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보호막 풀려는 정부, 영리병원化는 시간문제

입력 2013. 12. 14. 06:03 수정 2013. 12. 1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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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조은정 기자]

↑ 사진=이미지비트 제공

정부가 의료법인이 자회사(자법인)를 만들어 각종 영리사업에 나설 수 있게 허용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의료법인은 진료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게 하기 위해 영리 사업을 제한해 왔으며, 부대사업도 장례식장 산후조리 매점 등 8개 분야에 한정해왔다.

그런데 13일 정부의 4차 투자활성화대책 일환으로 의료법인이 자회사를 만들어 숙박, 여행업, 의료기기 구매와 임대는 물론이고 의약품, 화장품, 건강보조식품 개발 등 각종 사업을 할 수 있게 했다.

심지어 온천, 목욕장업, 체육시설, 서점 등도 허용된다. 병원이 운영하는 사우나, 헬스클럽이 생기는 셈이다.

◈ 영리병원과는 다르다지만... 전단계로 결과는 비슷

정부에서는 자회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영리사업을 허용한 것이기 때문에 논란이 되는 '영리병원'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선을 긋고 있다.

↑ 현오석 경제부총리. 황진환 기자/자료사진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이날 브리핑에서 자회사 허용이 영리병원과 의료민영화의 수순이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자법인화가 되더라도 공공성은 지속된다"며 "의료법인의 영리화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회사를 한번 거친 것일 뿐 실제로 영리병원의 전단계라는 추측이 많다.

의료계 관계자는 "중간에 자회사를 둔 것이지만 결국 병원이 본연의 진료보다는 각종 부대사업으로 돈을 벌 수단이 많아지는 것이어서 영리병원으로 가는 것은 시간문제가 될 것이다"고 해석했다.

병원이 자회사를 통해 영리사업에 뛰어들면 의사와 환자들은 어떻게 바뀔까?

일단, 자본과 규모가 있는 대형병원들은 메디텔, 화장품 사업, 건강식품 개발 등 각종 부대사업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료원이나 현대아산병원은 출자총액제한 기업에 속해 일단 제외됐지만 언제 규제가 완화될 지 모른다. 길병원, 제일병원 등이 우선적인 혜택을 본다.

◈ 의사가 화장품 간접판매? 진료에도 영향 끼칠 듯

병원을 운영하는 모법인과 자회사를 운영하는 자법인이 분류돼 있다고 해도 결국에는 수익을 공유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의사들의 진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예를 들어 피부과 의사는 환자를 진료할 때 병원 자회사에서 만든 화장품을 더 추천하며 간접 영업을 할 수 있고, 다른 과 의사도 자회사의 의료기기나 건강보조식품 사용을 더 권할 가능성이 크다.

메디텔을 만들었는데 외국인 환자 유치 실적이 좋지 않을 때에는 내국인을 상대로 영업을 할 수도 있다.

병원이 진료와 의료시설 개발에 충실하기 보다는 이익 사업에 치중하면서 환자를 대상으로 한 각종 돈벌이 사업을 남발할 것이라는 우려이 시선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영명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정책실장은 "병원이 어떻게 하면 돈이 될까를 궁리하면서 환자를 상대로 한 무분별한 수익사업이 생겨날 것이다"며 "의료계의 전반적인 패러다임이 바뀔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 대형병원 쏠림 극심해져, 자본력 약한 동네병원 타격

↑ 사진=이미지비트 제공

또한, 자본력이 약한 중소병원이나 동네의원 등 1,2차 의료기관들이 경쟁에서 밀리면서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더욱 가중될 수 있다.

수도권 대형 병원들이 부대사업과 연관된 각종 패키지 상품이나 혜택 상품을 경쟁적으로 내놓는다면 지방의 중소병원과 의원에는 타격이 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송형곤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자본 여력이 있는 소위 재벌 병원들이 영리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선다면 1차 의료기관과 중소병원들은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다"며 양극화를 부추길 것으로 내다봤다.

무엇보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의료상업화를 부추기는 시그널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현 정부는 집권 초부터 외국인 환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등 의료계의 규제 완화와 이를 통한 산업 발달에 방점을 찍어왔다.

하지만 의료 산업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과 공공성 등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공청회 한 번 열지 않고 기습발표, 의료계 투쟁 강도 높아질 듯

특히 저수가 문제, 건강보험 비급여 등 의료기관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를 회피하려다보니 부대사업을 풀어주는 엉뚱한 방향으로 해법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송형곤 대변인은 "환자들을 적정한 가격에 양심적으로 진료해서도 수익을 낼 수 있게 수가나 건강보험 구조를 바꿀 고민을 해야지, 병원이 부대사업으로 돈을 벌라고 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며 재검토를 요구했다.

이번 정부 대책 마련 과정에서 전문가나 시민사회 집단의 의견을 전혀 구하지 않은 점도 도마에 오른다.

의료계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가 1,2개의 영리병원을 허용할 줄만 알았지 이렇게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는 패키지를 내놓을 지는 전혀 몰랐다"며 "공청회나 토론회 한 번 안하고 기습적으로 발표한 것은 그만큼 전문가 집단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원격의료 논란으로 의료계가 긴장한 가운데 이번 정부의 발표는 의료상업화 반대 움직임의 도화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는 15일 여의도에서 열리는 전국의사대회에서 2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정부 요구사항이 발표될 예정이다.

또한, 대한의사협회 대한약사협회 등 직능단체를 비롯해 보건의료산업노조, 시민단체 등이 연대해 범의료계 기구를 구성한다는 계획이어서 사회적 진통이 예상된다.aori@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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