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곧 가야되잖나" 노부부의 맨얼굴 신구·손숙
간암 말기 남편과 보살피는 아내로
일흔 넘은 배우들이 보여준 '따뜻한 살냄새'
10월6일까지 서초동 흰물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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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사람이 산다는 건 떠나기 위해 걸어가고 있는 것이란 말이 있다. 나도 곧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하는 한계에 와 있다.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란 작품을 하며 여러 가지를 느끼고 반성하고 그러면서 산다."(신구·78)
"3주 전 정말 사랑하는 후배의 임종을 봤다. 생과 사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이 연극 하는 게 굉장히 괴롭기도 했다. 남편을 보내는 아내를 연기하다 보니 (감정이) 울컥 올라오더라. 이 양반(신구)이 꼭 내 남편 같고."(손숙·70)
두 배우의 말처럼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는 '살 냄새' 나는 작품이다. 간암으로 정신까지 오락가락하며 대소변도 못 가리는 아버지. 밀양 출신 어머니 홍매는 남편 생각만 하면 풀이 죽는다. "참 이상하제. 사람 무시하고 구박하는 데 일등이고. 그런 양반이 간다고 하이 많이 불쌍하고 아파. 저 양반이 없다고 생각하이 아들 앞에서도 기를 못 펴겠어." 무너져 가는 아버지를 지켜보는 가족의 모습은 과장없이 그려졌다. 격정만이 감동을 낳지는 않는다. 작품은 덤덤하게 울림을 전한다.
배우의 공이 크다. 다름 아닌 신구와 손숙이다. 두 배우의 연기 인생 합만 102년. 반세기 넘게 무대에 산 배우들은 저물어가는 노부부의 맨 얼굴을 자연스럽게 들춘다. 고된 인생을 직접 살아 낸 배우들이다. 분칠도 필요 없다. 때문에 연극은 실제보다 더 쉽게 이해된다. "우리도 곧 가야 되잖나. 그래서 연극이라는 느낌이 안 든다." 올해 칠순을 맞은 손숙은 "삶의 한 자락, 일상 같다"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실 두 배우의 부부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럼에도 낯설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다. 서로를 향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 신구는 "손숙 외에 다른 여배우가 극 중 내 아내로 떠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만큼 격의 없는 사이다. "진짜 부부 같이 편하다. 분장실이 좁아서 같이 쓰는데 내 앞에서 바지도 갈아입는다. 하하하." 손숙이 "어머"라고 하면 신구가 "뭐 어때? 다 늙어선"이라고 받아친단다.
두 배우에게 판을 깔아준 이는 김광탁 작가다. 간암으로 아버지를 잃은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썼다. 무대 속 아버지는 17세에 월남해 악착같이 가족을 부양하다 병을 얻은 실향민이다.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바로 우리네 아버지다. 사실적인 이야기의 힘 덕에 지난해 '제6회 차범석 희곡상'을 받았다. 김 작가는 "우리 시대 아버지들에게 위로의 굿을 한 판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죽음을 앞둔 이는 남은 자에게 '살아 있을 때 조금 더 가까이 가지 못했다'는 연민을 주고 간다. 내 아버지가 간성혼수가 왔을 때 '굿을 해 달라'고 하시더라. 나 같은 연극쟁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가 놓칠 수 있는 평범한 삶의 결들을 작품으로 보여주는 거라는 생각에 작품을 썼다."
연출을 맡은 김철리 서울시극단 단장은 작품의 소박함에 남다른 의미를 뒀다. 김 연출은 "시대가 거대담론에 휩싸여 가고 실질적인 삶과 죽음에 대해 지나치게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어떻게 하면 살 냄새가 나게 할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젊은 배우들의 연기도 이들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연극 '푸르른 날에' 등으로 친숙한 정승길은 일류대학에 들어간 형의 그늘에 가려 늘 찬밥 신세인 둘째 아들 동하 역을 무심한 듯 속깊게 잘 표현했다. 임종을 앞둔 아버지를 무릎에 앉히고 배를 어루만지며 "이제 배 안 아프죠?"라고 묻는 장면은 애달프다. 손숙과 '안녕 마이 버터플라이' '나의 황홀한 실종기' 등을 함께 한 서은경은 푼수 며느리로 극에 웃음을 준다. 10월 6일까지 서울 서초동 흰물결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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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준 (kranky@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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