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 굴욕 3종 세트, 꼭 필요한 거 맞나?

정은혜 기자 2013. 8. 16.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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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현 PD "출산 시 의료 개입 최소화해야"

【베이비뉴스 정은혜 기자】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컨퍼런스룸에서 베이비뉴스가 주최하고 세계전람, 보솜이, 한국베이비플래너협회가 후원한 맘스클래스에서 신정현 PD가 '자연주의 출산이야기'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신정현 PD는 교양 및 다큐멘터리를 15년간 취재·제작해 온 베테랑 PD로 최근 '자연주의 출산 보고서'(마더북스)를 집필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출산한 기억을 떠올리면 수치스러움이 먼저 밀려온다는 이지연(가명·30) 씨. 출산을 앞두고 병원에 입원한 이 씨는 담당 주치의 외에 지나가던 간호사, 레지던트들도 잠시 들렸다 자신의 질 안에 손가락을 넣어 자궁문이 얼마나 열렸는지 확인하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이 상황을 당연하단 듯이 받아들이는 다른 여성들을 보며 혼자 유난떠는 건가 싶어 간호사에게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혔다.

출산을 앞두고 병원에 입원하면 이 씨처럼 일명 '산모 굴욕 3종 세트'로 불리는 관장, 제모, 내진을 하게 된다. 이외에도 태동줄을 달고, 혹시 모를 수술을 위해 금식을 하고, 침대에서 내려오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누워 진통을 겪는 등 출산과정은 불편하고 두렵기 짝이 없다.

이러한 병원 시스템 중심의 획일화된 출산 문화에 경종을 울리고자 신정현 PD는 지난해 6월 24일 SBS 스페셜 다큐멘터리 '아기, 어떻게 낳을까 - 자연주의 출산이야기'를 연출·기획했고, 3개월간 취재 과정을 엮어 '자연주의 출산 보고서'(SBS 스페셜 제작팀·신정현 저, 마더북스)를 최근 출간했다.

신 PD는 16일 오후 베이비뉴스(대표 최규삼)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남문) 컨퍼런스룸 401호에서 진행한 제66회 맘스클래스에 특별 초대돼 마이크를 들었다. 다음은 신 PD가 강연한 내용을 바탕으로 엄마와 아기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내용을 정리했다.

◇ 의료 개입 없이 산모 스스로 아기를 낳는 것

자연주의 출산이란 일체의 의료 개입없이 산모 스스로의 힘으로 아기를 낳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의료 개입에는 촉진제, 무통주사, 회음부 절개 등이 추가된다. 특히 아기가 나오기 전 여성의 회음부(항문과 질 사이)를 가위로 자르고 출산 후 꿰매는 회음부 절개로 병원에서 출산한 대다수의 산모가 후유증으로 고생한다.

신 PD는 "병원에서는 여성의 동의 없이 시술을 진행하는데 여성은 아기를 낳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며 "이 과정이 왜 필요한지, 다른 나라에서는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도 출산이 어떻게 가능한지 한 번쯤 생각해 보길 권한다"고 당부했다.

지난 2006년부터 미국산부인과협회는 '회음부 절개술은 매우 특별한 경우 이외엔 시행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고 미국 산부인과 의학 교과서엔 회음부 절개술은 회음부를 보호해 주지 않고 오히려 3~4도 열상의 위험성을 증가시켜 괄약근의 기능 저하, 즉 요실금과 변실금을 유발한다고 적혀 있다. 회음부 절개는 이미 미국 등에서는 사라진 시술이다.

서양 사람은 골반이 커서 회음부 절개를 할 필요가 없지만 한국 여성은 골반이 작기 때문에 회음부 절개를 해야 하고, 회음부 절개를 하지 않으면 그 부위가 찢어져 더 큰 후유증을 겪게 된다는 오해가 있을 수도 있다.

신 PD는 "같은 동양인인 일본에서도 회음부 절개가 이로운 부분보다 잃는 부분이 판단돼 극히 예외적인 경우 말고는 이 시술을 하지 않는다. 제작진이 지켜본 결과 회음부 절개를 안 해서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며 "모든 여성이 회음부 절개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컨퍼런스룸에서 베이비뉴스가 주최하고 세계전람, 보솜이, 한국베이비플래너협회가 후원한 맘스클래스에서 신정현 PD가 '자연주의 출산이야기'를 주제로 강연하는 도중 자연주의 출산으로 아기를 낳는 모습을 사진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 병원서 출산하면 옥시토신 제대로 분비 안 돼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자연출산율은 1% 미만이다. 즉 병원 출산이 99%이라는 것. 그 말은 대다수 여성이 병원 이외의 장소에서 아기를 낳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병원에서 출산하면 사랑의 호르몬이라 불리는 옥시토신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는다. 출산직후 가장 많이 분비되는 옥시토신은 애착형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옥시토신 수치가 높으면 출산직후 아기와 엄마의 결속을 더욱 높이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옥시토신이 충분히 분비되려면 방 안 온도가 적당히 높아야 하고 아기와 맨 피부로 서로 접촉해야 한다. 즉 출산직후 따뜻하고 조용한 환경에서 엄마가 아기가 피부를 맞닿은 채 서로 껴안고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 PD는 "병원에서는 아기와 스킨십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고 무통주사로 오히려 산모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하게 된다"며 "이 때문에 병원에서 출산한 산모에게는 단 한 사례를 제외하고 모두 출산 후 옥시토신 분비량이 출산 전보다 떨어지는 결과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 자연출산은 여성이 주체가 되는 출산

신 PD는 이날 강의에서 임신 초기 때부터 계획해서 자연출산을 결정한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첫째 아기를 병원에서 낳았지만 남편과 분리돼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혼자 진통한 기억을 떠올려 둘째는 집에서 조산사를 불러 침실에서 아기를 출산한 일본의 마츠오카 사츠코 씨, 아기와 태어나는 순간부터 항상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 끝에 셋째아기 모두 집에서 출산한 리와 씨. 그리고 자궁문이 8cm가 열릴 때까지 집에서 진통을 참은 오드리 엄마 김나연(가명) 씨 등의 사례가 차례로 소개됐다.

이날 맘스클래스 강연장에 직접 참석한 김나연 씨는 "진통이란 게 계속 아픈 것이 아니라 파도치듯이 한 번 아프다가 별로 안 아픈 상황이 반복된다. 그래서 안 아플 땐 집안일도 하곤 했다"며 "내가 지금 병들어서 아픈 게 아니라 아기가 나오기 위해 내 몸이 움직이는 것이 즉 진통(수축)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면 진통 또한 지나가는 고통일 뿐"이라고 말했다.

신 PD는 "자연주의 출산은 여성이 주체가 되는 출산이다. 여성 스스로 선택하고 설계하는 '나만의 출산'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러운 출산"이라며 "출산은 '누구를 위해', '누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닌 아기와 산모 자신을 위해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내가 봤던 모든 출산은 해피엔딩이었다. 산모가 아기를 품에 안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수차례 지켜봤다. 출산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이다. 여러분의 자연출산 이야기도 직접 써보길 기원하겠다"고 조언했다.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컨퍼런스룸에서 베이비뉴스가 주최하고 세계전람, 보솜이, 한국베이비플래너협회가 후원한 맘스클래스에서 신정현 PD가 '자연주의 출산이야기'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이날 강의에는 400명 이상의 청중이 모여 강의장을 모두 채웠다.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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