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못해" 말조차 틀어막힌 청소년들 "표현의 자유 달라"

입력 2013. 12. 29. 20:50 수정 2013. 12. 30.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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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개포고서 '안녕들 대자보 복원' 회견

정문서 제지당한 학생들 안에서 구호

사회적 발언 때마다 학교 통제 심해

청소년단체, 사례 모아 인권위 진정

교육청엔 표현의 자유 보장 촉구문

"나도 안녕하지 못해!"

초록빛 철제 학교 담장에 붙어 학교 밖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학생 중 누군가 외쳤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개포고 정문 앞에서 청소년의 표현의 자유 보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리는 참이었다. 페이스북 모임 '안녕들 하십니까'와 '청소년 안녕들 하십니까'가 함께 연 자리다. 최근 이 학교 건물 외벽에 '안녕들' 대자보를 붙였다가 징계 압박을 받는 박아무개(17) 학생 등 30여명은 이날 회견에서 징계 방침 철회와 대자보 복원 등을 학교에 요구했다.

쉬는 시간을 틈타 이 학교 학생 100여명이 우르르 몰려나오려 했지만 교사들은 정문 접근을 막았다. 학생 70여명은 담장 위로 얼굴을 내밀고 "정치참여권, 표현의 자유를 적극 보장하라!"는 구호를 따라 외치거나 휘파람을 불어 환호했다. 학교는 반기지 않았다. 페이스북 '청소년 안녕들 하십니까'에서 모인 이들이 학생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려 하자 학교는 종례시간을 늦췄다. 인권단체 쪽에서 "이런 행위는 감금으로, 인권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나서야 학생들은 학교에서 나올 수 있었다.

'안녕들' 대자보 열풍에 청소년들의 참여가 잇따르고 전국 곳곳의 학교에서 대자보 무단 철거와 징계 압박 등이 이뤄지면서 청소년 기본권 침해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학생들의 대자보를 미리 불허한 학교도 있고, 대자보가 붙자 경찰에 신고한 학교도 있다.

최근의 대자보뿐 아니다. 청소년들은 지금껏 학교 안팎에서 사회적 발언을 할 때마다 통제를 받아왔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가 2003년 우리 정부에 대해 "학교가 학생을 너무 엄격하게 통제하고 정치 활동을 제한함으로써 학생들이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10년이 지나도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2004년 종교 예배를 강요하지 말라고 교육청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인 학생은 퇴학을 당한 바 있다. 2006년 대구의 한 중학교에서는 학생회장이 두발규정에 대한 학생 설문조사를 했다가 교사에게 폭언·폭행을 당했다. 10대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때는 일선 학교에서 집회 참가를 사실상 금지하는 가정통신문을 보냈고, 교육청은 장학사·교사들을 동원해 집회 현장에서 학생들을 감시했다. 2010년 경기도 성남시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한 학생이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힘을 보태겠다는 공약을 내걸자 학교 쪽이 삭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청소년단체들은 청소년을 독립적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사회 인식이 학생의 사회·정치 참여에 대한 거듭된 탄압의 주요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인권교육센터 '들'의 배경내 활동가는 "학교는 현재 우리 사회 민주의식뿐 아니라 미래 민주주의의 향방을 가르는 중요한 공간이므로, 학교에서 청소년을 질문·토론하고 자기 생각을 형성할 수 있는 존재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이번 대자보 통제에 대해선 청소년들의 반발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개포고 학생을 포함한 중·고교생 4명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등 청소년단체 5곳은 27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대자보 게시를 둘러싼 청소년 표현의 자유 침해 개선대책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냈다. 이들은 일선 학교뿐 아니라 사실상 '대자보를 금지하라'는 공문을 보낸 교육부, 공문을 학교에 전달한 시·도교육청도 인권침해에 가담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교육청 소속 '학생인권위원회'는 30일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부당 징계를 막을 긴급대책 수립을 촉구하는 권고문을 시교육청에 보낼 계획이다.

김효실 김성광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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