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PD, "하고픈 말이 많았다"

강수진 기자 2013. 9. 9.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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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PC통신 나우누리에 올랐던 mp3 파일이 그토록 뜨겁게 발화할지 예감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3분 남짓한 힙합 노래 '브레이크 프리'는 1주일 만에 2만 건이 넘게 다운로드됐다. 곧 나온 1집은 '청소년유해매체물'이라는 빨간 딱지가 붙었음에도, 불티나게 팔렸다. 50만장 가량이 판매됐다.

한국 가요사에서 '디지털'이 만들어낸 첫 번째 스타는 그렇게 탄생했다. TV나 라디오, 신문의 도움은 애초부터 기대하지도, 또 받지도 않았던 가수였다.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래퍼 조PD(본명 조중훈·37)는 디지털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조PD의 출현 이후 가요계는 전에 없던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PC통신, 인터넷을 거쳐, 'LTE' 시대가 왔지만, 그는 여전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상은 남아있다고 여겼다. 래퍼 조PD는 음악과 삶이 더 밀접히 연계되고 교류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최근 서울 이태원의 한 식당에서 만난 조PD는 아이폰과 외장 스피커를 이용해 오랜만에 만든 자신의 음반 수록곡을 차례로 들려줬다. 음반 속 랩 만큼이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그간의 작업 과정을 세세히 이야기했다. 그는 래퍼로서 만날 때가 가장 멋스럽다.

2009년 잠정 은퇴를 선언한 뒤 조PD는 그동안 음악 제작자로서의 활동했다. 블락비, 힙합 걸그룹 이블이 조PD가 만든 팀이다.

매섭게 팬덤을 만들던 블락비와는 예상치 못했던 분쟁을 겪기도 했다. 올 초 블락비가 돌연 전속계약효력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법원은 조PD의 손을 들어줬다. 블락비는 최근 조PD와 합의에 나서, 제3의 회사로 전속권 일체를 넘겼다.

"억울하고, 속상하기도 했지요. 제작자로서 배워야 할 일이 많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트라우마요? 없지 않겠죠. 차츰 극복해야겠지요."

조PD는 지난 8개월간 스스로를 성찰할 기회가 많았다고 했다. 사람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졌다고 했다. "많은 고민과 생각, 하고픈 말이 이번 음반에 두루 실렸다"고 했다.

이번 앨범의 제목은 <인 스타덤 3.0>이다. 1999년 연이어 발표돼 가요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1집 <인스타덤>, 2집 <인 스타덤 2.0>과 궤적을 같이 한다. 조PD는 "4집은 리듬앤드블루스 성향이 강했고, 5집은 인순이 누나와 함께 부른 '친구여'의 존재감이 더 컸던 음반이었다"며 "초반기 조PD 고유의 음악으로 다가간다는 의미"라고 했다.

거친 욕설은 1집과 2집에 비해 적다. 그는 "노래 속 단어들은 다소 순화됐지만 내용은 차라리 더 깊어졌다"고 말했다.

수록곡 '썩은 xxx3'에서는 허세를 부리는 일부 음악계의 문화를 꾸짖는다. 과거 한차례 빅뱅의 지드래곤과 '디스' 전을 벌인 경험이 있는 만큼, 혹시 지드래곤을 겨냥하지 않았냐는 물음에 조PD는 "특정인을 언급하지 않았고, 노래 제작 시기 역시 최근 디스전이 벌어지기 한참 전에 만들어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드래곤의 경우 그가 자주 쓰는 단어 '스웩'(swag·멋지다고 말할 때 쓰는 흑인음악계의 은어)과 잘 부합하는 멋진 음악과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후배들이 벌이고 있는 일련의 디스전과 관련해서는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재미있게 지켜봤다"면서 "내용적으로는 좀 더 깊이 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고 했다. 또 이런 디스전을 우려하는 사회 일각에 대해서는 "힙합의 디스는 그저 재미의 요소로서, 그 걸 굳이 계몽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서는 안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앨범에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이야기가 많다. '레주메'는 자신이 지금까지 발표해본 노래 제목을 연이어 붙여 만든 노래다. 또 다른 랩곡 '달라진 건 없어'에선 데뷔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없는 자신의 정수를 이야기한다. 가수 프랭크 시내트라의 노래 제목을 그대로 본따 만든 '잇 워즈 어 베리 굿 이어'에서는 삶에서 중요했던 시기를 돌아본다.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힙합의 랩이 조화를 이루는 '메이드 인 이태원'의 경우 프로듀서 진리와 공동으로 작업해 완성했다. 그는 "비홍대 계열의 뮤지션을 찾았고, 그 대표적인 뮤지션이 진리였다"면서 "노래는 일종의 이태원 찬가로, 이태원은 요즘 대중문화계에서 창의적이거나 진보적인 사람이 대거 모여드는 의미 있는 장소로 최근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노래를 만든 작업실도, 이날 인터뷰 장소도 이태원에 있었다. 그는 "'홍대'는 한때 대중문화계를 이끌어갔지만, 최근 들어선 그 단어가 고착된 이미지를 연상시키기 시작했다고 봤다"고 덧붙였다.

인물을 따져 작업하다 보니 수록곡 마다 장르는 다르다. 일부에서는 록,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버무려 진다. 아쉽지만 인순이와 함께 한 '친구여'와 같은 협업작품은 없다.

월드스타가 된 싸이의 탄생에도 조PD가 영향을 끼쳤다. 싸이는 지난해 한 방송에 출연해 "조PD가 PC통신에 노래를 올리는 것을 보고, 나도 만들어 올렸고 그것을 계기로 가수로 발탁됐다"고 말한 바 있다.

"과거 싸이가 모히칸 스타일로 머리를 밀고 미국 래퍼 MC해머처럼 춤을 추면서 노래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죠. 지난해에 보니 뉴욕에서 MC해머 곁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더군요. 정말 비현실적인 현실이랄까요."(웃음)

그는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내 음반은 앞으로도 (가끔씩) 낼 것 같다"면서 "이번 음반 활동 이후에는 다시 제작에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조PD는 힙합을 기초로 한 걸그룹을 준비하고 있다.

<강수진 기자 kant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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