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도우미 스마트폰, 그 치명적 유혹

입력 2014. 1. 1. 11:10 수정 2014. 1. 2.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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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4 기획] 당신의 디지털, 안녕하신가요

① 아이에게 건넨 위험한 장난감

어릴 적 할머니와 자란 27개월 난 보람이(가명)는 돌 이전부터 스마트폰을 직접 쥐고 쓴다. 아빠 전화, 엄마 전화, 할머니 전화의 잠금화면 패턴이 각각 다른데 모두 구분해서 잠금해제 뒤 쓴다. 동영상을 보다가 한편을 다 보면 다음 편을 직접 실행해서 감상한다. 엄마는 보람이가 밥을 먹거나 떼를 쓸 때 30분가량씩 스마트폰을 보여준다. 보람이에게 스마트폰은 일종의 마취제이자 보육도우미다.

5살 원철이(가명)는 스마트폰 중독으로 최근 놀이치료를 받았다. 원철이 엄마 강혜진(가명·32·서울 영등포구)씨는 3살까지 아이를 직접 키우고, 아이가 4살 무렵 직장을 구했다. 4살까지는 일상생활에 큰 문제가 없었는데, 최근 어린이집 선생님이 원철이가 친구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전화가 왔다. 집에 와서도 원철이가 점점 스마트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주지 않으면 밥을 먹지도 않고, 잠자리에서조차 스마트폰을 달라고 떼를 썼다. 엄마가 스마트폰을 뺏으면 울면서 엄마를 물고 할퀴기까지 했다. 강씨는 "일을 나가면서 자꾸 아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퇴근 뒤 아이가 원하면 스마트폰 게임을 허용했다. 단호하게 제재했어야 했다"며 후회했다.

떼쓸 때마다 쥐여준 스마트폰에…2살배기 '중독의 늪'

늘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에 영유아들이 부모와 함께 노출되면서 보육의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겨났다. 스마트폰을 '마법의 보육도우미'로 쓸 것인가 말 것인가.

"순간순간 항상 유혹을 느껴요.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바쁘고 급한 상황에서 아이를 어딘가에 집중시켜야 할 때 항상 스마트폰을 사용할까 하는 유혹을 느끼죠." 13개월 남아를 키우는 양아무개(33·서울 강남구)씨의 얘기다.

양육자의 보살핌을 많이 필요로 하는 영유아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스마트폰은 마법의 강력한 기능의 육아도우미다. 스마트폰에서 소리가 들리고 자극적인 영상이 보이면 울던 아이도 금세 울음을 멈추고 조용해진다. 그사이 부모는 빨리 집안일을 처리할 수도 있고, 잠시 화장실도 다녀올 수 있다. 자동차나 기차, 버스, 비행기 등에서도 아이들은 계속 움직이고 싶어하는데, 부모들은 스마트폰으로 아이들을 조용하게 만들고 가만히 있도록 만든다. 힘들고 지루하고 통제 불가능한 육아 상황이 스마트폰 하나면 뚝딱 해결되는 것이다.

최근 5년간 스마트폰 보급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스마트폰이 영유아의 삶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우리나라의 가구당 스마트폰 비율은 2012년 기준 63.7%로 전년도의 31.3%에서 1년 동안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스마트폰 노출 연령도 갈수록 하향화돼, 스마트폰 사용을 시작하는 평균 연령이 2.27살로 조사됐다.

부모가 바쁠 때, 아이 달랠 때효과 만점인 '마법의 육아도우미'"아이에게 좋지 않단 걸 알면서도순간순간 유혹 느껴요"최초사용 평균연령 2.3살로 '뚝'자극적 영상이 젖먹이들 현혹안주면 짜증 작동 안되면 '쾅쾅'"중독 영유아들 공격 성향 심각"

