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사고 나면 어쩔건가" 일선 학교-학부모들 뿔났다

2013. 12. 19.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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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화장실-샤워실 개방하라는 서울시의회 조례개정안
교육청 "지방선거만 챙기는 행태"

[동아일보]

서울시의회가 학교 운동장과 체육관을 일반인에게 개방하면 화장실 샤워실 등 기타 시설도 무조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라는 내용의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키려고 해 학교 관계자와 학부모들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7일 '서울특별시립학교 시설의 개방 및 이용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이 서울시의회 민주당 이정훈 의원 대표로 발의됐다. 운동장을 비롯한 화장실 샤워실 냉난방시설 등을 시민에게 개방하라는 게 핵심이다. 학교 시설 사용을 허가하면 정해진 사용료 외에 청소비 등의 별도 경비를 걷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개정안은 19일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와 20일 본회의 통과를 남겨 두고 있다.

학교 관계자와 학부모들은 개정안이 시행되면 학교가 일반인에게 완전히 개방돼 학생들이 성폭력 화재 도난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된다고 우려한다. 많은 학교가 화장실 샤워실을 외부인이 이용하도록 하려면 교실로 이어지는 통로도 열어야 하므로 학교 자체가 완전 개방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주말에 개방되지만 당직자도 충분치 않아 범죄 위험이 더 높아진다.

서울 A초등학교 행정실장은 "학교 건물은 다 연결돼 있어 특정 구역을 선별적으로 차단할 수 없다. 시설 파손은 물론이고 학생들 대상의 범죄 우려가 더 커진다"고 말했다.

각종 사고가 생기면 학교가 책임져야 하는 점도 문제다. 서울 B초등학교 행정실장은 "만약 사고가 발생하면 학교장, 교사, 행정실장 책임이어서 부담이 크다. 폐쇄회로(CC)TV 등 행정 지원도 함께 있어야 하는데 학교 측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이 학교 운동장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도 일어난다. 인조잔디 축구장이 있는 서울 B초등학교 어린이회의에는 최근 이런 안건까지 올라왔다. '주말에 학교에 놀러 왔더니 중앙 현관 앞에 윗옷을 벗고 짧은 팬티를 입고 돌아다니는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학부모 임진희 씨는 "학교 주변에 낯선 사람이 있어도 걱정되는데 학교 안까지 들어온다니 불안하다. 손님이 주인을 내쫓는 격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구나 개정안은 외부인들이 학교 냉난방시설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했다. 시설 사용료 외에 별도 경비 징수 금지 조항이 있어 학교는 주말 냉난방시설 사용료와 청소비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학교당 전기료는 연간 8000만∼1억2000만 원대다. 학교에서 지출하는 공공요금의 절반이 넘는다. 이마저도 학생들이 더위와 추위를 견디며 냉난방비를 아낀 금액이다. 반면 시간당 체육관 이용료는 단체당 8400원에 불과하다.

주말이 지나면 학교 운동장에는 쓰레기는 물론이고 술병 담배꽁초가 넘쳐 난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청소 일감이 급증할 것이 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에는 하루 6시간 근무하는 환경미화원 1명이 근무한다. 서울 둔촌초등학교 학부모 손희주 씨는 "월요일이 되면 학생들이 봉사활동 시간에 술병과 담배꽁초를 치운다. 냉난방비도 학생을 위해서 써야 할 돈인데 속상하다"고 말했다.

서울 C초등학교 행정실장은 "보통 조기축구회는 시의원, 구의원들과 유대관계가 두터워 제재를 가하기에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고 관리가 어렵다"고 털어놨다. 학교장 권한으로 시설 개방을 거부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어렵다는 말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시의원들이 조례 만능주의에 빠져 내년 지방선거 표심을 얻기 위해 학교와 학생, 학부모의 이익을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김예윤 인턴기자 고려대 역사교육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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