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곧 가야되잖나" 노부부의 맨얼굴 신구·손숙

양승준 2013. 9. 23. 07:1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자매'서
간암 말기 남편과 보살피는 아내로
일흔 넘은 배우들이 보여준 '따뜻한 살냄새'
10월6일까지 서초동 흰물결아트센터

배우 신구와 손숙이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에서 노부부로 출연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사진=김정욱 기자 98luke@).

[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사람이 산다는 건 떠나기 위해 걸어가고 있는 것이란 말이 있다. 나도 곧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하는 한계에 와 있다.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란 작품을 하며 여러 가지를 느끼고 반성하고 그러면서 산다."(신구·78)

"3주 전 정말 사랑하는 후배의 임종을 봤다. 생과 사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이 연극 하는 게 굉장히 괴롭기도 했다. 남편을 보내는 아내를 연기하다 보니 (감정이) 울컥 올라오더라. 이 양반(신구)이 꼭 내 남편 같고."(손숙·70)

두 배우의 말처럼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는 '살 냄새' 나는 작품이다. 간암으로 정신까지 오락가락하며 대소변도 못 가리는 아버지. 밀양 출신 어머니 홍매는 남편 생각만 하면 풀이 죽는다. "참 이상하제. 사람 무시하고 구박하는 데 일등이고. 그런 양반이 간다고 하이 많이 불쌍하고 아파. 저 양반이 없다고 생각하이 아들 앞에서도 기를 못 펴겠어." 무너져 가는 아버지를 지켜보는 가족의 모습은 과장없이 그려졌다. 격정만이 감동을 낳지는 않는다. 작품은 덤덤하게 울림을 전한다.

배우의 공이 크다. 다름 아닌 신구와 손숙이다. 두 배우의 연기 인생 합만 102년. 반세기 넘게 무대에 산 배우들은 저물어가는 노부부의 맨 얼굴을 자연스럽게 들춘다. 고된 인생을 직접 살아 낸 배우들이다. 분칠도 필요 없다. 때문에 연극은 실제보다 더 쉽게 이해된다. "우리도 곧 가야 되잖나. 그래서 연극이라는 느낌이 안 든다." 올해 칠순을 맞은 손숙은 "삶의 한 자락, 일상 같다"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실 두 배우의 부부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럼에도 낯설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다. 서로를 향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 신구는 "손숙 외에 다른 여배우가 극 중 내 아내로 떠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만큼 격의 없는 사이다. "진짜 부부 같이 편하다. 분장실이 좁아서 같이 쓰는데 내 앞에서 바지도 갈아입는다. 하하하." 손숙이 "어머"라고 하면 신구가 "뭐 어때? 다 늙어선"이라고 받아친단다.

두 배우에게 판을 깔아준 이는 김광탁 작가다. 간암으로 아버지를 잃은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썼다. 무대 속 아버지는 17세에 월남해 악착같이 가족을 부양하다 병을 얻은 실향민이다.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바로 우리네 아버지다. 사실적인 이야기의 힘 덕에 지난해 '제6회 차범석 희곡상'을 받았다. 김 작가는 "우리 시대 아버지들에게 위로의 굿을 한 판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죽음을 앞둔 이는 남은 자에게 '살아 있을 때 조금 더 가까이 가지 못했다'는 연민을 주고 간다. 내 아버지가 간성혼수가 왔을 때 '굿을 해 달라'고 하시더라. 나 같은 연극쟁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가 놓칠 수 있는 평범한 삶의 결들을 작품으로 보여주는 거라는 생각에 작품을 썼다."

연출을 맡은 김철리 서울시극단 단장은 작품의 소박함에 남다른 의미를 뒀다. 김 연출은 "시대가 거대담론에 휩싸여 가고 실질적인 삶과 죽음에 대해 지나치게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어떻게 하면 살 냄새가 나게 할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젊은 배우들의 연기도 이들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연극 '푸르른 날에' 등으로 친숙한 정승길은 일류대학에 들어간 형의 그늘에 가려 늘 찬밥 신세인 둘째 아들 동하 역을 무심한 듯 속깊게 잘 표현했다. 임종을 앞둔 아버지를 무릎에 앉히고 배를 어루만지며 "이제 배 안 아프죠?"라고 묻는 장면은 애달프다. 손숙과 '안녕 마이 버터플라이' '나의 황홀한 실종기' 등을 함께 한 서은경은 푼수 며느리로 극에 웃음을 준다. 10월 6일까지 서울 서초동 흰물결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1544-1555.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한 장면(사진=신시뮤지컬컴퍼니).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한 장면(사진=김정욱 기자 98luke@).

양승준 (kranky@edaily.co.kr)

이데일리 모바일 뉴스앱 개편 기념! 다운만 해도 매일 경품 증정!▶ 스마트 경제종합방송 이데일리 TV▶ 실시간 뉴스와 속보 ' 모바일 뉴스 앱' | 모바일 주식 매매 ' MP트래블러Ⅱ'▶ 전문가를 위한 국내 최상의 금융정보단말기 ' 이데일리 마켓포인트 2.0'▶ 증권전문가방송 ' 이데일리 ON', 고객상담센터 1666-2200 | 종목진단/추천 신규오픈<ⓒ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