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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뚝이 인생 좌절은 없다

  • 박수호 정다운 기자
  • 입력 : 2013.12.30 09:26:40
“바다에 빠져 죽을까 해서 들렀던 곳입니다. 지금은 실패를 맛봤지만 재기하겠다고 온 사람들의 성지처럼 됐지만 말이죠.”

경남 죽도에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을 만든 전원태 회장 얘기다.

전 회장은 창업 5년 만에 공장 화재로 빚만 남았던 뼈아픈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기어이 재기에 성공했다.

부도 후 다시 기업을 꾸리겠다고 준비하는 사람의 비율은 19%(부도기업인재기협회 자료)에 불과하다. 꼭 부도가 아닐지라도 실직이나 병마 등 다양한 인생의 고통을 모두 극복하고 다시 오뚝이처럼 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를 단순히 본인 의지만의 문제로 몰아가기엔 한계가 있다. 제도, 사회 인식 등이 부족한 건 아닌지 점검해볼 시점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 중 하나가 ‘다함께 잘 사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오뚝이처럼 재기한 사람들 얘기로 매경이코노미는 한 해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패자부활 활성화 왜 안 되나

실패자 낙인 문화에 시스템도 미비

19%.

부도기업인재기협회가 조사한 ‘부도 후 기업인 생활유형’에서 재기 준비를 하는 사람 비율이다. 그나마 단순 일용, 노무직으로라도 경제활동을 이어가는 사람이 60%. 나머지 20%는 폐인, 노숙인으로 전락하는 게 현실이다.

물론 사업하다 보면 어려울 때도 있다. 창업기업 생존율은 1년 차엔 84%지만, 10년 차엔 24%만 살아남는 것으로 조사(중소기업청 자료)됐다. 문제는 한 번 넘어졌다고 해서 쉽사리 툭툭 털고 일어나지 못하는 현실에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진단한다.

배영임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인의 재기가 원활히 이뤄지기 위해서는 ‘창업-성장-위기-퇴출-재도전-회생’이라는 생태계 주기가 막힘없이 선순환돼야 하는데 ‘실패기업인’이 용기를 갖고 재도전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이 부족한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업하다 망한 사람을 사회 안전망에서 받아줘야 하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얘기다.

김대식 열린연구소장은 “인간의 잠재적 생산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저임금의 과도하게 노동 소모적인 불안정한 일자리만 있다 보니 1차 노동시장에서 한 번 떨어지면 재진입이 어렵다. 이는 중산층의 재기가 사실상 어려운 상황임을 의미한다. 이 같은 상황에 변화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사회 통념 역시 재기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이준석 클라세스튜디오 대표(전 새누리당 비대위원)는 “사회적으로 실패의 낙인(Stigma of failure)을 찍고 재도전할 기회를 박탈하는 암묵적인 통념이 재기를 더욱 어렵게 한다. 연대보증 완화 등 제도가 개선되고 있다지만 미국 실리콘밸리처럼 2.8회 정도 벤처기업이 실패 후 제자리를 잡는다는, 즉 패자부활을 응원해주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이 운영하는 죽도 연수원에서 중소기업인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이 운영하는 죽도 연수원에서 중소기업인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사업 망하면 20%는 폐인

‘자기성찰과 준비’ 재기 첫걸음


실제 재기에 성공했거나 재기를 도모하고 있는 이들 역시 의견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들 입에선 ‘실패한 개개인의 철저한 자기반성과 준비’가 더 중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가장 힘들었던 건 싸늘해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었습니다. 공장에 불이 나 사업이 쫄딱 망하고 보니 갈 데가 아무 데도 없더라고요. 그렇게 사람들을 피해 들어간 곳이 경남 통영 죽도였는데 한 2주 동안은 먹지도 말하지도 않고 텐트에서 지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화재 사고, 질시하던 주변 사람들, 채권자들 등 주변 환경 탓을 해서는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원인은 모두 나한테 있다고 생각하니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재기중소기업개발원(재기원)을 설립한 전원태 MS코프 회장의 말이다. 전 회장은 30여년 전 창업했다가 두 번의 실패로 빈털터리가 된 적도 있지만 끝내 재기해 지금은 매출 1300억원대 중견기업을 경영하고 있다.

