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크에 주검 싣고 손님을 태웠다

입력 2013. 8. 18. 14:20 수정 2013. 8. 1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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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표창원의 죄와벌

<27> 공포의 '살인 택시'

"학생이세요 직장인이세요?"직장인이란 말에 현금·카드 뺏고성폭행 뒤 트렁크에 감금했다이틀 뒤 새벽 주검 유기했지만CCTV를 피해 가지 못했다2004년, 2009년 살인사건과2010년 특수강도 사건도안씨의 범행임이 밝혀졌지만법원은 사형 판결이 과하다며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010년 3월26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그동안 초긴장 상태에서 '인턴사원' 역할을 해내느라 몸과 마음이 지쳐 있던 송아무개(여·당시 24살)씨는 오랜만에 친구 생일파티에 참석했다. 허물없는 친구들과 지난 얘기를 나누며 스트레스를 푼 송씨는 밤 11시께 즐거운 여운을 안고 택시에 올랐다. 행선지를 말하고 뒷자리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파묻자 택시 기사가 질문을 던졌다. "손님, 실례지만 학생이세요 직장인이세요?" 송씨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직장인이요"라고 말한 뒤 "최근에 인턴사원으로 취직했어요"라고 덧붙였다. 기사는 '인턴사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 않았다. 택시 기사의 이상한 질문에 별 의미를 두지 않은 송씨는 눈을 감았다.

손발 결박하고 얼굴을 청테이프로 휘감아

깜빡 잠이 들었다가 좋지 않은 느낌에 눈을 떴다. 택시는 어둡고 낯선 골목길에 세워져 있었다. 송씨는 왜 엉뚱한 곳으로 왔냐고 항의했다. 기사는 말없이 운전석에서 내리더니 뒷좌석 문을 열고 송씨 옆으로 온 뒤 문을 닫아버렸다. 기사의 손에는 날카로운 흉기와 노끈, 그리고 두툼한 청테이프가 들려 있었다. 기사는 송씨에게서 현금 7000원과 신용카드를 뺏고 카드 비밀번호를 물은 뒤 송씨를 성폭행했다. "학생이냐 직장인이냐"를 물었던 이유였다. 돈 없는 학생일 경우 범행하지 않고 보내주지만, 돈 버는 직장인 여성일 경우 현금과 카드를 노리고 범행을 하겠다는 의미였다. 택시 기사가 던진 질문에 그런 무서운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손님은 없다. 택시 기사가 '직장인'이라는 말 한마디에 갑자기 강도 성폭행범으로 돌변한 것이다.

택시 기사는 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송씨의 두 손과 발을 노끈으로 강하고 단단하게 결박했다. 그 뒤엔 청테이프로 입과 코를 포함한 얼굴 전체를 8차례나 휘감았다. 노끈이 손과 발을 조여와 너무 아팠지만, 코와 입이 막혀 숨을 쉬지 못하는 고통에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택시 기사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고통에 몸을 떨기만 하는 송씨를 끌어내 트렁크에 넣고 감금했다. 새벽 2시30분께였다. 이후 택시 기사는 1시간30분 동안 결박된 채 코와 입이 막힌 송씨를 트렁크에 싣고 거리를 운행하며 3명의 손님을 태우고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영업'을 했다. 새벽 4시, 거리에 행인이나 차량이 없어지자 택시 기사는 으슥한 곳에 위치한 현금 자동인출기(ATM)를 찾았다. 피해자 송씨가 알려준 비밀번호가 잘못되었는지 '비밀번호 오류' 메시지만 뜨고 돈이 인출되지 않았다. 피해자를 추궁해 다시 정확한 비밀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택시로 돌아와 트렁크를 연 기사는 피해자 송씨의 입에서 테이프를 떼어냈다. 그의 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고, 아무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몸을 흔들어도 마찬가지였다. 기도가 막혀 숨을 쉬지 못해 '질식'으로 사망한 것이다.

택시 기사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트렁크 문을 다시 닫고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 다음날인 3월27일 정오쯤 부스스 일어난 그는 트렁크에 주검이 실려 있는 택시를 몰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주검을 트렁크에 실은 채' 오후 2시부터 밤 11시까지 여러 손님을 실어나르며 청주시 이곳저곳에서 영업을 한 뒤 검문이나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피해 작은 길을 골라 돌고 돌며 대전으로 갔다. 3월28일 새벽 1시 반께, 대전시 대덕구 소재 산업단지의 으슥한 골목길에 주차되어 있는 대형 트럭과 벽 사이로 피해자 송씨의 주검을 밀어넣었다. 사방에 아무도 없는지를 여러 차례 확인한 뒤였다. 그는 건너편 전봇대 위에 매달린 작은 시시티브이 카메라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 '작은 실수' 하나가 수년에 걸친 그의 연쇄살인 행각에 종지부를 찍게 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연쇄살인범의 의문스러운 '5년 공백'

