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가출 팸' 해방구 신림동 "범죄유혹은 많고 보살핌은 없다"

홍세희 2013. 11. 4. 05: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거리낌없이 절도에 성매매까지소년원 드나들며 '쉽게 돈버는 법'배워… 대책은 '無'

【서울=뉴시스】장민성 기자 = 지난달 28일 오후 10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유흥가. 환하게 불을 밝힌 상점마다 쿵쾅대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모텔, 노래방, 당구장, PC방이 경쟁하듯 자리 잡은 거리 위로 네온사인 간판의 '도우미 대기', '부킹 환영'과 같은 문구가 번쩍였다. 취객들은 비틀거리며 "2차!"를 외치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을 헤매기를 몇 차례. 미로처럼 얽힌 골목 사이에서 길고양이처럼 웅크린 아이들이 보였다. 가로등조차 비추지 않는 어두운 모퉁이에서 아이들의 담뱃불만 깜빡거렸다.

"우린 영업(성매매) 안 해요. 그냥 지나가세요."

김민석(15·가명)군이 차갑게 첫 마디를 뱉었다. 5명의 남자아이들과 5명의 여자아이들. 어두운 골목 틈에서 한두 명씩 모습을 드러낸 아이들은 '가출팸'(가출과 패밀리의 합성어)이었다.

인천에서 온 최보라(15·가명)양과 부천 출신인 진미현(15·가명)양을 제외하고 이들 대부분은 서울의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던 동네친구들이다.

신림역 일대는 아이들에게 일종의 '아지트'였다. 주점·노래방·PC방 등 24시간 영업을 하는 가게들이 밀집해있고 불판 닦기나 설거지 등을 할 만한 식당들도 순대골목에 모여 있다.

찜질방, 모텔, 고시텔 등 아이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숙박업소가 모여 있다는 점도 이들이 신림역 인근을 아지트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다.

현재 동작구의 고시원과 관악구 한 모텔에 방을 잡고 생활한다는 아이들은 자칭 '가출의 달인'들이었다. 초등학교 5~6학년 때 처음 집을 나왔다는 아이들의 가출횟수는 평균 10회를 훌쩍 넘겼다.

이현수(15·가명)군은 "고시원은 한 달에 60만원, 모텔 달방(한 달 치 방세를 내고 장기투숙 하는 것)은 특실이라서 한 달에 80만원이에요. 고시원은 여자애들이 친구들을 불러서 같이 지내고 달방은 남자들이 써요"라고 말했다.

여자 아이들은 순대타운에서 매일 3~4시간씩 서빙을 하고 주말에는 웨딩홀에서 안내도우미를 한다. 남자 아이들은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거나 나이트클럽에서 호객행위를 하며 각자 맡은 돈을 충당한다.

아르바이트를 꾸준히 할 수 있을 만큼 성실하지 않다고 고백하는 아이들은 결국 주민등록증 매입, 폰털이(스마트폰 절도), 차털이(주차된 차량에서 금품을 훔치는 행위), 날치기 등을 하며 용돈을 마련한다고 했다.

민석과 현수는 지난해 5월 서울 시내의 휴대전화 대리점을 통째로 털었다가 경찰에 붙잡혀 한 달 동안 소년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민석은 "주민등록증 한 장에 3만~5만원, 새삥폰(새로 개통한 스마트폰) 한 대에 30만~50만원, 차털이·날치기·부축빼기(취객을 돕는 척하면서 금품을 훔치는 행위)해서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 받으면 하룻밤에 100만원도 넘게 버는데 굳이 알바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여자 아이들도 모두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했다.

보라는 "우리끼리 돌아다니다보면 아저씨들이 꼭 말을 걸며 즉석만남을 유도 한다"며 "인터넷카페에 올라오는 '집 나온 청소년 재워준다'는 내용의 글 역시 다른 목적이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미현은 "주로 인터넷 랜덤채팅 사이트를 통해 조건(조건만남)을 한다"며 "카페에서 같이 커피를 마시던 친구가 돈이 떨어지자 PC방에 가서 채팅을 하더니 한 시간 후에 남성으로부터 5만원을 받아 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범죄에 능숙하지 않았다. 한두 명씩 소년원이나 소년심사분류원을 들락날락하며 그 안에서 수법을 배웠다고 했다.

현수는 "처음 빵(소년원)에 들어가면 형들이 물어봐요. 뭐하다가 들어왔냐고. 폰털이로 잡혔다고 하면 차털이를 알려주고 차털이 때문에 들어왔다고 하면 날치기를 알려줘요. 그렇게 하나씩 배워서 나오면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죠"라고 무심히 말했다.

식당 주인의 눈치를 보며 달아날 생각만 하느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집보다는 바깥생활이 낫다고 했다.

민석은 "'철창'같은 집구석보다 우리끼리 마음 편하게 지내는 게 모두에게 좋다"고 말했다.

◇가출 청소년 매년 최소 15만 명…정부 대책은 미흡

이같이 가정, 학교, 사회의 울타리를 벗어나 거리를 헤매는 가출 청소년은 한 해 2만 명 수준이다.

경찰청의 '2012년 실종아동·가출인 접수 현황'에 따르면 가출청소년은 ▲2009년 1만5114명 ▲2010년 1만9440명 ▲2011년 2만434명 ▲2012년 1만9421명에 이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실제 가출 청소년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수차례 가출을 반복해 부모가 신고를 포기하거나 상습적으로 집을 드나드는 청소년들은 통계에서 빠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한 해 15만~20만 명 정도가 집을 나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울타리를 벗어난 아이들은 각종 범죄환경에 그대로 노출된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1 청소년 유해환경접촉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출 청소년들이 돈을 벌기 위해 호프집·소주방(17%), 성매매업소(8%), 안마시술소(7.4%) 등 청소년유해업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3년 간 청소년보호법 위반사범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 대책은 미흡한 수준이다.

정부의 대표적 가출청소년 보호대책은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청소년쉼터' 정도다. 현재 전국 92개 쉼터에 수용 가능한 청소년은 892명. 전체 가출청소년의 10%에도 못 미친다.

쉼터마다 거리로 내몰린 아이들을 직접 찾아 나서는 아웃리치(Out reach·봉사활동)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이마저도 간식 제공, 길거리 상담, 범죄 예방 활동에 그치는 수준이다.

한 쉼터 관계자는 "제 발로 찾아오지 않는 아이들을 설득해서 쉼터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며 "가출팸을 경험한 아이들일수록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는 경향이 심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청소년 복지예산 늘려야"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모여 다닐수록 범죄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박종배 금천청소년쉼터 지도부장은 "가출팸은 그들만의 방식대로 마음껏 생활하기 때문에 범죄환경에 노출되면 그 유혹을 이겨내기 쉽지 않다"며 "집단 내 통제 및 조정을 하는 역할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홍봉선 신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 위반이고 방임이자 학대"라며 "국가는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복지 예산을 조기에 투입하는 등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복지 예산 중 청소년 관련 예산은 노인이나 장애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며 "투자의 개념으로 당장 눈앞의 결과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꾸준히 청소년 복지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nlight@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