반응이 즉각적인 스마트폰은 인터넷·텔레비전과 마찬가지로 영유아에게 오랜 시간 노출되면 폐해가 심각하다. 많은 전문가들은 스마트폰에 너무 이른 나이에 노출되면 영유아의 뇌 발달이 저해되고 성장과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부모들은 스마트폰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보다는 다양한 이유를 들어 '스마트폰 육아'에 나서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2월15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의 한 키즈카페 안, 추운 날씨 때문에 실내놀이터를 찾은 부모와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아이들이 노는 공간과 앉아서 음식을 먹는 식탁이 놓인 공간으로 구성된 이 놀이터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부모와 아이들은 쉽게 목격됐다. 30개가 넘는 식탁 가운데 다섯곳 정도에서만 서로 대화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머지 식탁의 어른들은 모두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있었다. 일부 아이들은 뛰어놀고 와서 쉬거나 부모와 대화를 하기보다, 부모의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거나 유아용 게임을 했다. 소라(가명·4살)와 민준이(가명·6살)도 나란히 앉아 태블릿과 스마트폰으로 한글 따라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 소아무개(37·서울 영등포구)씨는 "1시간 반 정도 놀다 아이들이 지쳐 보여 교육용 앱을 틀어줬다. 게임이나 동영상은 못 하게 한다. 나이에 맞는 유아용 프로그램만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날 만난 부모들은 대부분 교육적 목적으로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것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강했다.

5살 아이와 6개월 신생아를 키우는 명아무개(32·서울 성북구)씨는 아예 '스마트폰 육아'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경우다. 청소를 하거나 식사 준비를 할 때, 차 타고 이동할 때, 아이에게 밥을 먹일 때 명씨는 스마트폰으로 아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보여준다. 명씨는 "다른 아이들도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는데 우리 아이만 안 보여주면 오히려 더 스마트폰을 보고 싶어할 것이다. 전자파가 걱정되지만 지나친 억제보다는 적절하게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명씨는 또 아이가 먼저 요구해서 보여주는 것보다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혼자서 두 아이를 보살펴야 하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스마트폰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부모들이 다양한 이유로 '스마트폰 육아'를 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부모들은 '스마트폰 육아'의 부작용을 여실히 체감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세계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든 아이가 부모에게 스마트폰을 달라고 떼를 쓰고 소리를 지르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심한 경우 아예 현실 세계보다는 스마트폰에만 관심 갖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거나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등 정서적 문제를 겪는 아이들이 나타나고 있다.

28개월 된 리나(가명)의 경우도 그런 예다. 리나는 유난히 엄마에 대한 애착이 심하다. 디지털 기기를 좋아하고 다지틸 기기 사용에 익숙한 아빠 조아무개(38·서울 관악구)씨는 아이를 엄마에게서 떼어낼 때 울리지 않기 위해 스마트폰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 뒤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횟수가 점점 늘었다. 조씨는 "두돌이 지났을 무렵 원하는 콘텐츠가 빨리 다운로드되지 않는다고 딸이 스마트폰을 쾅쾅 쳤다. 그런 조급함은 스마트폰 때문에 생긴 것 같아 이후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홍석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정신과 교수는 "스마트폰 운영체제는 영유아의 뇌가 주로 사용하는 직관과 이미지에 의존해 개발됐다. 이는 영유아가 스마트폰에 중독될 위험성이 가장 높은 군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부모들은 스마트폰을 보상 기제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출생 후 0~3살 동안은 아이들의 우뇌가 폭발적으로 발달하는 시기다. 우뇌는 사회·정서적 두뇌로서 정서·인지 조절과 같은 비언어적 기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이런 기능들이 발달해야만 다른 사람의 표정과 마음을 읽을 수 있고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유아기에 스마트폰 화면처럼 반복적인 자극에 오래 노출되면 우뇌 발달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육아정책연구소가 최근 서울·경기 지역 0~5살 영유아를 둔 부모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미디어에 중독된 영유아들은 대체적으로 정서·사회성 발달이 지체되고 있었다. 연구를 진행한 이정림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스마트폰에 중독된 아이들은 공감능력이 결여돼 공격적이었고 자아중심적이었다. 자신의 감정에 대한 표현방법도 미숙했고, 전반적으로 발달의 모든 영역에서 지체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부모의 잠깐 동안의 편함을 위해 또는 교육적 목적으로 준 스마트폰이 우리 아이들의 오감 발달을 저해하고 있다. 영유아 시기는 그나마 부모들이 미디어 노출에 개입하고 중재할 수 있는 시기다. 부모들이 스마트폰 육아의 위험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양선아 권오성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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