'공포의 살인택시' 기사가 주검 유기 장소로 선택한 대전 대덕산업단지를 관할하는 대덕경찰서의 당시 수사과장은 젊은 간부 후보 출신 박찬우 경정이었다. 주검 발견 신고를 접하자마자 현장보존과 과학수사반 투입을 통한 철저한 감식을 실시한 수사진은 현장 인근 시시티브이 분석을 통해 주검을 유기하는 남자와 택시의 희미한 뒷모습을 포착해 냈다. 정확한 번호는 식별할 수 없었다. 청주 지역 회사 택시라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주검과 현장에서 수거한 증거 및 시시티브이 영상을 모두 국과수에 보낸 대덕경찰서는 대전지방경찰청과 경찰청에 사건 발생 보고를 한 뒤 충북지방경찰청 및 관할 경찰서들에 공조수사 요청을 했다. '검거의 공'을 독점하지 않고, 관련 경찰기관들이 힘을 합쳐 사건을 해결하자는 모범적인 방식이었다. 국과수 영상분석실에서 정확한 택시 번호를 회신받은 수사진은 피의자 안아무개(당시 41살)씨를 그의 거주지에서 체포했다. 지문조회를 통해 피해자 송씨의 신원이 확인된 것과 청주 상당경찰서가 실종 신고된 송씨의 인적사항을 통보해 온 것은 거의 동시였다.

피의자 안씨에 대한 전과조회를 실시한 경찰은 그가 2000년 성폭행 미수로 검거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던 사실을 확인했다. 청주시 상당구에서 택시 운전을 하던 중 손님이었던 19살 여성 피해자를 흉기로 위협하다 검거되었던 것이다. 박찬우 경정은 보통 사건이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지방경찰청에 요청해 범죄분석관(프로파일러)을 투입해 심층 분석에 들어가는 한편, 청주 상당경찰서 및 충북·충남지방경찰청 등 인접 경찰관서와 협력해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는 여성 실종 및 살인 사건 파악에 들어갔다. 곧 안씨가 출소한 지 1년 정도 지난 2004년 10월 충남 연기군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피해자 전아무개(당시 23살)씨 성폭행 살인사건과 유사성이 발견되었다. 프로파일링 결과도 피해자 특성과 범행 수법, 주검에 난 상처 특성, 주검 유기 방법 등에서 '본질적인 유사성'이 나왔다. 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어진 피의자 안씨에 대한 행적수사 결과 전씨 피살사건 발생 시기에 충남 연기군의 택시회사에서 기사로 일했고, 사건 직후 퇴사한 뒤 대리운전 기사 및 업체와 단체들의 '셔틀버스' 기사로 일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국과수에 확인한 결과 당시 연기군 사건 피해자 전씨 몸에서 범인의 정액이 검출되었고 그 디엔에이(DNA) 분석 결과가 보관되어 있었다. 그것은 2010년 피해자 송씨 몸에서 나온 범인의 디엔에이, 즉 안씨의 디엔에이와 모두 일치했다. 안씨가 보통 범죄자가 아닌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곧이어 안씨의 행적과 여성 피살 미제사건 발생 지역을 비교분석하던 경찰은 2009년 9월 청주시 무심천 하천가에서 발견된 여성 김아무개(당시 41살)씨 사건 역시 그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처음에 완강하게 범행을 부인하다가 시시티브이와 디엔에이 등 '결정적 증거'가 제시되자 김씨 살인 사건을 시인했다. 드디어 그가 세 건의 살인을 저지른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박찬우 과장과 수사진은 안씨가 특수강간 혐의로 3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았던 2004년 10월 충남 연기군에서 성폭행 강도 살인을 저지른 뒤, 5년 만인 2009년 9월에 청주 무심천 살인사건을 저지르고 다시 6개월 뒤인 2010년 3월에 송씨 성폭행 강도 살인을 저지른 사실에 주목했다. 2004년 10월에서 2009년 9월 사이 '5년간의 공백'이 연쇄살인범의 '심리적 냉각기'(cooling-off period)로는 너무 길다는 분석이었다. 수사진은 추가분석을 통해 2010년 1월20일에 청주에서 택시 승객 이아무개(여·당시 33살)씨가 택시 기사에게서 흉기로 위협받고 현금을 강탈당했다고 신고한 사건을 찾아내 그의 범행임을 밝혀냈다. 1건의 특수강도 혐의가 추가된 것이다. 하지만 범행 공백기 5년간 그의 소행으로 보기에 충분한 살인 미제사건은 발견되지 않았고, 주검이 발견되지 않은 '실종'의 경우 자백 없이 입건할 수는 없었다. 그는 결코 경찰이 증거를 확보한 뒤 추궁하는 사건 이외에는 스스로 자백하지 않았다.

