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보이스, 비 보이스

2013. 12. 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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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일 일요일 맑음. 보이스, 비 보이스.
#85 Public Enemy 'Fight the Power' (1989년)

[동아일보]

제10회 레드불 비씨 원에서 우승한 한국의 홍텐(왼쪽)이 결승 무대에서 프랑스의 무니르를 압도하고 있다. 레드불 제공

세계 4대 비보이 대회로 꼽힌다는 '레드불 비씨 원' 최종 결승이 지난달 30일 오후 처음 한국(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렸다. 대회 시작 전부터 미디어 라운지에 100명쯤 되는 외신기자가 몰렸다. 외국에 온 것 같았다.

오후 7시, 본 대회 시작. "엘 니뇨!" "스톰!" 사회자의 격앙된 목소리로 호명된 심사위원들부터 한 명씩 무대에 올라 예명에 어울리는 격렬한 비보잉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심사위원들도 전현직 비보이인 거다. 지름 8m의 원형 무대는 그를 에워싼 3500명 관객의 환호에 프라이팬처럼 예열됐다.

10회를 기념해 주최 측은 게임의 법칙을 바꿨다. 지난 대회 우승자를 모두 소환했다. 8명의 역대 우승자는 53개국 2000여 명이 참가한 세계 예선을 통과한 8명의 새 도전자들과 섞여 토너먼트를 거쳐야 '왕 중 왕'이 될 수 있었다. 영화 '헝거게임: 캣칭파이어' 같은 상황이다.

참가자 중엔 미국(4명) 프랑스 일본 한국 사람(각 2명)이 많았지만, 브라질부터 콜롬비아 모로코 이탈리아 우크라이나 네덜란드까지 다양한 곳에서 날아온 이들이 도사렸다. 겉모습도 제각각이었다. 전 대회까지 유일한 복수(두 차례) 우승자인 프랑스의 릴루는 동그란 사파리 모자를 눌러쓰고 취권처럼 휘청대며 게걸음으로 무대에 올랐다. 기인 냄새가 폴폴 났다.

건들대며 서로 손짓으로 희롱하거나 독려하다 갑자기 폭발적인 도약과 춤을 터뜨리는 순간엔 객석 여기저기서도 묻어 놓은 지뢰가 폭발하듯 100dB의 환호가 터져 올랐다. 팔다리를 무서운 속도로 비틀고 손이나 머리를 축으로 빙글빙글 돌다 멋진 자세로 멈추는 화려한 동작은 불꽃놀이 같았다.

DJ가 즉석에서 만드는 배경음악도 거들었다. 트램펄린처럼 선동적인 킥(둔중한 베이스 드럼)과 채찍같이 날카로운 스네어(고음의 작은북) 소리가 분당 박자 수 115∼130으로 몰아치며 혼을 쏙 뺐다.

음악인지 체육인지 무용인지 전쟁인지 모를 150분의 시간은 결국 내게 단 한 가지 생각만 남겨 놨다. '다시 태어나면 비보이 될래.'

아제르바이잔에서 온 미모의 여기자가 '홍텐(우승을 차지한 한국인) 사랑'을 내게 고백해서는 아니다. 관객, 참가자, 심사위원까지…. 몸은 큰데 아기 고양이의 맘을 간직한 춤꾼들이 부러워져서다. 비보이가 '보이'라서일까.

'보이스, 비 앰비셔스'가 명언이라는데…. 근데 미래의 내 아들딸아, 허튼 야심에 눈먼 어른 되지 말고, 그냥, '보이스, 비 보이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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