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도 하루이틀이지 어떤 사인지 묻지 좀 마

입력 2013. 11. 30. 08:00 수정 2013. 11. 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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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연애 / 동성애 커플의 비애

▶ "애인 있어요?" '애인'이라는 말은 한국 사회에선 아직 낯선 단어입니다.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더 살갑고 대중적인 말이죠. 하지만 꼭 남자라고 여자친구만 사귀는 것도, 여자라고 남자친구만 사귀는 건 아닙니다. 남자에게도 남자친구가 있고 여자에게도 여자친구가 있을 수 있죠. 그래서 "남친, 여친 있어?"가 아니라 "애인 있어?"라고 물으려 노력합니다. 혹시라도 제가 알지 못하는 상대방의 성 정체성을 존중하고 싶어서요.

친구들에게 애인을 소개하는 자리가 생기면 이 애인을 어떻게 만났다고 설명할지 미리 생각해 두어야만 했다. 고등학교 친구 모임에서는, "회사에서 알게 된 친구예요"라고, 회사 사람들에게는 "고등학교 친구예요", 고등학교 친구와 회사 사람들을 동시에 알고 있는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영화동호회에서 알게 된 친구예요".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은, "잉? 영화동호회 활동도 하고 있었어?". 그러게나 말이다. 내가 그런 동호회를 하고 있었던가?

왜 이러고 있냐고? 왜냐면 우리는 바로 '동성커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내 일상의 많은 부분에 등장하고 있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이 "엄청 친한가 보네. 대체 둘이 어떤 친구지?" 하는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는 한다. 특히 나의 절친 고등학교 친구들이 가끔 이의를 제기할 때가 가장 당황스럽다. "어라, 너 그 친구는 누구냐? 우리보다 더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있었어?"라는 표정을 지으면 마치 죄인이라도 된 기분이다.

사실 '얘는 누구냐?'는 질문에 간단하게, "친구예요"라고 해 버리면 되는데, 사람들은 이것저것 관심이 많기 때문에 일이 커진다. 고등학교 친구라고 했는데 둘이 말씨가 다르네? 회사에서 알게 되었다고요? 그럼 동기? 어라 그럼 동기 중에 누구누구 알아요? 영화동호회요? 어머 저도 영화 완전 좋아하는데, 카페 주소 좀 알려주세요 저도 가입하게.^^

이제야 첫눈이 왔는데 이 모든 것을 설명하다 보면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어느덧 내 남자친구는 나와 같이 경상도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고향친구'면서 말씨는 전라도 말씨를 쓰는 사람, 회사 동기인데 회사일은 전혀 모르고 회사 안에도 아는 사람이 없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영화동호회 카페? 거긴 이제 더 이상 신규회원을 받지 않으며 내부적 문제로 곧 폐쇄될 거라는 무시무시한 설명을 첨부한다.

고등학교 친구라고 했는데둘이 말씨가 다르네?회사 동기? 그럼 누구 알아?영화동호회에서 만났다고?카페주소 좀 알려줘… 으악! 손잡고 다닐 수도 없다대신 살짝 어깨동무를 한다모텔에는 어떻게 가냐고?당당하게 입장하면 오히려업주들도 별 의심 없이 본다

"사실 우리 게이 커뮤니티에서 만났어요"라고 말해 버리면 더 이상의 거짓말은 필요없을 것을. 아직 벽장 안에서 지내고 있는 우리들은 '호모'가 되느니 '거짓말쟁이'가 되기로 결심한다. 서울 한복판에서 게이 커플이 결혼식을 올리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게이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더라도 아직 그것은 '특이한 사람들이 하는 일',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님비현상마냥, 게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뒤뜰에나 존재하기를 바라는 걸지도 모르겠다.

여자·여자 친구들은 가끔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는 것이 어느 정도 용인되는 분위기다. 남자·남자 친구들이 그렇게 했다가는 '저 새끼들 뭐야?'라는 싸늘한 시선들이 꽂히기 마련. 우리는 대신 어깨동무를 하고 다닌다. 그것도 남자가 여자를 감싸 안듯 하는 '감싸는 어깨동무'는 못하고 한쪽 어깨 위에 손을 살짝 '얹는'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레스토랑에서 '커플세트 메뉴'를 시킬 때는 점원에게 들리도록 "이게 확실히 싸네, 이걸로 하자"는 설명을 덧붙이고, 달달한 연애를 주제로 한 영화나 뮤지컬을 보러 갈 때는 문화평론가 빙의가 되어 도도한 표정으로 입장하기도 한다.

모텔에는 어떻게 가냐고? 따로따로 들어가는 짓은 하지 않는다. 우리가 무슨 급만남하러 온 애들인가? 우리는 '사랑'하러 온 사람들이라고! 당당하게 입장하면 오히려 업주들도 별 의심 없이 친구 관계로 본다. 혹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주인들에게는 '그래요, 우리 호모예요'라는 느끼한 눈빛으로 바라봐 준다.

여기까지는 괜찮았지만, 커플링에 관해서는 조금 슬프다. 커플링을 맞추러 갈 때는 마치 우정링을 하러 온 '사나이'들처럼 굴거나 아니면 친구 커플의 커플링을 봐주러 온 들러리처럼 행동한다. 인터넷을 동원하든 어쨌든 주문하여 커플링을 받은 기쁨도 잠시, 실제로 끼고 다닐 수가 없다. '여자친구가 없다고 했으면서 네 손가락 위 그 가락지는 무엇?'이라는 표정들을 짓기에, 커플링은 우리처럼 '벽장 안' 신세가 되고 만다.

가끔 우리는 슬프다. 게이라고 손가락질 받아서가 아니다. 남자가 어떻게 남자랑 몸을 섞냐는 비난 섞인 눈빛을 받아서도 아니다. 이제 서른이 다 된 우리는 가끔 결혼식에 불려가는데, 각자의 애인과 함께 온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이 사회의 일원이 아닌 것만 같아 슬프다. 아직도 애인이 없냐는 질문에, '응… 뭐…'라고 얼버무리는 것도 지쳤다. 내 멋진 애인님이 있는데도 내가 속한 그룹에 소개하지 못하고, 축하받지 못하는 것이 슬프다. 또 슬픈 것이 하나 있다. 혹, 이 글이 신문지면상에 나간다고 하더라도 친구들에게 '야, 내가 쓴 글 신문에 나왔어!'라고 자랑도 못할 테니까.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비밀스럽게 연애하고 있다. 한적한 거리 또는 영화관에서 손잡기, 마트에서 같이 카트 밀기, 공원 벤치에 한가로이 앉아 있기 등 평범하기 그지없지만 너무나 비밀스러운 연애가 진행되고 있다. 그 비밀스러운 아슬아슬함을 기쁘게 즐기고 있다. 우리는 기쁜(gay) 게이니까. 우리를 위해서도 또 다른 많은 후배 게이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도록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며 열심히 '엣지있는' 연애중이다.

게이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은 무관심한 듯하면서도 차츰 많은 조명을 받고 있다. 그 '작은 미동들'이 짓밟혀버리지 않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며 늘 깨어 있도록 해야겠다. 변화의 중심이 될지 관망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관심을 가지며 열심히 연애할 생각이다. 더욱 엣지있는 대한민국을 보고 싶으니까.

내일모레 서른인, 남자 좋아하는 남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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