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주교회의 "대선개입·은폐, 하느님 창조계획 어긋나"

입력 2013. 12. 6. 18:54 수정 2013. 12. 6.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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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천주교 주교회의 정평위원장, 인권사회교리 담화 발표 ... "인간의 존엄 정치적 권리 왜곡"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박근혜 대통령 사퇴 촉구 결의에 이어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정의평화위원장도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놓아 주목된다.

이용훈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은 대림절 2주째이자 사회교리 주간을 맞은 6일 담화문을 내어 최근 한국 상황에 대해 "하느님의 창조계획에 어긋나는 오늘의 상황을 더욱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무엇보다 올 한해 계속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 국가권력의 불법적 선거개입과 이에 대한 은폐축소 시도는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정치적 권리를 왜곡하고 훼손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이외에도 밀양송전탑 건설 강행,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 강행 등에 대해서도 "공권력의 과도하고 부당한 행동 역시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이용훈(왼쪽)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연합뉴스

시민의 사회적 정치적 권리에 대해 이 위원장은 "국제연합(UN)의 세계인권선언이 규정하는 사회적 정치적 권리, 가톨릭교회의 보조성 원리가 뜻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바로 시민의 자유와 이를 위한 국가권력의 한계와 제한"이라며 "정보기관과 경찰, 그리고 군대 등 국가의 권력기구를 시민적 통제 아래 두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본질인데도 국가권력이 법률과 사회적 합의로 정한 한계를 넘어선다면, 권력은 그것 자체로 불법이며 시민의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에 대한 침해일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사회 경제적 분야에 대해서도 이 위원장은 "우리의 현실은 세계경제 10위권의 경제대국임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심한 소득 불평등과 빈부격차를 보이고 있다"며 "이러한 현실은 공정한 경쟁의 부재와 부의 독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양극화와 광범위한 빈곤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재화가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정의롭고 인도적인 분배체계를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이러한 부의 독점은 가난한 이들의 존엄을 해칠 뿐만 아니라, 건강한 시장경제 자체를 위협하는 것으로 결국 사회 구성원 모두를 피해자로 만든다"고 우려했다.

이 위원장은 정규직 비정규직 차별에 대해 "같은 작업장에서 동일한 노동을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 차별받아야 하는 노동자의 현실은 사회적 통합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자신과 신앙을 달리하는 사람들, 그리고 언어와 문화가 다른 외국인들, 여러 종류의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우리 사회의 편견과 차별도 매우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이용훈 위원장은 자신이 교구장으로 있는 수원교구 주최로 국정원 대선개입 사태 이후 천주교 주교들로서는 처음으로 지난 8월 시국미사를 열 때 주례를 맡았다. 당시 이 위원장은 "언론이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국기 문란 사건에 대해 침묵과 묵인으로 일관하고, 언론의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박 대통령에 대해서도 "모든 일을 책임지고 있는 국정원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은 국정원의 잘못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근혜 대통령 사퇴 촉구에 앞장서고 있는 한국 천주교는 대림절과 성탄절을 거친 뒤 오는 2014년 1월부터 전체 주교회의 차원에서 본격적인 대응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지난달 22일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에서 개최한 박근혜 대통령 사퇴 촉구 시국미사. 사진=강성원 기자

다음은 이용훈 위원장이 6일 발표한 제32회 인권주일· 제3회 사회교리 주간 담화문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묵시 21, 3)

역사의 구체적 여정에서 인간의 존엄을 천명하는 것은 교회의 구원사적 소명이며 사회교리의 핵심입니다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의 전례는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시기를 보내고 있으며 이 기간 중에 "말씀이 사람이 되신"(요한 1,14) 강생의 신비를 묵상합니다. 특별히 한국 천주교회는 대림 2주를 인권주일과 사회교리 주간으로 정하여 인간의 존엄과 신앙인의 지상 소명에 대해 묵상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실로 인간의 존엄과 소명은 주님 강생의 신비와 맞닿아 있습니다.교회는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 끊임없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역사의 상황 안에서 인간의 존엄을 천명하는 것은 교회가 따라 걸어야 할 길( < 백주년 > 53항)이고 가톨릭 사상의 핵심이며, 사회적 가르침의 근본 원리( < 어머니요 스승 > 219항)입니다. 때문에 교회는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침해하는 모든 시도에 부단히 맞서왔고 그러한 상황을 고발해왔습니다.이런 의미에서 신앙인은 하느님의 창조계획에 어긋나는 오늘의 상황을 더욱 진지하게 성찰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올 한해 계속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 국가권력의 불법적 선거개입과 이에 대한 은폐축소 시도는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정치적 권리를 왜곡하고 훼손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밀양 송전탑 건설 강행,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 강행 등 공권력의 과도하고 부당한 행동 역시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국제연합(UN)의 세계인권선언이 규정하는 사회적 정치적 권리, 그리고 가톨릭교회의 보조성 원리가 뜻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바로 시민의 자유와 이를 위한 국가권력의 한계와 제한입니다. 특히 정보기관과 경찰, 그리고 군대 등 국가의 권력기구를 시민적 통제 아래 두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본질입니다. 국가권력이 법률과 사회적 합의로 정한 한계를 넘어선다면, 권력은 그것 자체로 불법이며 시민의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에 대한 침해일 따름입니다.둘째로, 사회 경제적 영역의 인간의 권리에 대해서도 성찰해야 합니다. 세계인권선언이 규정하고, 또한 가톨릭교회가 가르치듯이, 인간은 누구나 사회보장을 받고, 휴식과 여가를 누리며, 적절한 의료혜택을 받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기본적인 소득을 얻어 생활을 영위할 권한이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국가와 사회는 법률과 제도, 정책을 통해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적절한 사회 경제적 복리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경제 10위권의 경제대국임에도 불구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심한 소득 불평등과 빈부격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공정한 경쟁의 부재와 부의 독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양극화와 광범위한 빈곤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재화가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정의롭고 인도적인 분배체계를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부의 독점은 가난한 이들의 존엄을 해칠 뿐만 아니라, 건강한 시장경제 자체를 위협하는 것으로 결국 사회 구성원 모두를 피해자로 만듭니다.마지막으로, 차별에 대해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같은 작업장에서 동일한 노동을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 차별받아야 하는 노동자의 현실은 사회적 통합의 가장 큰 걸림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과 신앙을 달리하는 사람들, 그리고 언어와 문화가 다른 외국인들, 여러 종류의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우리 사회의 편견과 차별도 매우 심각합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형태의 차별은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왜곡할 뿐 아니라, 조화롭고 평화로운 사회건설의 걸림돌입니다.형제자매 여러분, 인간이 존엄한 것은, 성경이 강조하듯이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고 성자께서 인간으로서 인간 가운데에 사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우리 역시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동행하고 연대(마태오 25장)하면서, 우리 사회가 더욱 더 인간의 존엄성이 보호되고 증진되는 사회로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강생 신비의 참된 의미를 깊이 묵상하면서 주님 성탄대축일을 맞이해야겠습니다.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평화를 기원합니다.2013년 12월 8일 인권주일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이용훈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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