행형성적 좋으면 60대에 출소할 수도

검찰의 추가수사에서도 그의 추가범행은 확인되지 않았다. 피해자 송씨의 아버지(당시 56살)를 포함한 피해 유족들은 고통과 슬픔, 아픔과 분노로 절규했다. 이제 갓 인턴사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던 딸을 잃은 송씨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안씨에 대한 사형집행으로 정의를 구현해 달라"고 호소했다. 안씨는 경찰과 검찰의 수사, 그리고 법정에서 줄곧 사죄와 참회의 모습을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살해할 고의는 없었다. 모두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고다"라고 주장하며 선처를 호소했다. 2010년 10월28일 대전지방법원 형사합의 11부(재판장 심규홍)는 피해 유가족들의 바람대로 안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살인의 고의를 부인하고, 구체적인 정황이나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진술을 번복하는 등 진지한 참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일부 유족이 피고인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피해자들과 그 유족들이 겪었거나 겪고 있을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정도, 대중 교통수단인 택시를 이용해 잔인한 범행을 저질러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과 경악을 준 점 등으로 볼 때 피고인을 영원히 우리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극형의 선고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고개 숙이며 속죄의 뜻을 나타내던 안씨는 "형량이 너무 무겁다"며 즉각 항소를 제기했다. 그를 변호하던 국선변호인은 변호를 포기하고 사임했다.

항소심 재판부의 입장은 달랐다. "중학교만 졸업하고 어린 나이부터 화학약품 냄새와 유독가스를 맡으며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을 하는 등 고생만 하고 자란 뒤, 어렵게 배운 운전으로 대리기사와 택시 기사 등을 하며 궁핍하게 살아오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저지른 범행"이라며 눈물을 흘리고 '결코 살해할 의도가 없었다'며 호소하는 안씨에게 동정심을 느낀 것이다. 2011년 3월15일 대전고등법원 제1형사부는 원심의 '사형' 판결이 너무 과하다며 이를 파기하고, '무기징역과 20년간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선고하는 '감형'을 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국민의 법감정을 고려하면 원심과 같이 피고를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시키는 중형에 처해야 한다…그러나 피해자 송씨를 살해한 범행은 우발적인 것으로 보이고 또 다른 두명의 피해자에 대해서는 고의는 인정되나 미필적 고의에 의한 범행으로 보인다…피고인이…죄를 뉘우치고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감형 이유를 설명했다.

대한민국은 1997년 12월30일 이후 10년 이상 사형집행을 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제도 폐지 국가'로 분류된다. 형법에는 여전히 법정최고형으로 '사형'이 존재한다. 사형제도 폐지의 대안으로는 '감형 및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거론된다. 공식적으로 사형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현재 우리 형법의 '사형'은 실제로는 여타 선진국의 '감형 및 가석방 없는 종신형'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무기징역'은 엄연히 감형이 가능한 형벌로 40대 초반이라는 안씨의 나이로 볼 때 행형 성적이 좋을 경우 활동력이 충분한 60대에 출소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재판부가 '사형'제도 자체에 반대하기 때문에 '무기징역' 형을 선고한다면 모를까 법정 최고형으로서 '사형'의 존재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피고인이 '반성'한다는 이유만으로 연쇄살인범에 대해 감형을 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항소심 결정에 피해 유가족들이 분노의 오열을 터뜨리는 이유다.

이 사건의 또다른 피해자들은 바로 대다수의 선량한 택시 기사들이다. 공연히 '잠재적인 성폭행 강도범'이라는 의심을 받았다. 그동안 정부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과 '교통안전법' 개정 등을 통해 범죄 경력자의 택시 기사 취업을 제한하고 불법 도급 택시 운행 근절책을 마련하고 디지털운행기록계 장착을 의무화하는 등 대책 마련에 노력했다. 경찰과 자치단체가 협력해 택시 기사의 자격과 활동을 엄격히 관리하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 유럽에 비한다면 '시민의 발' 택시의 공적 신뢰를 높이고 범죄 발생 가능성을 줄이는 대책으로는 미흡하다. 운전석과 승객석을 투명 아크릴 칸막이로 분리해 아예 접촉 자체를 차단하는 택시 설계의 도입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택시 제도 운영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통해 기사들에게는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고 승객에게는 안전과 편의가 보장될 때 택시 기사에 의한 범죄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평범한 상식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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