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기업인들 '성희롱' '제2, 제3 윤창중' 수두룩

구혜영·구교형 기자 2013. 10. 18.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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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라 직원들이 말하는 '해외 추태 사례들'

지난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가 해외에서 개최한 한국상품전에서 통역을 한 여성 유학생 ㄱ씨는 잊지 못할 일을 겪었다. 그가 맡았던 기업인은 행사 도중 교육을 빌미로 ㄱ씨에게 신체 접촉을 했다. 행사 종료 후에는 "교육을 더 시켜주겠다"면서 자신이 묵고 있던 호텔 객실로 불렀다. 겁이 난 ㄱ씨는 룸메이트와 함께 객실로 갔다. 그러자 기업인은 "샤워를 하겠다"며 욕실에 들어간 뒤 알몸 상태로 몸을 내밀더니 "수건을 갖다달라"고 했다. ㄱ씨는 놀라 도망치듯 호텔을 빠져나왔다. 박근혜 대통령 방미 중 호텔 객실에서 여성 인턴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과 '닮은꼴'이다.

세계 82개국, 120개 무역관에서 일하는 코트라 직원 1114명이 해외 현지에서 상대한 국내 공무원과 기업 임직원들 중에는 '제2, 제3의 윤창중'이 수두룩했다.

▲ 호텔에서 알몸으로 "수건 좀 가져와라"식사 때 여직원에 "내 무릎에 와 앉아"투자유치단장은 "3000달러 현금 달라"

민주당 전순옥 의원은 17일 "노조에서 지난 6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직원들을 상대로 익명의 제보를 취합한 결과 다양한 피해 사례가 접수됐다"면서 이런 내용이 담긴 자료를 공개했다.

'코트라 해외 근무자의 인권침해 사례' 자료에 따르면 공무원과 기업인들은 '갑(甲)'의 지위를 이용해 성희롱을 하거나 술 시중·관광 안내 등 과도한 서비스를 요구하고 폭언이 빈번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여직원의 뺨을 때린 폭행 사례도 있었다.

"한 기업인은 다짜고짜 반말로 '술 한번 따라봐'라고 했어요. 다른 50대 후반 기업인은 '내가 돌싱(돌아온 싱글)인데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하더라고요."(여직원)

"한 지방자치단체 투자유치단장이 술자리에서 옆에 앉으라고 했어요. 등을 쓸어내리더니 허벅지에 손을 얹었어요. 술자리에 함께 있던 다른 공무원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그대로 보고만 있었죠. 참다 못해 '일어나겠다'고 했더니 '그 따위 태도를 어디서 배웠느냐'면서 호통을 치더라고요."(여직원)

해마다 코트라가 고객만족도 평가를 받는 공기업이라는 점을 악용하는 사례도 많았다. 직원들은 "내가 코트라를 잘 안다. 고객만족도 만점을 주겠다. 술 한잔 사달라"는 말을 듣는 것은 예삿일이라고 했다. 또 "술 안 사주면 고객만족도 점수 없다" "출장와서 힘들다. 좋은 데(유흥업소) 데려가달라"는 등의 요구도 많았다고 전했다.

행사 진행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달라고 해도 이를 귀찮아하며 "알아서 준비하라"고 떠넘기는 사례도 빈번했다.

한 공무원은 "사업비가 1만달러로 책정됐는데 현장에 와서 계산해보니 7000달러만 사용했다고 판단된다. 남은 3000달러를 현금으로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코트라 경영진과 친하다" "현 정부 실세와 가깝다"는 등 과시형·엄포성 발언도 많았다.

직원들은 "경영진과 정부 고위층과의 친밀도를 과시하며 무리한 요구를 할 때는 거부하기가 매우 힘들다. 심리적인 공황상태에 빠지는 경우도 흔하다"고 호소했다.

한 기업인은 세일즈 지원을 맡은 공사 직원에게 "내가 중국에 공장을 설립했다. 그 과정에서 현지 여직원을 고문했다"는 등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중소업체 사장은 코트라 현지 여직원에게 욕설을 하고, 업무를 마비시키고, 뺨을 때리기도 했다.

다른 기업인은 하루에 수차례, 새벽에도 무리한 요구를 하며 욕설을 퍼부어 견디다 못한 현지 직원이 사직한 경우도 있었다. 후임 직원 2명도 같은 이유로 사직했다. 이 기업인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본사와 외부기관에 불성실한 직원들이라는 민원을 제기하며 1년여 동안 모두 5명의 현지 직원을 상대로 괴롭힘을 계속했다고 한다.

노조 관계자는 "주로 해외 활동이 많다보니 부당한 상황이 벌어져도 즉각 대응이 어렵다. 공익을 위해 일한다는 생각으로 그동안 많이 참았지만 이제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선 것 같다"고 말했다.

전순옥 의원은 "코트라 직원들을 상대로 성희롱 사건 등 인권침해 전반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지금이라도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재발 방지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구혜영·구교형 기자 koohy@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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