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추행 교수' 놔두고 '女학생 품행' 탓하는 대학

이후연기자 2013. 9. 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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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大 등 교수교육 없고 女직원·학생들만 주의

고려대를 비롯해 교수들의 성추행 사건을 겪은 대학들이 관련 대책으로 교수들에 대한 성교육 강화 등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애꿎은 여학생이나 여직원들에게 '품행을 단정히 하라'는 식의 주의를 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5일 대학가에 따르면 최근 잇따른 교수들의 성추행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고려대는 이후 재발방지책 마련 등 후속 조치를 약속했지만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추가 성교육 실시 등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려대 관계자는 "학기 초 신규 임용된 교수들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진행하고 매년 한 차례씩 전체 교수회의가 열릴 때 성교육을 실시한다"면서도 "(성추행) 사건 후에 따로 교수 대상으로 성교육을 진행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일부 학교 관계자들은 성추행 사건이 발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들을 소집해 '성적인 피해를 입은 사실이 있으면 즉각 말하라'고 하면서도 따로 여직원들을 모아 '조신하게 행동하고 스스로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한다'는 식의 주의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성추행 사건을 겪은 서울의 다른 명문 사립대 역시 관련 사건 이후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지 말아라'는 식의 품행 단정을 요구하는 교육을 진행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다른 사립대는 여자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남자 교수 앞에서는 품행을 조신하게 할 것'이라는 식의 주의를 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일부 대학의 대응에 대해 여대생이나 직원들은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성추문 사건이 있었던 모 대학 대학원생인 김모(여·27) 씨는 "성교육이나 주의가 필요한 것은 잠재적 피해자인 여성이 아니라 가해자"이라며 "성추행의 원인을 여성에게 돌리는 것 같아 놀라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원생 이모(여·26) 씨 역시 "여교수들이나 조교들도 학생들에게 '스스로 품행을 단정히 해야 한다'고 조언하는데 성추행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후진적 인식을 갖고 있어 당황스럽고 문제가 생겨도 하소연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관계자는 "기업에서도 성추문이 발생하면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마치 원인제공자인 양 매도하는 식의 주의를 주는 사례가 많다"며 "을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하기가 어려워 속으로만 삭이는 경우가 많은데 올바른 교육을 담당해야 할 대학교에서마저 이런 태도를 보인다면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연 기자 leewh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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