역이나 도봉역 등 서울 지하철역 주변의 패스트푸드점과 24시간 카페에서 가장 높았다. 새벽녘 허름한 운동복에 슬리퍼를 끌고 나타난 아이들은 십중팔구 가출하고 학교를 그만둔 10대였다.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아이들=거리를 떠도는 아이들 중에는 취재팀과의 인터뷰 약속을 어기고 잠적하거나 전화기를 끄고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가 잦았다. 휴대전화 절도 등으로 먹고살았다는 가출 2년차 안모(19)군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조차 안군의 소재를 몰랐다.

인터뷰에 제대로 응한 인원은 남자 25명, 여자 15명뿐이었다. 학교를 그만둔 시기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3까지 다양했으며 학교를 안 다닌 기간은 짧게는 1개월에서 길게는 6년까지 있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 17명, 부산·대전 7명, 광주 5명, 강원 2명, 경북·경남 1명이었다. 거짓말을 꾸며내는 아이들도 많았다. 따로 살고 있다던 서울의 홍모(17)군 어머니는 아버지의 상습 구타로 가출한 지 오래됐다. 홍군 역시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가출을 반복했다. "(홍군이) 또래들 사이에서 피해자로 인식되는 것을 꺼려 거짓말을 자주 꾸며낸다." 상담교사의 귀띔이었다. ◇집→학교→다시 집으로 꼬리를 물며 커지는 상처들=인터뷰한 아이들 중 무려 3분의 1이 넘는 16명은 부모로부터 구타나 욕설, 방임 등 학대의 경험이 있었다. 술 마시고 때리는 아버지를 피해 집을 나와 학교까지 그만뒀다는 전모(17)군. 프라이팬부터 망치, 드라이버까지 아버지는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들어 그를 때렸다. 망치에 머리를 맞고 응급실에 실려간 날, 아버지는 전군에게 "의사에겐 계단에서 굴렀다고 하라"고 말했다. "술 깬 뒤에도 미안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더 괘씸해요." 전군이 아버?

熾?대해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전부였다. 40명 중 절반이 넘는 22명은 편부·편모·조손가정 출신이었다. 이유는 대부분 이혼이거나 부모 한쪽의 가출이었다. 경제적 요인이 학교를 그만둔 원인 중 하나였다고 답한 9명 가운데 5명도 부모가 모두 없거나 한쪽만 있는 가정 출신이었다. 가정폭력과 가난, 부모의 이혼 및 가출 같은 조건들이 실타래처럼 꼬인 아이의 삶은 학교를 그만두기 전부터 이미 힘겹고 복잡한 것이었다. 새아버지와 싸운 뒤 가출해 1개월 가까이 찜질방과 모텔, 길거리를 전전한 이모(17)양. "몸이 아파서 급하게 병원에 갔고 친구가 돈을 내줬다. 미안해서 집에 있는 돼지저금통에서 3000원을 꺼내 줬는데 엄마와 새아빠가 '도둑년'이라고 몰아붙여서 나왔다"고 했다. 이양 역시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의 이혼 후 아버지와 살다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 ◇고1의 문턱에 걸려 넘어지는 아이들=대학이 목표가 아닌 아이들에게 고교 진학은 결정적인 '문턱'이었다. 인터뷰한 아이들 중 절반에 가까운 19명이 고1 때 학교를 떠났다. '고1효과'라고 불러도 좋을 대규모 이탈이다. 이유는 자명해 보였다. 이 시기 대입 레이스가 시작되면서 학업 부담은 급증했다. ?

퓜ケ냅?기간이 종료돼 학교를 그만두기 용이해지는 탓도 컸다. 대입에 몰두해야 하는 고교 교사들이 '버린' 아이들은 '알아서' 학교를 떠났다. 아이들의 답변도 비슷한 그림을 보여줬다. 학교폭력 가·피해자 혹은 또래집단 갈등으로 학교를 그만둔 인원(24명)이 진로·진학 실패를 원인으로 꼽은 아이들(20명)보다 많긴 했다. 하지만 학교이탈의 가장 중요한 이유에 집중하면 다른 답이 나온다. '진로·진학 실패'를 꼽은 아이들은 17명으로 교우관계(10명)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또래갈등이 아이들의 고민거리이긴 하지만 아이들을 학교 밖으로 밀어내는 결정적 힘은 역시 '진로·진학 실패'였다. 40명 중 27명은 학교를 그만두기 전 무단결석과 가출을 반복함으로써 주변에 '구조신호'를 보낸 공통점이 있었다.