암 선고를 받고 실의에 빠졌다가 재기에 성공한 배우 강신일 씨도 ‘자기성찰’에 더 방점을 찍었다. 그는 “연기에만 몰입하느라 몸 돌볼 새 없었는데 이제 이름 좀 알리려 하니 암 선고를 받았다. 남 탓도 처음엔 많이 했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진 몰라도 내가 아팠던 것 때문에 마음 아파했던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무슨 일이든 건강하고 유쾌하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자 세상이 달리 보였다”라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지금 강신일 씨는 간암을 극복한 후 제2의 전성기라 할 정도로 개성 넘치는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뒤늦게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서긴 했다. 정부는 지난 10월 창업자 연대보증 면제, 재창업 성공률 제고, 기업 건강진단 기반 구조개선 지원시스템 구축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중소기업 재도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여기에 더해 외국처럼 민간 차원의 재기 프로그램들을 다양하게 내놔 사회 안전망을 두껍게 가져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배영임 연구위원은 “미국은 연방파산법이 개정되면서 회생이나 파산 절차에서 제3자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반영할 수 있다는 조항이 생겼다. 이 부분이 사업화가 되면서 회생 사업이 가능해지고 민간이 주도해 협회를 만들 수 있었다. 재도전 법령이 개선되면 민간이 자발적으로 컨설팅이나 멘토링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패한 기업인 이곳에서 도움을

중소기업청·재기중소기업개발원 긴급지원

중소기업청은 실패한 중소기업인들에게 신용회복과 창업자금을 동시에 지원해주는 ‘재창업지원제도’를 지난 3월부터 시행 중이다. 중소기업인 재창업지원제도란 총 채무가 30억원 이하인 실패한 중소기업 중 사업성이 우수한 기업에 대해 채무조정과 함께 재창업자금을 지원해주는 제도다. 기존 제도에서는 실패한 벤처기업만이 신청할 수 있었으나 재창업지원제도에서는 실패한 모든 중소기업인으로 지원 대상이 확대됐다. 일반자금의 지원 기준 등급은 C+ 이상이지만 재창업지원자금은 1단계 하향 조정된 C등급 이상이면 지원이 가능하다. 이자는 전액, 원금은 최대 50%까지 감면해주고 사업성 평가를 거쳐 소요자금을 최대 30억원 한도 내(운영자금은 10억원 이내)에서 지원해준다.

민간단체인 재기중소기업개발원에서는 중소기업 경영인을 대상으로 심리치료 후 중소기업연수원에서 기술·경영연수를 거쳐 재창업자금을 지원하기도 한다. 교육과정은 총 4주. 심리학자 또는 의사의 강의를 통한 심리치료를 비롯해 전문가의 일대일 코칭, 멘토링 등을 통해 재기교육생의 잠재력 인식과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마지막 4주 차에는 비전 수립, 사업모델을 실행하는 프로그램도 병행된다. 포스코에서는 졸업생 중 일부의 창업지원금을 보조하기도 한다.

개인이라면 3년에서 최대 5년 동안 일정한 채무액을 갚으면 나머지 채무를 면제받는 개인회생제도를 활용해볼 수 있다.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회생제도는 신청자의 월소득 중 최저생계비를 뺀 후 나머지 소득을 최대 5년까지 상환하면 추후 정상적인 신용회복이 가능하다. 개인회생절차 개시 신청이 있는 경우 금지명령을 통해 시중은행부터 사금융 개인 사채까지 빚 독촉에서도 해방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외에도 미소금융재단은 미소금융 대출을 통해 자활 의지가 있는 저신용·저소득 서민층에 무담보·무보증으로 창업·사업운영자금을 대출해 경제적 재기를 지원한다. 소상공인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창업과 경영 컨설팅도 하며 채무 재조정이 필요한 경우 신용회복위원회를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매월 점포를 방문해 컨설팅 등 사후관리도 지원하고 있다. 미소금융재단에는 삼성, 현대차, LG, SK 등 대기업들과 KB국민·우리·신한·하나·기업은행 등을 비롯한 여러 금융기관들이 참여하고 있다.

[특별취재팀 : 박수호(팀장)·배준희·강승태·정다운·서은내 기자 / 사진 : 류준희·윤관식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38호(13.12.25~12.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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