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강제진입 바라보는 보수언론의 답답한 속내

2013. 12. 2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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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철도노조 비판 이어가면서 '정부 변화' 촉구…파업지지 높아 '변호인' 역할 어려워

[미디어오늘 정상근 기자] 경찰이 22일 압수수색 영장도 없이 체포영장 만으로 노동조합 총연맹 사무실에 강제진입한 가운데, 이날 TV조선은 이 장면을 생중계하며 "(경찰이 건물에 진입하자) 야~이게 공권력이죠" "어두워지기 전에 속전속결로 끝냈어야 하는데…" 등의 편파보도로 물의를 일으켰다.

그런데 정작 모기업인 조선일보의 입장은 매우 조심스러워 보인다. 공권력과 노동계가 충돌할 때 대체로 공권력의 입장에서 기사를 써 온 조선일보는 23일 사설에서도 철도노조를 비판한 기존의 입장을 유지하고 이번 경찰의 강제진입에 대해서도 '정당한 법 집행'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설의 제목을 < 부실 철도 개혁 성패는 국민 지지 얻는데 달렸다 > 로 잡으면서 비판의 초점을 정부 측에도 분산시켰다.

물론 그것이 정부의 강제진압에 대해 비판한 내용은 아니다. 조선일보는 "지금 각종 민영화 괴담이 다시 횡행하는 것은 공기업 실태를 알리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개혁저항세력의 대국민 심리전에 밀린 결과"라고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마구잡이로 철도노조를 비판해오던 기존의 입장과는 사뭇 다르다.

▲ 조선일보 12월 23일자. 39면. 사설.

지난 17일 조선일보는 15일 80대 노인의 사망사고에 대해 < '할머니 승객 사망'까지 빚은 철도 파업, 이제 끝내라 > 사설에서 "이번 파업은 임금·근로조건 개선과 관계없이 정부 정책을 저지하겠다는 것이어서 불법"이라며 "국민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철도노조는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22일 사태에 대한 보도논조는 중앙일보도 비슷하다. 중앙일보 역시 '민영화 우려'를 '괴담'으로 취급하고 있지만 대통령이 빨리 직접 논란의 중심에 나올 것을 촉구했다. 중앙일보는 23일 < 대통령, 당당하게 기자들 앞에 서야 > 사설에서 "국내외로 중요한 일이 이어지는데 국민은 대통령의 생각을 직접 들을 수가 없다"며 "대통령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 중앙일보 12월 23일자. 38면. 사설.

중앙일보는 "(민영화 관련 벌어지는 현상들이) 어떤 면에서 2008년 광우병 촛불사태와 비슷하다"며 "이번에 법과 원칙이 밀리기라도 하면 내년부터는 사회적 갈등이 거리로 쏟아질 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런데도 대통령은 국민 앞에 나서질 않고 있다"며 "(중략) 이런 간접화법으로는 부족하다. 생중계 기자회견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동아일보는 이번 민주노총 강제진입에 대해 공권력의 편을 들면서도 '대화'를 촉구했다. 동아일보는 사설 < 민주노총에 첫 공권력, 그래도 노정대화는 이어 가라 > 사설에서 "민노총 사무실은 성역이 아니"라며 "불법파업에는 엄정하게 대응하되 노정 관계를 막다른 길로 몰지 않고 대화의 끈도 놓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조중동'의 이 같은 논조는 무엇일까? 우선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이유로 들 수 있다. 리서치뷰가 19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1000명 대상)의 61%가 'KTX 철도민영화 추진에 반대'했다. 정부가 굳이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니 이 문항 설계가 잘못되었다고 쳐도, 박 대통령의 지지율도 대폭 하락했다. 철도노조 파업에 '엄단'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리서치뷰에서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전 주 대비 1.4%p 빠졌지만(44.3%) 부정평가가 3%p 상승(48.3%)하면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질렀고, 한국갤럽의 여론조사도 박 대통령 지지율은 전주 대비 6%p나(54%→48%) 빠졌다. 리얼미터의 23일 발표에서도 박 대통령은 3%p의 지지율이 하락(54.8%→51.8%)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민주노총에 대한 강제진입으로 판을 더 벌려놨으니, 이들 언론들이 작금의 사태를 곱게 보기 어려운 것으로 해석된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박근혜 정부가 '민주노총 출범 이후 첫 공권력 강제진입'이라는 초강수를 뒀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경찰이 철도노조 집행부 체포에 실패했다는 점에 있다. 5천여명이나 되는 경찰 병력이 우려 속에서도 폭력적으로 민주노총에 진입했지만 결국 철도노조 집행부를 발견하지 못함으로서 이들 언론으로서도 '무리한 강제 진입'이라는 점에 별다른 이견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 조선일보 12월 23일자. 3면.

이는 조선일보 보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조선일보는 23일 1면 < 경찰, 민노총 첫 진입…'철도 지도부'는 도피 > 제하 기사에서 "경찰은 민주노총의 반발을 무릅쓰고 철도파업의 동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체포 작전을 감행했으나 실패함으로써 파업은 더욱 복잡한 국면으로 치닫게 됐다"고 보도했다. 또한 3면 < 철도파업 끝내려다…민노총과 전면전 치닫는 정부 > 기사에서도 "정작 (철도노조) 지도부는 잡지 못하고 민주노총만 자극해 판을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며 "정부는 지금까지는 철도노조를 상대로 싸움을 벌여왔다면, 이제부터는 민주노총이라는 더 큰 세력을 맞아 싸워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1면 < 노동계 '소도' 민노총 본부 18년 만에 첫 공권력 진입 > 기사에서 "경찰은 현장에서 양성윤·이상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등 138명을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끌어냈지만 체포 대상자는 한 사람도 검거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 동아일보 12월 23일자. 1면.

다만 동아일보가 1면 < "불법 관용없다" 법치 바로세우기 강공 > 기사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설립신고 반려(8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화(10월) 그리고 철도노조 파업까지 '법과 원칙'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옹호했다.

이희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철도 파업의 핵심이 민영화 부분인데 이에 대해 '불편해도 참겠다'는 운동이 벌어질 정도로 민영화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데 정부가 그 해법을 대화나 협상이 아닌 폭력적인 형태로 저질렀기 때문에 보수언론들도 그런 부분에 대해 우려를 에둘러 전달한 듯하다"며 "정부가 국정원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로 난맥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조심성이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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