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와의 전쟁, 고소만이 살길이었네..

2013. 11. 1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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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 '일베'와의 소송 전쟁

▶ 일베 누리꾼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일베는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지만, 자유의 수준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이제 적극적으로 일베와 소송을 벌이는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소송을 하는 분들과 소송을 당한 분들을 함께 만나봤습니다. '소송의 칼'은 어떤 위력을 발휘하고 있을까요.

각종 사회적 논란을 일으켜온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는 여전히 성업중이다. 랭키닷컴 집계 기준으로 일베는 지난달 일평균 방문자수가 피시(PC)웹에서 10만3640명에 달했다. 통신사인 <연합뉴스> 누리집의 일평균 방문자수는 같은 달 16만명이었다. 일베는 모바일웹에서 더 인기여서 일평균 방문자수가 지난달 21만7453명이었다. 모바일과 피시를 이용 매일 32만명이 일베를 이용하는 셈이다.

일베에 게시되는 각종 문제성 글들을 단순히 웃고 넘길 수 없는 이유는 이런 영향력 때문이다. 일베에 글이 게시되면 1분 만에 조회수가 수천건에 이른다. 일정한 추천수를 받아 베스트글로 선정되면 수십만명이 읽게 된다. 14일 오전 현재 일베에는 '재난을 당한 필리핀을 돕자'고 호소한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에 대한 인신공격성 글들이 게시판을 도배하고 있다. '필리핀 이주노동자가 국회에서 수억원씩 벌어간다'는 식의 음해글들이다.

이곳에 특정인에 대한 명예훼손성 글들이 올라오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자정작용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문제는 심각하다. 법의 힘을 빌려야만 이곳이 개선될 것이란 인식이 퍼지면서 일베 누리꾼을 상대로 고소를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계덕 비방하면 회원등급 올라간다'며 선동

인터넷 언론사 프레스바이플의 이계덕(27) 기자는 일베 누리꾼을 향해 '소송의 칼'을 들었다. 이 기자는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성 글들을 올리는 누리꾼에게 일베 운영자가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자 지난 7월 운영자를 상대로 법원에 '명예훼손·허위사실 게재 및 모욕 게시물 방치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50부(재판장 강형주)는 17일 이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재판부는 일베 운영자에게 이씨에 대한 명예훼손성 글에 대해 이씨의 요청이 있으면 무조건 삭제하도록 결정했다. 또 "특정인에 대하여 좌좀, 종북, 성폭행범, 똥꼬충, 운지 등으로 비방하는 경우 명예훼손 등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공지 글을 게시하도록 조정사항을 고지했다. 일베 운영자에게 운영 방침 개선을 지시한 법원의 첫 판결이었다.

이씨가 그동안 일베 누리꾼에게 입은 피해는 일반 상식을 뛰어넘는다. 그는 지난여름께부터 밤만 되면 남성의 신음소리가 담긴 전화를 받아야 했다. 일베 누리꾼이 동성애자 커뮤니티에 올린 글이 원인이었다. '폰섹스 하고 싶다'는 글을 이씨의 명의를 도용해 전화번호와 함께 남긴 것이 확인됐다.

어느 날부턴가는 이씨의 집을 찾아와 갑자기 벨을 누르거나 이씨 집 앞을 서성이는 남성들도 나타났다. 이씨는 외출할 때마다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알고봤더니 '리계덕애비다'라는 이름을 쓰는 일베 누리꾼이 모 성인사이트에 '내 노예 여성을 소개시켜줄 테니 찾아오라'며 이씨의 집 주소글을 남기고 새벽에 찾아오도록 유도하는 글을 쓴 것이 확인됐다. 결국, 이씨는 집 앞에 '일베 출입금지. 아파트 경비실에 방문 목적을 설명하지 않고 들어올 경우 주거침입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경고문을 붙였다. 같이 살던 어머니에게도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이외에도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연예인 매니저를 사칭해 이씨의 전화번호를 올려놓아 이씨가 10대 청소년들의 전화폭탄을 받게 하거나, 이씨의 신상을 도용해 미국의 성인 포르노 사이트에 가입해 '이계덕이 포르노 사이트 회원이다'는 허위비방글을 올리는 일베 누리꾼도 나타났다.