공부 포기 순간 존재감 없어져 '잉여인간' 전락

교문 '안'과 '밖'은 다른 세상이었다. 학교 밖으로 몇 발짝 걸어나갔을 뿐인데 학교이탈 청소년들은 사회의 보호막 밖으로 철저하게 밀려났다. 사회는 '학생'이 아닌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게 없었다. 방치된 아이들은 무기력한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되거나 게임을 하며 현실을 도피했다. 술·담배·오토바이로 시간을 보냈고, 훔치고 협박해 유흥비를 마련하는 잠재적 범죄자군으로 흡수되기도 했다. 검정고시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바쁜 모범생형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학교이탈 청소년 상당수는 공부를 포기한 순간 사회가 존재를 잊은 잉여인간이 됐다. 학교를 떠난 아이들 40명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이들이 학교 밖에서 맞닥뜨린 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사의 부당한 체벌로 학교를 관뒀다는 부산의 이모(19)군. 학교 실습실에 쓰레기를 무단 투기한 것으로 오해받아 교사에게 뺨을 맞은 뒤 대들다가 밉보이게 됐다. 한번 찍히니 학교생활은 괴로워졌다. 학교에만 가면 배가 아팠다. 수업시간마다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담배 피웠냐?" 생활지도교사는 변기 위에 쪼그려 앉아 있다가 나온 이군의 손가락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모욕감은 잦은 결석과 유

급으로, 결국 자퇴로 이어졌다. 고1 때였다. 처음 학교를 그만뒀을 때는 검정고시든 취업이든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열여섯의 나이로는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건 금세 깨달았다. 1주일 동안 울기만 하던 엄마는 이모네로, 사업하는 아버지는 설득을 포기하고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혼자 남은 이군은 1개월 동안 잠만 잤다. 자다자다 더 이상 못 자겠다 싶을 때는 일어나 TV를 켰다. "보지도 않았어요. 그냥 켜놓고 앉아 있어요. 뭘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멍하니." 그럴 때면 문득 학교에서 수업 받고 있을 동갑내기들 생각이 났다. "미래 걱정은 아니고요. 쟤들은 저렇게 반짝반짝 빛나는데 나만 이러고 있구나, 그런 거." 교사와의 갈등으로 고2 때 학교를 나온 부산의 이모(18)군도 자퇴 후 한동안 잠만 잤다고 했다. 잠과 은둔은 자신이 '자퇴'한 게 아니라 학교 밖으로 밀려났다는 걸 깨달은 아이들이 겪는 일종의 자퇴증후군 같은 것이었다. 또 다른 통과의례 중 하나는 범죄와 일탈이다. 학교이탈 청소년이 학교 안 아이들보다 범죄율이 높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가출이 동반된 경우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 휴대전화를 훔쳐 팔고 취객의 호주머니를 털었

다. 학교를 떠난 아이들을 찾아내 이유를 묻고 지원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고 1때 가출해 길거리 생활 2년째인 안모(18)군은 배고플 때마다 먹을 것을 훔치거나 식당에서 음식값을 치르지 않은 채 도망가는 방법으로 배를 채웠다. 유흥비가 필요하면 노상에서 꼬마들 돈을 빼앗거나 스마트폰을 훔쳤다. 그렇게 훔친 물건은 "길거리에서 만난 형들을 통해서" 현금화했다. 찜질방에서는 취객의 지갑을 노렸다. 안군도 한때 제빵을 배우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한 적도 있다. 그러나 한 달 내내 일해도 손에 쥐는 돈은 휴대전화 몇 대 훔치는 것보다 적었다. 그는 "쉽게 번 돈은 금세 없어졌다. 한 달 버티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결국 주머니가 빌 때마다 훔치는 예전의 생활로 돌아갔다.

특별취재팀=이영미 정승훈 이도경 김수현 정부경 황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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