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도 큰 고통.." 신상공개된 성추행자 高2 아들 자살

입력 2013. 12. 3. 03:04 수정 2013. 12. 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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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근무 아버지가 여중생 추행.. 아청법 따라 매년 신상공개 우편물
학교-학원 갈때마다 안절부절.. "실정 알려라" 글 남기고 모진 선택

[동아일보]

박모 군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 스마트폰에 남긴 유서 중 일부. 박모 군 가족 제공

박모 군(17)은 11월 28일 늦은 밤 충남 아산시 3층짜리 신축 건물에 있는 빈 원룸으로 들어섰다. 박 군은 스마트폰을 꺼내 부모와 형, 남동생에게 남기는 5장짜리 유서를 메모장에 남겼다. 그러곤 챙겨 온 번개탄에 불을 붙였다. 박 군은 다음 날 오전 11시 30분경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의사가 돼 가족을 호강시키겠다던 고등학교 2학년 소년은 그렇게 세상을 등졌다.

○ 절망의 나락으로

"잠깐 무너지셨지만 매일 새벽부터 열심히 일하시는 거 정말 멋있고 존경스럽습니다."

박 군의 유서는 아버지 박모 씨에게 남기는 글로 시작한다. 박 군을 포함해 세 아들의 아버지인 박 씨는 '성범죄자'다. 40대 중반인 그는 지방의 한 철도역에서 일하던 2010년 5월 봉사활동을 하러 온 12세 여중생을 추행한 죄로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과 집행유예 3년, 신상정보공개 5년에 처해졌다. 여중생에게 △회의실 탁자를 닦도록 시킨 뒤 어깨를 주무르고 1, 2초간 껴안고 △오른쪽 볼에 입을 맞추고 △음료수를 건네주는 과정에서 오른손을 아래로 쓸어내리면서 학생의 왼쪽 가슴을 1회 만졌다는 혐의였다.

사건 당시 성추행 피해자였던 여중생이 생일이 지나지 않아 형법상 만 12세였기에 '만 13세 미만 강제추행죄'를 적용받아 형벌이 무거워졌다. 박 씨는 "격려 차원에서 어깨를 두드리긴 했지만 껴안거나 입을 맞추거나 가슴을 만지진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박 군은 사건 전까지만 해도 학급에서 반장을 할 만큼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하지만 당시 한창 사춘기인 중학교 2학년 나이에 '아버지가 성범죄자'라는 낙인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박 군은 2010년 12월 아버지가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자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

2011년 8월 25일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이 났다. 아버지 사건의 변론자료 준비를 도우며 무죄를 밝히겠다던 박 군에겐 절망만 남았다. 박 씨의 첫째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철도공무원이 되겠다는 꿈을 접었다. 초등학생인 셋째 아들은 "나는 불행하다"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 가해자 가족의 끝나지 않는 고통

"저희 가정이 완전히 단절되고 가족 모두 힘들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는 걸 여러분들께 알리고 싶어요. 저희 불쌍한 가족 구원해주세요. 엄마 이 글은 꼭 페이스북 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줘."

박 군의 유서는 아버지 사건으로 인한 가정의 고통을 호소하는 글로 마무리된다. 박 씨 가족의 생활은 '성범죄자 신상공개'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았다. 박 씨의 이웃들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에 따라 매년 박 씨의 신상과 사진 등의 정보가 담긴 우편물을 받기 시작했다. 아청법이 개정, 강화되면서 성범죄자가 살고 있는 건물의 번호와 이름 나이 사진 등의 정보가 담긴 우편물이 그 건물 소재지 읍면동의 모든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중고교, 읍면사무소와 동 주민자치센터, 학원, 청소년수련시설 등에 보내진다.

세 아들은 학교와 학원을 갈 때마다 어딘가에 아버지의 사진이 박힌 신상공개물이 있을까 불안에 시달렸다. 박 씨 가족은 다른 동네의 건물로 주거지를 옮겼지만 건물 주인이 "우리 건물이 성범죄자가 사는 곳으로 등록됐더라. 나가라"고 요구해 다시 이사를 해야 했다.

23년 동안 다녔던 직장에서 해고된 뒤 전국을 떠돌며 트럭 운전을 하고 있는 박 씨는 2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둘째는 얼마 전에 '아버지, 날씨가 추우니 꼭 잠바 입으세요'라고 메시지를 보낼 만큼 아버지를 생각하는 아이였다"며 울먹였다.

박 군은 지난달 24일 마지막으로 쓴 일기장에 "눈만 뜨면 우울해지고 짜증난다. 나도 모르게 허튼 생각 하게 되고 약이 생각나지만 선뜻 행하지는 못하겠어서 그냥 잠들고 만다. 어젠 거의 (자살) 직전까지 갔었던 것 같다. 너무 괴롭다"고 썼다. 박 군은 지난해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론 마음을 잡은 듯했다. 의사가 돼 가족을 호강시키겠다며 공부에 매진했다. 학생회장 선거에 나갈 만큼 학교생활도 원만했다. 하지만 가슴 속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었던 것이다.

박 군의 어머니는 "일기를 보고 아들에게 '엄마도 죽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너희들 때문에 꾹 참고 살고 있다. 너도 혼자가 아니라 엄마 아빠가 있다는 걸 명심하라'고 당부했지만 부족했던 것 같다"며 울먹였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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