일베 문제점 기사 쓴 이계덕 기자동성애자라며 욕하는 글 올라와삭제 요청에도 운영진 묵묵부답"이계덕 비방글은 삭제 안 한다"'이계덕 괴롭히기 이벤트' 시작 밤만 되면 전화로 신음소리 내고갑자기 벨 누르고 집 앞 서성여잠 못 자며 고통받던 그는 결국운영자·누리꾼 상대로 소송 제기"피고소자 80%가 고등학생·20대"

검색 포털인 '구글'을 통해 검색된 이계덕씨 비방글 건수만 8만건에 달했다. 이씨가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라는 점을 모욕하며 그를 '영등포역 인근을 배후하는 게이 후장, 성폭력범, 종북좌빨 빨갱이' 등으로 욕하는 내용이 글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씨가 일베 누리꾼에게 집중 공격을 받는 이유는 그가 일베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기사를 여러차례 써온 때문이다. "처음에는 일베가 보수 커뮤니티인지도 몰랐어요. 화장실 몰카 인증, 애완견과 성관계하는 사진, 여자를 합법적으로 강간하는 법 등 절대 청소년이 봐서는 안 되는 글들이 자꾸 올라와서 이곳의 심각성을 고발하는 기사를 썼어요."

이씨가 일베의 표적이 되어 각종 음해성 공격을 받아도 일베 운영자는 이를 방치했다. 이씨는 지난 7월10일 운영자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에 대한 음해성 글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운영자는 묵묵부답이었다. 보다 못한 다른 일베 누리꾼이 '건의 게시판'을 통해 운영자에게 이계덕 비방글 삭제를 요청하자 운영자는 "일베는 욕해도 되고?"라고 댓글을 달아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운영자가 내 요청을 알면서도 일부러 비방글을 삭제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내가 법적 조처하겠다고 이메일을 보내자 그제야 삭제하더라고요. 그래서 운영자 상대로 소송을 했습니다." 운영자의 이러한 태도 때문에 일베 누리꾼들은 '운영자가 이계덕 비방글은 삭제 안 한다. 괴롭혀도 된다'는 취지의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이어 '이계덕 괴롭히기 이벤트'가 시작됐다.

일베 누리꾼들은 '이계덕 기자를 비방하면 회원등급 올라간다'고 선동했다. 일베는 자신이 쓴 글이 추천을 많이 받으면 회원등급이 올라가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하루에만 1만건 넘게 이씨를 비방하는 글이 일베에 게시되기도 했다. 일베 운영자는 공지사항에 '이계덕 기자가 정말 기자인지 의심스럽다. 이계덕 기자를 영업방해로 고소하겠다'며 일베 이용자들의 일탈행위를 거들었다.

이씨는 "일베 운영진을 상대로 한 법적 소송에서 지면 자살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잠을 못 잘 지경이었어요. 새벽마다 신음소리 담긴 전화가 걸려오고, 집에 혼자 계실 때가 많은 제 어머니도 불안해하시고요." 이씨는 지금 병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제재 방침 아직 못 정한 방송통신심의위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건 일탈 행위는 있게 마련이다. 일베에 올라오는 일부 글을 두고 침소봉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이씨의 생각은 다르다. "특정인을 비방하면 베스트글로 선정되는 시스템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글은 당장 삭제되거나 이용자가 정지를 당해야지요. 일베는 운영 시스템 자체가 문제입니다."

실제 일베에서는 자극적인 비방글을 쓸수록 추천을 많이 받고 회원등급이 올라간다. 소수의 일탈이 아니라 그것이 문화로 자리잡고 오히려 대접을 받는다. '누가 더 일탈을 잘하나' 경쟁을 부추기는 시스템이 일베의 작동 원리이다.

이씨는 일베 운영자 외에도 지난달까지 90여명의 일베 누리꾼을 추가 고소했다. "처음에는 사과하면 고소 철회하고 봐주기도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일베에 '좌빨(좌파의 비하 용어)들은 인정에 약해 사과하면 고소 취하해준다'는 글이 올라오더라고요. 사과만 받아서는 일베의 악성글들을 뿌리뽑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법적 책임을 지워야 합니다."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소송에 나서는 사람들은 이씨뿐만 아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씨도 최근 일베 소송에 가세했다. 박소연 동물사랑실천협회 대표도 지난 3월부터 일베 회원들 300여명을 모욕죄 등 혐의로 고소해왔다.

박 대표는 고소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처음에는 일베가 뭔지도 몰랐어요. 동물사랑실천협회 페이스북에 악성 누리꾼들이 몰려와 난장판을 만들어 놓아서 활동 자체를 방해했어요. 협회 회원들이 일베 누리꾼이 벌인 일이라는 것을 알려줘서 일베에 들어가봤더니 문제가 심각하더라고요. 동물보호운동 반대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사이버 테러를 하는 것은 범죄예요."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던 한 20대 여성은 일베의 공격으로 지난 2월 쇼핑몰을 끝내 닫아야 했다. 일베 누리꾼들 사이에선 여성에 대한 혐오가 심하다. 올해 초 일베는 이 여성의 인터넷 쇼핑몰을 공격 목표로 삼았다. 협박 전화는 물론 각종 음해성 글들을 남겨 소비자들이 이 쇼핑몰을 이용하지 못하게 했다.

