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국뽕' 논란

김태익 논설위원 2013. 8. 27.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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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서울올림픽 때 헝가리 여자 핸드볼 대표팀 선수들을 취재한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민망하다. 일요일 선수들의 한강 나들이에 동행했다. 유람선을 타고 둘러보는 한강은 아름다웠다. 강가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쭉쭉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선수들 입에서 탄성이 나오지 않았다. "서울 인상이 어떠냐." 몇 번을 물었더니 그제야 어쩔 수 없다는 듯 "원더풀!" "뷰티풀!" 해주었다. 몇 년 뒤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 갔을 때 다뉴브강을 보았다. 한강도 좋지만 고색창연한 풍광이 어우러진 다뉴브강도 좋았다.

▶한국인들이 "엽전은 안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살림살이는 엉망이고 민주주의도 앞이 안 보이던 때였다. '엽전'은 1905년 화폐 개혁 이후 가치를 잃어버린 전통 화폐를 가리킨다. 그러니 그 엽전으로 무엇이 될 리가 없다. 우리 것은 하찮고 못나 보였다. 이런 자기 비하(卑下)와 열등감을 벗어던지고 자신을 갖기 시작한 게 서울올림픽 무렵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오히려 지나친 자기도취가 문제다. 요즘 한국에 오는 외국 유명 배우·가수는 입국 기자회견장에서 싸이의 '말춤'을 춰 보이는 게 통과의례처럼 됐다고 한다. 그래야 한국인들이 좋아한다는 걸 그들도 알 것이다. 신문·방송에는 '한국 ○○에 푹 빠진 외국인' 기사가 줄을 잇는다. '한옥에 푹 빠진…' '한국 자연(올레길)에 푹 빠진…' '다산·퇴계에 푹 빠진…' 그중에는 장아찌에 빠졌다는 외국인도 있다.

▶바비인형 같은 외모로 '인형녀'라는 별명을 가진 미국인 다코타 로즈가 작년 한국에 왔다. 국내 화장품 회사 판촉을 위해서였다. 한 팬이 그의 트위터에 '김치 좋아하느냐'는 메시지를 보내자 다코타 로즈는 짧게 '싫다'고 대답했다. 네티즌들은 '건방지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인터넷 매체는 '외모는 예쁘지만 인성은 글쎄'라는 기사를 올렸다.

▶인터넷에서 '국뽕'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국뽕'은 '국가'와 '히로뽕'의 합성어다. 국가와 민족에 대해 과도한 자긍심을 드러내는 사람을 조롱하는 속어다. 이에 반발해 '국까'란 말도 생겨났다. '국가'와 '까다'를 합친 말로 악의적으로 국가와 민족을 깎아내리는 걸 가리킨다. 진짜 자신 있는 사람은 자기 것만 '최고' '최대' '최초'라고 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줄 모르면 반성도 할 수 없다. 내 것 좋은 줄 알면 남의 것에 담긴 지혜와 아름다움도 볼 줄 아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그래야 남의 것에서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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