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눈치보는 인권위.. 밀양 송전탑 주민·전교조 등 긴급구제 요청 잇따라 기각

박은하 기자 2013. 10. 12. 06: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책 대립 사안마다 침묵 일관

국가인권위원회가 법외노조로 몰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해 긴급구제 심의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인권위는 앞서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에서 농성 중인 주민들과 진주의료원 환자들의 긴급구제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권위는 홈페이지에 설립목적으로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에 이바지한다"고 적고 있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인권위가 정부 정책과 충돌하는 사안에 대해 정권의 눈치를 본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향신문 취재결과, 인권위는 전교조의 긴급구제 요청을 상임위원회에 상정하지 않고 일반 진정사건으로 접수해 처리하기로 지난 10일 최종 결정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인권위법상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은 긴급구제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전교조 건은 헌법소원이 제기돼 있어 일반 진정사건으로 접수해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교조가 긴급구제를 요청한 날은 지난달 26일이다. 헌법소원은 지난 2일 제기했다. 인권위의 이런 행태는 지난 3월과 8월, 지난 1일까지 올해에만 3차례에 걸쳐 고용노동부에 '전교조 법외노조화 방침을 철회할 것'을 긴급요청한 국제노동기구(ILO)의 움직임과도 비교된다.

인권위가 독립성을 잃고 주요 인권 현안에 침묵한다는 비판은 2009년 현병철 위원장 취임 이후 계속되고 있다. 노동·복지·환경 관련 정부 정책과 대립되는 사안에서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인권위는 지난 7일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의 통행 제한을 풀어달라며 '밀양 765㎸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가 낸 긴급구제 요청에 대해 "인권침해가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공사현장에 접근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로 인한 회복 불가능한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지난 4월 진주의료원 환자와 가족들이 의료원 폐쇄로 생명권이 위협받고 있다며 낸 긴급구제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44명의 퇴거 환자 중 11명이 사망했다. 2011년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크레인 농성도 '빵과 음식물 등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긴급구제 요청이 기각됐다. 현 위원장은 지난 4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인권위는 국가기관인 만큼 엄격하게 법에 근거해 움직여야 한다"며 이 같은 행보의 이유를 밝혔다.

인권위의 '눈치 보기' 원인으로 주요 의사결정자들이 구조적으로 친정부 성향 인사들로 채워진다는 점이 지목된다. 인권위의 주요 사항은 현 위원장과 상임위원 3명이 결정한다. 상임위원 3명은 청와대와 야당, 여당에서 1명씩 임명한다. 중간 심의 과정은 없다. 친정부 성향 위원이 과반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청와대가 임명한 김영혜 상임위원은 전교조 교사 명단 공개를 주도한 조전혁 전 의원의 변호를 맡은 적이 있다. 새누리당이 임명한 홍진표 상임위원은 <전교조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의 공저자다.

인권위바로세우기운동본부 명숙 활동가는 "상임위원들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인선 과정에서 '후보추천위원회'를 둬 위원들의 자질을 심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달 김영혜 위원의 임기가 만료된다. 인권위 독립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의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