"제 이름을 포털에서 검색하면 '짝퉁 판매'라는 글들이 계속 검색되게 만들었어요. 결국 지난 2월 쇼핑몰 문을 닫았어요. 한동안 밖에도 못 나갔어요. 일베 누리꾼이 제 얼굴을 알아보고 해코지라도 할까 겁이 나서 대인기피증도 생겼어요." 이 여성은 사업을 접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돌아갔다. 일베 누리꾼에 대한 고소는 지금도 계속중이다.

일베가 특정인을 목표로 삼아 공격에 들어가면 이렇게 삶이 파괴될 수준의 피해를 당하게 된다. 문제가 심각하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아직까지 일베에 뚜렷한 제재 방침은 정하지 못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통신심의기획팀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일베를 주시해서 살펴보고 있기는 하다. 사회적 위험성이 있는 글이 반복되어 올라오면 제재를 가할 수 있지만, 지난 9월까지 일베에 올라온 게시글 1200만건 중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글의 비율이 70%를 넘기지는 않고 있어 제재는 신중하게 판단하고 있다. 일베 운영자에게 문제성 글들의 삭제 요청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계속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폐쇄 결정의 주요 근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고소의 효과는 얼마나 있을까. 이계덕씨는 "(일베 운영자에 대한) 법원의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진 뒤 나에 대한 비방글이 70% 정도 줄어들기는 했다"고 말했다. 고소를 당한 일베 누리꾼 일부도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고소당한 뒤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런 글 쓰는 게 나쁜 행동인지 몰랐어요"

남아무개(38)씨는 이계덕씨를 음해하는 글을 일베에 써왔다가 고소를 당했다. 그는 뒤늦게 반성하고 있다. "이계덕씨가 동성애자라 하더라도 그와 관련해 공개 농담글을 쓰면 죄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고소당하기 이전에는 그가 상처받을 거란 생각을 못했어요."

정아무개(18)군 역시 반성하고 있다. "악의는 없었어요. 그냥 일베에서 이계덕씨에 대해 나쁘게들 말하길래 실제 그런 사람인가 보다 하고 같이 욕했어요. 그런 글을 쓰는 게 나쁜 행동인지 몰랐어요. 고소당한 뒤 하루하루 정말 피가 마르는 것 같았어요. 이계덕씨에게 제가 진심으로 사과했어요." 이씨는 정군의 사과를 받고 최근 고소를 철회했다. 정군은 이제 인터넷에 글을 함부로 남기지 않고 뉴스 검색 위주로만 이용하고 있다.

올해 6월 일베를 시작하며 글을 남기다 역시 명예훼손 고소를 당한 일베 누리꾼 이정수(가명·20)씨는 일베 운영진을 질타했다. "운영진이 문제예요. 오히려 언론의 관심을 끌려고 악성글들을 방치해온 것 같아요. 그래야 이용자가 많아지고 광고 클릭도 늘어나니까요. 일베는 자극적인 글을 써야 회원등급이 높아지는 시스템이에요. 30등급이 제일 높은데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계속 회원들이 자극적인 글을 씁니다. 운영자가 운영방식만 조금 바꾸면 문제성 글들이 많이 사라질 거예요."

일베 누리꾼 300여명의 고소 사건을 맡아 처리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피고소자 신원을 확인해 보면 고등학생이 10%, 20대가 70%, 30대 이상이 20% 정도 차지한다. 안정된 직장을 가진 사람은 드물고 앞날이 불안한 취업준비생 등이 많은 편이다. 사이버 세계에서 회원등급이 올라가는 것에 대리만족을 느끼면서 자극적인 글을 남기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겨레>는 일베 운영진에게 지난 8일 인터뷰 요청을 했다. 일베 운영진은 '질문 내용을 보내면 답변이 가능한 부분에 대해 서면 답변을 고민하겠다'고 답했다. <한겨레>는 '명예훼손 글을 방치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일베의 자정 노력이 소홀하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을 묻는 질문지를 보냈으나 일베 운영진은 12일 인터뷰 거절 의사를 밝혀왔다.

최민희 민주당 의원은 "일베 사이트 폐쇄는 옳지 않은 것 같다. 폐쇄해도 비슷한 사이트는 또 생긴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일탈적인 인터넷 문화에 젖어들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 일베를 청소년 유해매체 사이트로 지정해 관리하는 방안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은 42조의3 조항에서 '방송통신위원회가 이용자수가 많은 사이트의 운영자에게 청소년 보호 책임자를 두도록' 하고 있다. 청소년 보호 책임자는 청소년이 유해정보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업무를 해야 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올해 일베에 청소년 보호 책임자를 두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청소년 보호 책임자가 보호업무에 소홀해도 처벌 조항이 없다. 최민희 의원은 청소년 보호책임자의 업무 소홀에 대한 처벌 규정을 담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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